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현장을 스쳐 지나가며…

용산참사 현장을 스쳐 지나가며…

 

두 달 전부터 용산역 근처로 이사 왔다. 그래서 집을 나와 한가로이 그냥 걷다보면 용산참사 현장을 지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난 죄책감을 느껴야했다. 저곳에서 함께 투쟁하고 있지 않은 자신, 바로 집 옆이면서 일주일에 1-2번이라도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는 자신,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보고 느끼면서 죄책감을 느낀다.

 

이런 죄책감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의무감에서 나오는 것 같다. 중요한 투쟁이고 무거운 싸움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리고 알기에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안에 분명 존재하고 있고 이러한 것들로부터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다. 마음속으로 함께 하고 싶다고 느끼는 자신 또한 분명 있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라… 뭐랄까? 변명을 하자면 일단 최근 나는 나의 일상에 찌들어가고 있었고, 교통사고로 허리가 아파서 하우스처럼 만성 히스테리 상태였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변명은 그 안에서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성소수자로서의 나로서 완전변태의 회원으로서 대책위와 함께 있을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많은 설명과 설득과 이야기를 풀어내야 할지를 생각하는 순간 막막해지고 힘이 빠진다.

 

나는 많은 운동들에 관심이 있고 다른 운동들과 함께 하고 싶다. 의욕만 앞서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함께 하고 싶은 욕망 자체는 강한 편이다. 하지만 함께 하고자 할 때 그런 결정을 할 때 그 앞에 펼쳐질 무지막지한 일거리들(나는 성소수자에요, 해치지 않아요, 그냥 그런 것이에요, 아 제가 게이인 것 같긴 한데 게이가 아닌 것 같기도 해요, 바이는 아니에요, 트랜스젠더도 아닌 것 같은데, 근데 게이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게이라고 나를 온전히 설명하긴 좀 어려운 것 같고, 그렇다고 딱히 언어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아 난 그냥 나에요.. 그냥 그렇게 보면 될 것 같아요.. 등등)을 생각하는 순간 힘이 빠지고 의욕은 현실 앞에 좌절한다.

 

(사실 용산참사대책위와 함께 일해본 적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으면서 분명 피곤할 것이고 너무나도 힘들 것이라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은 편견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경험상 예측가능한 상황이라는 것, 전혀 근거 없는 상상 혹은 편견은 아니라는 것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내 탓인 걸까? 물론 누군가는 그 안에 들어가서 풀어내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내야 한다곤 생각한다. 뚫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대 없이 변화를 만들어내기는.. 특히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더더욱 힘드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수 없는 것 같다. 그럴 힘이 없는 것 같다. 무기력 선언. 이런 나의 무기력 선언이 무책임한 것일까? 운동 한답시고 돌아다니는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운동이라는 것은 뭘까? 나는 운동을 왜 하는 걸까? 의무감으로 책임감만으로 운동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것이 옳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또한 그냥 선언일 뿐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 같다.(최소한 나에겐) 내가 운동을 하게 된 이유는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주고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고 또한 나 자신 자체를 계속해서 알 수 있게 발견할 수 있게 느낄 수 있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많은 경우 다른 운동(다른 운동이라는 표현이 매우 거리감을 두고서, 어느 정도는 편협한 표현이라는 느낌이 든다.)과 연대하고자 할 때 나는 사회주의자로서 존재할 뿐이었다. 그 정도였다. 아니면 여성주의자로서 정도? 나에게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은 매우 매우 중요한데.. 그 부분이 삭제된 채 연대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경험은 나에게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힘을 얻는 경우들도 분명 있었지만(함께 하는 사람들의 적극성, 진취성을 보면서..) 그렇지 못한 경우들도 허다했다. 오히려 열 받고 피곤하고 짜증나는 경우들이 많았다.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와 멀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고 사실 이런 경우 이건 내 탓이 아닌 것 같다. 마초적이고 위협적인 언행들, 나보다 나이 많다고 함부로 반말하며 나를 소위 ‘어린’ 아이로 만들어 버리는 행태, 성소수자라고 감히 밝힐 수 없게 만드는 분위기, 나를 당연히 이성애자 남성으로 간주해버리는 행태, 그리고 밝히는 순간 나를 향한 의아한 시선(수많은 궁금증과 약간의 경멸이 뒤섞인 그 망할 시선), 그런 것들은 내 탓이 아니다. 내가 연대해온 사람들의 탓이다. 그들이 잘못한 것이다. 그들이 나의 연대하고픈 마음을 거부한 것이다. (용산대책위와 이야기해본 적 없으니 대책위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경험상 그저 보통의 위의 반응들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게 되고 그것이 근거 없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 같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끝맺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나는 연대하고 싶고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싶고 그런 것들을 통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눈곱만큼이라도 바꾸고 싶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예전에 그랬듯이 언젠가 다시 힘이 나고 부딪힐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면 어디든 가서 나 자신을 드러내며 성소수자라고 이야기하며 완전변태에서 왔어요라고 말하면서 연대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나의 발걸음은 용산참사현장을 스쳐지나갈 것 같다. 물론 대책위에 대한 무한한 지지를 마음속으로는 항상 보내고 있다. 파이팅!이라고 지나가면서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외친다. 그 마음과 외침이 대책위와 그곳의 유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나 또한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내 마음 만큼 성소수자로서의 나와 그들(이런 표현 싫은데.. 적당한 게 생각나지 않는다.)이 연대하고 싶고 그들에 대한 나의 지지만큼 성소수자 운동에 대해 그들이 지지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린 언젠가 함께 하고 있겠지….아마도….그랬으면 좋겠다.

