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우리는 계속 ‘위협’이기를 원한다 (2.12 18시 연명 취합 마감)


트랜스젠더 여성이 숙명여대에 최종 합격하였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합격자는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드러내고, 얼마 전 원치 않는 전역을 당해야 했던 변희수 육군하사 및 그와 비슷한 장벽에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우리는 우리사회가 더는 성소수자가 숨어야 하는 사회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고 연결될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하기를 열망하며, 그녀의 용기를 지지한다.

입학은 절차적으로 정당하므로 이것을 문제 삼는 논리에는 논박할 가치도 없다. 그러나 일각의 혐오가 언론을 통해 무분별하게 확대되는 상황은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더구나 최근 더욱 선명해지고 있는 트랜스젠더 배제와 혐오의 움직임이 이제는 여성 인권 옹호의 명목으로 성행하고, 급기야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이 여성 인권에 대한 위협이므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도 흘러가고 있는 데는 반대 입장을 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 ‘위협’에 같이 연루되어 있다. ‘여자라고 주장한다면’, ‘외부성기성형수술도 없이’, ‘근거 법률조차 없이’ 법적 여성이 되는 것이 여성에 대한 위협이면, 우리는 그것의 결과로 여성이 되었다. 동의 없이 법적 여성으로 등록되고, 그에 맞는 삶을 매시매초 요구 받으며, 타협과 순응과 저항 사이에서 살아간다. ‘자연스러운 위협’이 파놓은 함정 속에서, 출생 시 지정된 성별에 따라 삶의 공간, 범위, 형태가 결정지어진다는 전제를 의심하고, 때로는 심각한 불이익이 있더라도 그것을 넘어 자기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 도전을 막는 모든 차별을 밝혀 그에 맞서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이고, 성별 이분체계에 적합해지기를 거부하거나, 포기하거나, 실패하는 동시에 자신과 공동체의 더 나은 삶을 고민해온 모두가 우리의 동료다.

‘하필 여대냐’는 질문이 여성 인권 운동으로 둔갑하는 초라하고 편협한 현실에 분노한다. 성폭력 및 성적 괴롭힘, 학대를 문제화하고 대책을 요구할 때,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분리할 수 있다는 주장에 단호히 반대한다. 트랜스젠더는 언제나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있어야 한다는 자들에게 해명하지도 간청하지도 말자. 그것이 사회적으로 또는 물리적으로 죽으라는 말과 과연 다를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사회를 만들자. 페미니즘 운동이 만들 사회는 누구도 이성애중심적인 가부장제에 의해서 성별 규범에 맞추어 살도록 강요당하지 않는 사회, 자신의 성정체성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기회와 자원이 동등하게 주어지는 사회, 그러므로 부당하게 해고당하거나 학교에서 내쫓기지 않는, 법제도와 공동체가 인권을 다수결로 저울질 하지 않는 사회여야 한다.

더 크게, 과감하게, 용기 있게, 지금 여기서 우리도 우리의 말을 하자.


2020.2.5

* 언니네트워크와 퀴어여성네트워크가 공동성명을 제안합니다. 연명에 동참하고, 알려주세요. (2.12 18시 취합 마감)
* 연락처 unni@unninetwo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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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가 춤출 수 있는 성평등 민주주의

