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IDAHOBIT 캠페인 – 517개의 얼굴들

 

올해 무지개행동은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아이다호, IDAHOBIT)을 기념하며, 517개의 얼굴을 모아 지하철과 유튜브 광고를 진행합니다.
프로젝트는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이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진행됩니다. 
광고를 통해 대중사회에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메세지와 함께 성소수자의 존엄을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얼굴 되기
성소수자 뿐만아니라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고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분들은 모두 사진을 보내실 수 있습니다. 아래 파일 첨부를 통해 여러분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보내주세요.
사진을 보내주신 분들께는 광고에 사진 게재와 함께 아이다호 스티커를 선물로 드립니다!

* 이런 사진이면 좋습니다!
– 사진 용량은 클수록 좋으며, 해상도 300dpi 이상이 적당해요.
– 얼굴이 사진 전체를 채우고 있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배경이 같이 나온 것이 좋아요.
– 너무 어둡지 않게 촬영해주세요.
– 정면샷, 측면샷 무엇이든 좋아요. 얼굴이 드러나게만 찍어주세요!
– 원본 사진을 첨부해주세요. SNS나 메신저를 한번 거치면 사진 용량이 줄어들 수도 있어요.

※ 위 설명이 어려우시다면?
– 평소 셀카 찍듯이 찍으시되, 카메라나 핸드폰에서 사진 크기 설정을 제일 큰걸로 해서 찍으시면 됩니다!

※ 지하철 광고 게재시 각 사진의 크기는 가로, 세로 약 10cm 정도로 예상되며
보내주신 사진을 크롭하여 사용할 수도 있는 점 참고해주세요.

※ 지하철 광고는 서울교통공사의 심의에 따라 게재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이 경우에는 이에 대한 또다른 액션을 준비하여 알려드리겠습니다!

🌈 얼굴 되기 링크


📍 광고 후원하기
지하철 광고는 유동인구가 많은 상업지역 거점에 한 달 간 게재할 계획인데, 서울 주요 지하철역 광고비는 수백만 원을 상회하며, 유튜브 광고는 광고 노출이 많아질수록 광고비가 올라갑니다.
광고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대중에게 광고가 노출되어야 합니다.
광고가 성사될 수 있도록 후원 부탁드려요!
후원하신 분들께는 광고에 성함을 함께 기재해드리며 아이다호 기념품을 선물로 드립니다.

🌈 광고 후원하기 링크

※ 후원계좌
– 국민은행 408801-01-317159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공동성명] 우리는 계속 ‘위협’이기를 원한다 (2.12 18시 연명 취합 마감)


트랜스젠더 여성이 숙명여대에 최종 합격하였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합격자는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드러내고, 얼마 전 원치 않는 전역을 당해야 했던 변희수 육군하사 및 그와 비슷한 장벽에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우리는 우리사회가 더는 성소수자가 숨어야 하는 사회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고 연결될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하기를 열망하며, 그녀의 용기를 지지한다.

입학은 절차적으로 정당하므로 이것을 문제 삼는 논리에는 논박할 가치도 없다. 그러나 일각의 혐오가 언론을 통해 무분별하게 확대되는 상황은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더구나 최근 더욱 선명해지고 있는 트랜스젠더 배제와 혐오의 움직임이 이제는 여성 인권 옹호의 명목으로 성행하고, 급기야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이 여성 인권에 대한 위협이므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도 흘러가고 있는 데는 반대 입장을 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 ‘위협’에 같이 연루되어 있다. ‘여자라고 주장한다면’, ‘외부성기성형수술도 없이’, ‘근거 법률조차 없이’ 법적 여성이 되는 것이 여성에 대한 위협이면, 우리는 그것의 결과로 여성이 되었다. 동의 없이 법적 여성으로 등록되고, 그에 맞는 삶을 매시매초 요구 받으며, 타협과 순응과 저항 사이에서 살아간다. ‘자연스러운 위협’이 파놓은 함정 속에서, 출생 시 지정된 성별에 따라 삶의 공간, 범위, 형태가 결정지어진다는 전제를 의심하고, 때로는 심각한 불이익이 있더라도 그것을 넘어 자기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 도전을 막는 모든 차별을 밝혀 그에 맞서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이고, 성별 이분체계에 적합해지기를 거부하거나, 포기하거나, 실패하는 동시에 자신과 공동체의 더 나은 삶을 고민해온 모두가 우리의 동료다.

