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을 포기한 자의 고백

방금 막 대학원 입학 시험을 치고 왔다. 가고 싶은 대학원이긴 한데, 지금 당장 가고 싶은 건 딱히 아닌 데다가 여러가지로 입학 준비할 상황도 안 돼서 칠까 말까 하고 있던 것을, 집에서 하도 닥달을 해서 결국 치고 왔다. 경쟁률은 5대 1이고 내 답안은 엉망이니까 물론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친구에게 위로턱을 얻어 먹기로 했다.

시험을 친 게 중요한 건 아니고, 시험 치면서 내가 한 짓이 문제다.

떨어질 각오를 하고 있어도 시험은 왠지 긴장이 된다. 답안지는 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채점자의 관계가 정확히 드러난다. 어차피 아는 것은 한정되어 있고, 답안지에는 그것을 적으면 되는데도 나는 고민이 많아진다. 글씨는 이 정도면 될까, 길이는 이 정도면 될까. 예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들어야 하는 걸까, 이 사람에 대한 평가를 이런 식으로 적어도 싫어하지 않을까. 쓸 데 없는 고민들을 하는 나는, 그곳에서는 천상 약자다.

비겁한 변명이지만, 약자에게는 정치적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다가올 미래를 잘 알고 있기에, 민감한 영역은 숨기는 수밖에 없다, 비겁한 변명이지만.

18 세기 철학자 중에 버크라는 사람이 있다. 남성의 몸을 가진 사람인데, 철학 씩이나 하고 잘 산 것을 보면 아마도 이성애자 남성이지 싶다. 그 사람은 사물에 대한 욕망와 사물의 美에 대한 관조를 비교하면서 이딴 예를 든 사람이다.

우리는 뚜렷한 미를 갖추지 못한 여인에 대해서도 강한 욕망을 품게 될 것이다. 반면 남자나 그 밖의 동물들에서 보여질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미는 사랑을 야기하기는 하지만 욕망은 전혀 자극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서 미나 미에 의해 야기된 정열―내가 사랑이라고 칭하는 정열―이 욕망과는 상이함이 입증된다. 이따금 욕망은 그것과 더불어 작용한 수도 있는 일이지만.

시험 문제 중에 이 사람의 이론을 적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지난 학기에도 시험을 쳤었는데(그땐 바로 입학할 마음도 있었지만 인문대 대학원 경쟁률이 이렇게 높을 줄 모르고 전혀 준비를 안 하고 쳤었다) 그때에도 있었다. 저 문장을 차마 그대로 적을 수는 없어 “성애와 사랑을 대조했다”고만 썼더랬다. 그런데 이번은 두 번째다. 어차피 떨어질 것을 각오하고 있다고는 해도 왠지 모를 부담감이 있는 두 번째. (이 다음에 정말 입학을 하고 싶어 면접을 보러 갔을 때 교수들이, “자넨 세 번째구만. 지난 번 두 번 다 형편 없는 성적으로 떨어졌었군 그래.”라며 경멸의 눈초리를 보낼 것에 대한 부담이 있달까.)

그래서 나는 저 문장을 결국 쓰고야 말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문장의 앞에 ‘남성이’이라는 임의의 문구를 첨가하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학교 다닐 땐 그런 짓을 하기도 했지만, 어째선지, ‘이성애자 남성이’라고는 못 쓰겠더라.

이 글은 버크를 욕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의 죄에 대해 사과하기 위한 글이다. 약자니 어쩌니 하는 것을 핑계로, 싸우지 못한 나에 대한 사과를 하기 위한 글이다.

4 thoughts on “신념을 포기한 자의 고백

  1. 토닥토닥. 살아야죠. 살아야죠. 토닥토닥.

    응답

    1. 까흑 하지만 대학원 안 가도 안 죽잖아요 클클클 게다가 어차피 못 갈 거………..

    2. ㅎㅎㅎ 일일이 모든 거에 저항하다간 … 정말 화병으로 죽어버릴 듯. 난 오늘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술을 먹고 왔어요. 뭐 참.. 괜찮은 친구들이긴 하지만…참… 내가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적당히 불편한 정도에 불과하니… 참… 참… 하하하하하하하하. 그냥 웃지요.

    3. 허리 아픈 사람이 술을, 그것도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먹다니, 몸을 너무 혹사시키시는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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