3.8 세계여성의날 맞이 성소수자 기자회견
– 성소수자가 춤출 수 있는 성평등 민주주의

2018년 3월 8일은 세계여성의날 110주년이며, 오늘은 제34회 한국여성대회가 진행된다. 뜻깊은 오늘을 맞이하며 성평등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성평등은 무엇인가? 성평등은 여성가족부의 성차별적 유권해석과 혐오세력의 선동 안에 있지 않다. 2015년, 대전시 성평등조례 당시 여성가족부는 대전시로 하여금 성평등조례에서 성소수자 보호 지원조항을 모두 삭제하도록 한 바 있다. 이는 성차별 및 성적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분리하는 시도였고, ‘양성평등은 성소수자를 배제한다’는 오해를 확산시켰다. 이후 보수기독교 단체들은 ‘(성소수자 포함하는) 성평등 NO (성소수자 배제하는) 양성평등 YES’ 프레임으로 양성평등 개념을 오용했다. 그들은 <제2차 양성평등 정책 기본계획> 의견수렴 공청회를 무산시키는가 하면 “2차 기본계획에 ‘성평등’ 용어가 하나라도 들어가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다며 여성가족부 게시판 도배 및 여성가족부 해체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성평등은 포함과 배제를 결정하는 저울질이 아니다. 성평등은 젠더 위계구조를 이해하고 그것에 기반한 성차별, 성적 억압과 폭력을 실질적으로 철폐해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여성과 성소수자가 겪는 성폭력 및 성적 괴롭힘, 혈연가족이나 친족에 의한 폭력과 학대, 정신병원 강제입원, 교정 강간, 학교와 직장에서의 성희롱이 우리사회에 드러나고, 그에 대한 예방대책이 마련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성별 규범에 맞추어 살도록 강요당하지 않으며, 성정체성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 것이다. 그것은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숨기거나, 억제하거나, 부인하도록 압력을 받지 않는 것이며, 결코 화장실, 병역과정, 구금시설 등에서 성별을 증명하도록 요구받지 않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의료적 조치를 강제당하지 않는 것이다. 친밀한 관계를 맺거나 가족을 이룰 수 있고, 동의에 의한 성관계로 인해 수사받거나 재판받지 않는 것이다. 여성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일자리를 잃거나 방송에서 하차당하지 않으며, 체육대회의 대관허가가 취소되지 않고, 법과 조례, 헌장이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을 합의의 대상으로 놓고 협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춤출 수 있고, 그럼으로써 성소수자가 춤출 수 있는 성평등을 원한다. 우리는 성평등 운동의 제3자가 아니라 당사자로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삭제하려는 사회 속에서, 우리사회의 모든 공간에서, 지난 모든 역사 속에서 성차별, 성적 억압과 폭력에 맞서고 성평등을 앞당겨 왔다. 호주제 폐지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해체를 위해,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이 정당화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포괄적 성교육 실현을 위해, 낙태죄 폐지와 재생산권 보장을 위해, 성평등 개헌을 위해 끊이지 않고 행동했다. 지금 이 순간, 미투운동은 폭력의 처벌 뿐만 아니라, 폭력을 가능하게 뒷받침해온 부정의와 불평등을 도려낼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성소수자는 젠더이분법과 이성애주의, 남성중심주의가 우리사회의 성차별, 성적 억압과 폭력을 만드는 구조임을 증거하며, 성평등을 부르는 이 외침이 성폭력범죄 처벌의 실효성 확보를 비롯한 구체적 사회변화와 성평등 실현으로 이어지도록 함께할 것이다. 차별과 혐오는 우리를 반으로 자를 수 없다. 그러므로

성소수자가 / 춤출 수 있는 / 성평등을!

2018.3.4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오늘을 시작한다. 성평등은 어디에 있는가? 

힘들지 않게

동성애는 내 자신과 관련해서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었다. 내 상태와 감정이 처음에도 좋았고, 개인적 특성상 국가나 사회규범의 박해를 받아서 더 근사하게 느낀 것도 있었다. 주체적인 욕망과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성애는 관습과 제도가 압도해서 자유가 부족하다. 내가 동성애? 좋은데? 그게 첫인상이었고, 결혼한다는 상상을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것처럼 나에게 동성애? 그보다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다.

처음 정체화하고 줄곧 바이인 채 살지만 그 자체도 불편한 건 크지 않았다. 성골 동성애자 아니면 토하는 사람도 없었고, 더 고약한 사람은 못 만났고. 바이혐오 발언이라는 것들은 한끝만 바꾸면 대체로 나는 좋아할 만했다. 바이박멸 의도가 아니라면야 날 레즈비언으로 묶어도, 내가 레즈비언을 좋아하고, 틀린 말 아니고(여자 좋아하는 사람) 별감정 들지 않는다. 대체로. 레즈비언은 여성 동성애자라고 배워놔서, 바이는 내 성별을 확정짓지 않으면서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할 상대의 성별도 확정짓지 않는 게 좋았고. 틀이 없는 게.

