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영화

좀비랜드를 봤다. 뭐 흔한 좀비물들이 그렇듯이 죽은 자들이 뛰어다니고 산 자들은 살려고 발버둥친다. 죽은 자들의 허우적거림을 깔깔거리며 보고 산 자들의 우스꽝스러움에 또 다시 깔깔깔 거리며 즐겁게 봤다. 성공하는 좀비영화들이 흔히 그렇듯이 적당히 잔인하고 적당히 폭력적이며 적당히 공포스럽고(사실 이건 좀비물에서 필요없는 요소인 것 같기도 하다.) 적당히 인간성 자체에 대해 비판적인.. 뭐 그런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예전에 변태들과 나눈 재난영화에 대한 잡담이 생각났다.


재난영화를 보면 어떻니? 재밌니? 난 가족애가 너무 쩔어서 싫던데.라는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재난영화는 제법 볼만한 영화이다. 언제나 빼놓지 않고 봐온 듯 하다. 거대한 해일과 볼케이노, 태풍 등등에 의해 거만하게 쌓아올린 인간의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제법 통쾌하면서(아 이거 문제적인 것 같기도 – 냉소에 쩔면 안 되는데..정말?) 이 세상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위치를 재각인시켜주는 듯하기도 하고 뭐 그렇다. 하지만 중반 이후 재난영화의 공식이 그렇듯이 무너져가는 가족은 자연의 재앙을 통해 가족애를 부활시키며 마지막엔 모두다 살아남았다며 하하호호거린다. 왜 그 가족이 무너져내렸는지, 그 가족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선 전혀 묻지 않는다.(가끔 묻기도 하는 듯. 살짝씩) 그래서 마지막엔 기분 나빠져서 나왔나보다. 그래서 해운대는 일부러 안 봤다. 영어를 통해 그리고 서구권의 좀 덜 찐뜩한 가족애는 참아줄 수 있지만 이 땅의 가족애를 내 눈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좀비물도 하나의 바이오재앙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좀비물이 사회비판적이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보통의 재난영화와는 좀 다른 것 같다. 재난영화의 대다수는 인간vs자연의 공식이고 따라서 인간끼리는 똘똘 뭉친다. 물론 걔중엔 배반 때리는 망할 인간, 무능력하면서 지위만 높은 망할 인간, 권력을 쥐고서 자기만 살려고 하는 망할 인간들이 등장하지만 최소한 주인공과 그 친구들과 가족들은 뭉친다. 그런데 좀비물은 좀 다른 것 같다. 이건 인간(죽은)vs인간(산)이다. 그리고 물리면 죽은 인간이 되고 내쫓긴다. 심지어 죽이기도 한다.(물린 자가 영웅심을 발휘하며 내가 남을테니 남은 무기를 다오라든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물린 자들 대부분은 그 사실을 숨기고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발버둥친다. 결국 누가 물린 자인지 물리지 않은 자인지 모르고 서로를 의심하기도 한다. 가족도 물리면 죽여야 되고 친구도 죽여야 한다. 대동단결, 끈끈한 가족애는 물리는 순간 끝이다. 끝내야 한다. 뭐 그렇다.


내가 좀비물에 하악하악 대며 S급이든, A급이든, B급이든, F급이든 꼭 다 챙겨서 보는 건 이래서일까? 서로 물고 죽이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그러면서 이 재앙에 의해 인류의 문명이라는 허상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도하고 싶어서인걸까? 아마 이런 재난영화, 재앙은 나에게 분출구인 듯하다. 망할 세상에 대한 분노를 대신 풀어대는 곳. 다 망해벌려라, 다 죽어버려라~ 진짜 죽여버릴 순 없고 내가 폭탄 짊어들고 뛰어들고 싶지도 않으니 대신 선택한 것이 이런 우회적인 방법인 것 같다. 좀비물을 즐겁게 보는 이들이 수없이 존재하고 재난영화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는 소위 현대인들이 불만도 많고 분노도 가득 쌓여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둘 다 쓰레기같다.(좀 너무한가?) 그 어떤 교훈(언제나 꼭 필요하진 않겠지만, 그리고 단어가 참 마음에 안 든다.)도 그 어떤 충만감도 주지 않는다. 이건 배설인 것 같다. 쌓인 것을 풀기 위한 오로지 그 이유뿐인 것. 뭐 이런 배설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겠지만 좀 덜 배설하면서 살아갈 순 없을까? 좀 덜 안에 가득가득 풀지 못한 무언가를 최소한으로 가질 수 있는 삶은 없는 것일까? 꾸우우우우우


그냥 고민 뿐인 글(고민도 별로 안 깊다.)이고 별 내용도 없는 글이지만 LAZY TALK는 이런 용도라고 날_해가 말했으니.. 사실 이 글도 길다고 할 것 같다. ㅎ

2 thoughts on “재난영화

  1. 얼마 전에 본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1ㅅ

    응답

    1. ㅎㅎㅎ 난 또 누구라고 –;
      새벽의 황당한 저주 정말 황당해 하면서 낄낄낄 거리며 본 기억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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