가족.독립

결혼을 할 생각은 없다. 뭐 내가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사회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결혼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분명 하는 순간 그 늪으로 빠지는 나를 보고만 있을 것 같으니까.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의 가족과 나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금의 ‘가족’에 있는 아빠와 동생은 제외하더라도 엄마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애정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과의 관계는 소모적이다. 지금 나는 기생하고 있으며 그 사람의 욕망을 거짓으로나마 충족해주고 있다.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엄마의 욕망과 나의 욕망을 분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엄마가 나에게 끊임없이 주입하고 애걸하던 것들에 대해서 찬찬히 생각해보고, 그 사람의 욕망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이야기해야 한다. (아마 대학을 다 다닐 때까지는 못할 것 같지만. 비싼 등록금ㅠ. ) 몇 날을 지내며 분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나의 온전한 욕망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엄마에게 영향을 받았던, 강압적인 아빠의 폭력에 대한 반발심이었던, 그런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던 사실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것을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회화되는 것이 이런 것이가 싶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그들을 탓하고 싶지도 않다. 단순히 내 자신이 나로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달까. 몇 날을 더 고민했다. 엄마의 욕망과 내가 가족과, 사회와 쌓아온 것들을 나에게서 전부 떨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의 나에 충실하자고, 그들이 만든 것도 고맙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하지만 받아들이자고 했다. 그것이 현재의 나라고 인정해야 했다.

아직까지 나의 욕망을 다 찾은 것은 아니다. 지금도 찾는 중이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만 더 고민하고 찾아가서 내가 원하는 인생을 그릴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과정이 나를 ‘집을 나가게’ 해줄 것이다. 왠지 매우 오랜만에 ‘확신’이라는 것이 든다. 언젠가는 엄마에게 나는 내 인생을 찾았노라고, 이제는 당신의 인생을 찾으시라고 진심으로 얘기해주고 싶다. 집에 꼭꼭 숨겨둔 핑크색 여행가방을 끌고.

 

_여성해방제준비 발제문 中

2 thoughts on “가족.독립

  1. 몇년전에 고민했던 건데, 뭐 유하와 나의 상황은 비슷한 듯하면서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어떻게 그 욕망을 분리해냈냐면(혹은 극복했는지, 이쪽이 더 맞는 듯, 그렇다고 완전히 극복한 건 아니고) 일단 인정하기. 내 안에 있는 욕망은 모두 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내가 판검사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누군가가 완전히 불어넣는다고 불어넣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 또한 그런 욕망이 있었고 호응했기에 생겨난 것이라는 것. 그렇게 인정하고서 내 안의 욕망을 살펴봤더니 판검사, 변호사 별로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끝. 유하는 부모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을 구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모두 유하의 욕망인 것 같아요. 오히려 판검사가 되고 싶은 욕망이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은 욕망이 유하안에서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 힘든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은 욕망은 일단 밀어내버려보고 진지하게 판검사가 진짜로 되고 싶은지 자신의 욕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서 진지하게 다뤄봄이 어때요? 그 욕망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서 바라보면 좀 더 다른 관점이 생기지 않을까요?

    응답

    1. ㅋㅋㅋ검판사가 되고 싶은 욕망은 없어요. 되도 변호사겠지만ㅋㅋㅋㅋㅋㅋㅋ
      요새 계속 생각중이긴 한데, 사실 이게 ‘돈’에 대한 욕망인가 싶기도 하고, 그냥 두려움인가 싶기도 하고. 좀더 생각해볼라구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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