여성성소수자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데 이건 복잡하다. 난 여성성소수자를 만나고 드러내는 활동을 하고 싶고, 당분간 하려고 한다. 해왔던 일이나 지금까지의 인간관계도 그 배경이고, 성소수자운동에서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겹쳐봤을 때 그 주제가 그랬고, 지금 필요한 활동이고, 또 내가 여자로 살기 싫은 성소수잔데 나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이라서. 똑같지 않고 비슷한 사람들과. 근데 이게 넓은 젠더스펙트럼과 경험을 아우르는 말이 아니라 레즈녀, 바이녀, 호명하는 말로만 이용되는 건 별로고, 누누이 말하지만 내가 퀴어녀 되고 싶지가 않고.

사실 테두리 밖에 손바닥만한 땅도 없기 때문이다. 여자로 딱지붙지 않으면서 내가 여자로 살아야 하느라 겪은 것들을 규탄할 수 있기를 바라는데 그건 어디서도 되지 않더라. 그 내 행동조차 매순간 날 더욱 여자로 읽게 만들기 때문에. 성별을 분류하지 않은 상태는 곧 사람이 아닌 상태라서, 성인여자사람이 여자답기를 거부하면 사람 취급을 받기 어렵다. 촌스럽고, 나이값 못 하고, 사회성 떨어지고, 공격적이고, 예의 없고, 누구나 한소리 하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된다. 그 공격이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나조차 모르게 지속돼서, 내가 날 너무 많이 싫어하지 않으면서 요령 있게 살아가는 일이 힘들었다. 나도 아니고 내가 아닌 것도 아닌 채로 사는 건 다들 그렇겠지만, 그래도 분노가 마구 일 때가 있는데 그 분노가 해석될 수도 없는 분노라는 게 날 더 활화산으로 만들어.

지금은 휴화산, 이라서 문자로 옮길 수 있다. 남도 날 훑어보지 않고 나도 거울을 보지 않는 2019년.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게 된,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느끼게 된 2019년(이유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30년간 내게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여자여야만 사람일 수가 있는데 그래서 나는 사람이 아니고 싶다는 바로 그 느낌이었다 고 남한테 말하고, 쓸 수 있는 것이다. 힘들지 않게.

/지난 달의 일기

[웹진 글로컬포인트 5호] 퀴어 커뮤니티와 성폭력

*이 글은 언니네트워크 및 무지개행동 반성폭력교육TF에서의 논의를 정리했다.

성폭력을 주로 암수범죄라고 한다. 신고부터 여전히 극히 적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성소수자라면 더욱  그런 것 같다. 많은 성소수자가 성폭력피해 상담전화를 걸기 전에 한 번 더 고민할 것이다. 미지의 상담원이 성소수자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사람일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없이 자신의 성폭력 피해경험을 경청하여 줄지 두렵다. 상담을 해도 성소수자임을 밝히지 않고 수화기를 내려놓기도 한다.

<한국 LGBTI 사회적 욕구조사(2014)>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성소수자 3,208명 중 레즈비언의 64.3%, 트랜스젠더 여성의 59.7%, 트랜스젠더 남성의 68.5%가 성폭력 및 성적 괴롭힘이 ‘자주 또는 종종 일어난다’고 응답했다. 다수의 성소수자가 성폭력 피해를 겪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성폭력 실태조사>나 성폭력상담소의 상담통계 등에서는 성소수자 대상의 성폭력이나 성소수자 간 성폭력이 파악되지는 않는다.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의 대다수는 남성이라는 점만 파악이 가능하다.(<2017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 전체 상담 2,118회(1,414건) 중 피해자는 여성이 94.5%, 가해자는 남성이 94%) 성소수자 단체에 상담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이 경우에도 총 상담건수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알려진 사건들