7 thoughts on “용산참사 현장을 스쳐 지나가며…

  1. 일단 공감 백만개 꾹꾹꾹꾹꾹꾹꾹꾹. 꾹꾹이꾹꾹.

    같이 하자고 손 내밀었을 때 쏟아지는 시선에 의연해지는 것보다 ‘여러분도 공부 좀 하세요.’라고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건 조금 위험한 발상일까요? 다양한 맥락을 설명할 때 받아들이려는 사람보다 요상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게 더 많았기 때문에 더 겁 먹는 거라고 생각해요.

    촛불집회 때 무지개 깃발 아래에서 구호를 외쳤을 때가 생각나요. 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내 정체성을 가지고 구호를 외치며 함께하는 것이 그 어떠한 문제도 되지 않을 거라고 말이죠. 그런데 연대 활동의 경험을 듣다 보면서 초기에는 다 이런저런 투닥거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안에서 같이 연대할 수 있는 건 한 쪽의 노력으로만 되는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좀 더 뻔뻔해져도 될 것 같아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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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안녕하세요. 저는 용산참사 현장에서 ‘행동하는 라디오’를 만들면서, 그리고 노래를 하거나 여러 다른 일들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대책위’ 소속은 아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활동가입니다.
    저는 용산참사는 아주 많은 지점들에서 지금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이슈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마찬가지로 용산참사를 해결하는 운동 역시 지금 현재 한국의 사회운동에서 가장 중요하고 주목해야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를 해결하는 운동은, 다른 대부분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결국 이 사회의 억압과 차별을 없애나가고, 그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와 내 주변의 관계들을 복원시켜나가는 운동이라고 저는 믿고 있어요.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많은 소수자적 몸부림이 또한 용산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면 ‘레아’에 한번 들러보세요.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요, 또 조금더 친해지면 이런저런 일들을 같이 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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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돕님! 만나서 반가와요 :)
      저 돕님 글 읽다가 한가지 궁금한게 생겼어요!

      ‘가장’ 중요한 이라고 두번이나 언급하셨잖아요! 저는 그냥 그 말씀이 좀 걸려요 ‘ㅅ’a
      이리저리 바쁘게으르게(안팎꺼 도용했어요 ㅋㅋ 글귀에반해서) 움직여오면서 제가 해온 그 어떤활동들도 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거든요.
      돕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믿고싶지만) 마치 저의, 제가 아닌 다른 많은 움직임들이 덜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기분이 들어버렸어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신건지가 궁금해졌어요.

      + ‘레아’는 어떤 것인가요? 알려주셔야 놀러가죠 +ㅅ+

    2. 날해님이 지적한 부분을 생각해보니, 이해가 갑니다.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제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였는데, 그러다보니 다른 많은 움직임들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으로 느껴지게끔 했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용산참사 현장에 와보시면, 일단 철거민들이 망루를 짓고 올라갔다가 경찰특공대에 의해 살해된 ‘남일당’이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한강로라는 큰길 가에 있어서 찾기가 쉽고요, 남일당 건물 1층에는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와서 조문을 하고, 유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남일당 건물 주변에는 천주교 사제들이 농성을 하는 천막도 있고, 철거민들이 쉬는 공간도 있습니다.
      그리고 남일당 건물 바로 뒤편에 카페이자, 미술관, 영화관, 음악회가 열리는 곳, 미디어센터, 촛불방송국, 행동하는 라디오, 휴식공간, 회의공간 등등으로 쓰이는 ‘레아’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레아’에서 여러 가지 생기발랄한 움직임들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용산참사 현장에 오시면 한번 들러보세요.

    3. 아 사실 이 글 쓰면서 매우 긴장해서 그냥 막 쓰는 공간인대도, 완변 사람들한테 검토해 달라고 했었어요. 상당히 위험하게 읽히기 쉽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제 이야기니까 하고 싶어서 그냥 썼는데, 친절하게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현재 교통사고 후유증이 가라앉지 않고 있어서;; 좀 나아지면 꼭!!! 갈께요!!!

  3. 10 분 간의 노동자대회…

    메이데이 이후로 처음으로 노동자 집회에 갔다. 다양한 이들이 모이는 집회를, 이름 따라 노동자 집회라고 규정해 버리기엔 망설임이 따르지만, 대개 그런 곳은 실제로 노동자 집회가 된다. 떨리는 마음으로, 여의도 공원 앞에 줄지어 서 있는 대절 버스들의 사이를 지나 광장으로 들어 갔다.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만의 사람들을 보자 숨이 막히고 다리가 풀려 왔다. 예전에는 그것이 집회가 싫어서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어디서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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