‘하필 여대냐’는 질문이 여성 인권 운동으로 둔갑하는 초라하고 편협한 현실에 분노한다. 성폭력 및 성적 괴롭힘, 학대를 문제화하고 대책을 요구할 때,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분리할 수 있다는 주장에 단호히 반대한다. 트랜스젠더는 언제나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있어야 한다는 자들에게 해명하지도 간청하지도 말자. 그것이 사회적으로 또는 물리적으로 죽으라는 말과 과연 다를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사회를 만들자. 페미니즘 운동이 만들 사회는 누구도 이성애중심적인 가부장제에 의해서 성별 규범에 맞추어 살도록 강요당하지 않는 사회, 자신의 성정체성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기회와 자원이 동등하게 주어지는 사회, 그러므로 부당하게 해고당하거나 학교에서 내쫓기지 않는, 법제도와 공동체가 인권을 다수결로 저울질 하지 않는 사회여야 한다.

더 크게, 과감하게, 용기 있게, 지금 여기서 우리도 우리의 말을 하자.


2020.2.5

* 언니네트워크와 퀴어여성네트워크가 공동성명을 제안합니다. 연명에 동참하고, 알려주세요. (2.12 18시 취합 마감)
* 연락처 unni@unninetwork.net

참여하기

성소수자가 춤출 수 있는 성평등 민주주의

3.8 세계여성의날 맞이 성소수자 기자회견
– 성소수자가 춤출 수 있는 성평등 민주주의

2018년 3월 8일은 세계여성의날 110주년이며, 오늘은 제34회 한국여성대회가 진행된다. 뜻깊은 오늘을 맞이하며 성평등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성평등은 무엇인가? 성평등은 여성가족부의 성차별적 유권해석과 혐오세력의 선동 안에 있지 않다. 2015년, 대전시 성평등조례 당시 여성가족부는 대전시로 하여금 성평등조례에서 성소수자 보호 지원조항을 모두 삭제하도록 한 바 있다. 이는 성차별 및 성적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분리하는 시도였고, ‘양성평등은 성소수자를 배제한다’는 오해를 확산시켰다. 이후 보수기독교 단체들은 ‘(성소수자 포함하는) 성평등 NO (성소수자 배제하는) 양성평등 YES’ 프레임으로 양성평등 개념을 오용했다. 그들은 <제2차 양성평등 정책 기본계획> 의견수렴 공청회를 무산시키는가 하면 “2차 기본계획에 ‘성평등’ 용어가 하나라도 들어가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다며 여성가족부 게시판 도배 및 여성가족부 해체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성평등은 포함과 배제를 결정하는 저울질이 아니다. 성평등은 젠더 위계구조를 이해하고 그것에 기반한 성차별, 성적 억압과 폭력을 실질적으로 철폐해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여성과 성소수자가 겪는 성폭력 및 성적 괴롭힘, 혈연가족이나 친족에 의한 폭력과 학대, 정신병원 강제입원, 교정 강간, 학교와 직장에서의 성희롱이 우리사회에 드러나고, 그에 대한 예방대책이 마련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성별 규범에 맞추어 살도록 강요당하지 않으며, 성정체성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 것이다. 그것은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숨기거나, 억제하거나, 부인하도록 압력을 받지 않는 것이며, 결코 화장실, 병역과정, 구금시설 등에서 성별을 증명하도록 요구받지 않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의료적 조치를 강제당하지 않는 것이다. 친밀한 관계를 맺거나 가족을 이룰 수 있고, 동의에 의한 성관계로 인해 수사받거나 재판받지 않는 것이다. 여성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일자리를 잃거나 방송에서 하차당하지 않으며, 체육대회의 대관허가가 취소되지 않고, 법과 조례, 헌장이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을 합의의 대상으로 놓고 협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춤출 수 있고, 그럼으로써 성소수자가 춤출 수 있는 성평등을 원한다. 우리는 성평등 운동의 제3자가 아니라 당사자로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삭제하려는 사회 속에서, 우리사회의 모든 공간에서, 지난 모든 역사 속에서 성차별, 성적 억압과 폭력에 맞서고 성평등을 앞당겨 왔다. 호주제 폐지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해체를 위해,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이 정당화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포괄적 성교육 실현을 위해, 낙태죄 폐지와 재생산권 보장을 위해, 성평등 개헌을 위해 끊이지 않고 행동했다. 지금 이 순간, 미투운동은 폭력의 처벌 뿐만 아니라, 폭력을 가능하게 뒷받침해온 부정의와 불평등을 도려낼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성소수자는 젠더이분법과 이성애주의, 남성중심주의가 우리사회의 성차별, 성적 억압과 폭력을 만드는 구조임을 증거하며, 성평등을 부르는 이 외침이 성폭력범죄 처벌의 실효성 확보를 비롯한 구체적 사회변화와 성평등 실현으로 이어지도록 함께할 것이다. 차별과 혐오는 우리를 반으로 자를 수 없다. 그러므로

성소수자가 / 춤출 수 있는 / 성평등을!

2018.3.4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오늘을 시작한다. 성평등은 어디에 있는가? 

힘들지 않게

동성애는 내 자신과 관련해서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었다. 내 상태와 감정이 처음에도 좋았고, 개인적 특성상 국가나 사회규범의 박해를 받아서 더 근사하게 느낀 것도 있었다. 주체적인 욕망과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성애는 관습과 제도가 압도해서 자유가 부족하다. 내가 동성애? 좋은데? 그게 첫인상이었고, 결혼한다는 상상을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것처럼 나에게 동성애? 그보다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다.

처음 정체화하고 줄곧 바이인 채 살지만 그 자체도 불편한 건 크지 않았다. 성골 동성애자 아니면 토하는 사람도 없었고, 더 고약한 사람은 못 만났고. 바이혐오 발언이라는 것들은 한끝만 바꾸면 대체로 나는 좋아할 만했다. 바이박멸 의도가 아니라면야 날 레즈비언으로 묶어도, 내가 레즈비언을 좋아하고, 틀린 말 아니고(여자 좋아하는 사람) 별감정 들지 않는다. 대체로. 레즈비언은 여성 동성애자라고 배워놔서, 바이는 내 성별을 확정짓지 않으면서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할 상대의 성별도 확정짓지 않는 게 좋았고. 틀이 없는 게.

여성성소수자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데 이건 복잡하다. 난 여성성소수자를 만나고 드러내는 활동을 하고 싶고, 당분간 하려고 한다. 해왔던 일이나 지금까지의 인간관계도 그 배경이고, 성소수자운동에서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겹쳐봤을 때 그 주제가 그랬고, 지금 필요한 활동이고, 또 내가 여자로 살기 싫은 성소수잔데 나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이라서. 똑같지 않고 비슷한 사람들과. 근데 이게 넓은 젠더스펙트럼과 경험을 아우르는 말이 아니라 레즈녀, 바이녀, 호명하는 말로만 이용되는 건 별로고, 누누이 말하지만 내가 퀴어녀 되고 싶지가 않고.

사실 테두리 밖에 손바닥만한 땅도 없기 때문이다. 여자로 딱지붙지 않으면서 내가 여자로 살아야 하느라 겪은 것들을 규탄할 수 있기를 바라는데 그건 어디서도 되지 않더라. 그 내 행동조차 매순간 날 더욱 여자로 읽게 만들기 때문에. 성별을 분류하지 않은 상태는 곧 사람이 아닌 상태라서, 성인여자사람이 여자답기를 거부하면 사람 취급을 받기 어렵다. 촌스럽고, 나이값 못 하고, 사회성 떨어지고, 공격적이고, 예의 없고, 누구나 한소리 하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된다. 그 공격이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나조차 모르게 지속돼서, 내가 날 너무 많이 싫어하지 않으면서 요령 있게 살아가는 일이 힘들었다. 나도 아니고 내가 아닌 것도 아닌 채로 사는 건 다들 그렇겠지만, 그래도 분노가 마구 일 때가 있는데 그 분노가 해석될 수도 없는 분노라는 게 날 더 활화산으로 만들어.

지금은 휴화산, 이라서 문자로 옮길 수 있다. 남도 날 훑어보지 않고 나도 거울을 보지 않는 2019년.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게 된,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느끼게 된 2019년(이유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30년간 내게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여자여야만 사람일 수가 있는데 그래서 나는 사람이 아니고 싶다는 바로 그 느낌이었다 고 남한테 말하고, 쓸 수 있는 것이다. 힘들지 않게.

/지난 달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