성소수자운동은 여성가족부가 ‘성소수자는 양성평등기본법의 정책대상이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내고 지자체 양성평등기본조례에 개입한 것을 비판해왔다. 그리고 양성평등정책이 중요하게 주목하고 있는 성폭력, 가정폭력 문제에서 성소수자를 떼어내지 말고 성소수자의 경험을 파악하고 대응할 것을 주문해왔다.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알려질 것을 우려해 정신병원 강제입원, 교정 강간, 학교와 직장에서 성희롱을 경험하고도 신고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편, 성소수자운동 안에서 성소수자의 성폭력 경험을 가시화하고 대응하기 위한 노력이 그만큼 수반되어 왔는지 통렬하게 반성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알려졌다. 2017년, 무성애 가시화 행동 무:대(구 에이로그 팀),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팟캐스트 프로젝트 승냥이FM, ACE STORY, (구)논모노로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에서 활동해온 (전)활동가 케이의 착취, 횡령, 성추행과 데이트강간이 공론화되었다. 2017년 10월 행성인은 케이의 강연을 취소했으나 취소의 정확한 이유, 공식입장과 후속처리는 공표되지 않은 상태였다. 2018년 3월 여성의 날을 앞두고 비판이 다시 제기되었고 반상임활동가가 다수의 성폭력 사건 가해자로 지목되었다. 특히 행성인이 성폭력을 방조하고 묵인한 점이 강하게 비판받았다. 이후 행성인은 조정위원회를 통해 성폭력 피해를 신고 받는다는 공고를 올리고, 사과문과 함께 대외 활동을 잠정 중단하였다.

성폭행, 성추행이란 우리나라 사법기관이 유권해석으로 밝힌 바와 같이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을 유발케 하는 행위”를 포함하는 것은 물론, 행위자의 의사, 행위의 태양, 발생한 결과, 피해자의 의사, 신체적 혹은 정신적 조건, 행위자와 피해자와의 관계, 주변의 상황, 당시의 사회구조, 경제 및 교육수준, 신분관계 등에 따른 당사자간의 위계의 존재나 정도 등을 아울러 전방위적으로 검토하여 그것이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 내지는 위해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바, 여기에서 사람의 의사라 함은 확정적이고 사전적인 의사는 물론 사후적인 의사나 불확정적인 의사 또한 상대방이 예견할 수 있는 정도를 고려하여 참작되어야 할 것이고, 피해자의 의사결정에 행위자가 개입한 정도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이를 앞서 밝힌 피해자의 진술과 비교하면 피징계자는 피해자들에 대하여 신체접촉 또는 성행위의 동의 여부와 의사를 고의적으로 묵살하거나 기존에 견지하던 태도와 의사를 자신의 교육수준이나 사회구조적 위계를 이용하여 교란하고 자신의 의사에 따르도록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형식적인 동의 의사를 무리하게 표시하도록 한 바, 피임기구를 사용하지 않은 성행위와 기타 신체접촉 등은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졌다고 봄이 상당하며 이는 각 성폭행, 성추행으로 평가될 수 있다.

– 여행자 171110 징계3 결정문 (18.01.14 공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는 성폭력을 포함한 인권침해와 공동체에서의 배제, 인권단체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것에 대해 피해자와 피해자를 지지하시는 모든 분들, 그리고 행성인을 믿고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행성인 운영위원회는  (1) 행성인 회원이었던 케이 전 퀴어활동가의 성폭력과 노동착취, 횡령 등 인권침해 가해 문제제기에 대한 단체의 미흡한 조치, (2) 반상임활동가(현재 직무정지 되었고, 조정위원회에 회부되어 있습니다)이자 전 사무국장인 활동가의 성폭력 가해 사실에 대한 방조와 묵인, (3) 현 성소수자노동권팀장의 성폭력과 주취폭력 등에 대한 피해자와 피해자를 지지하는 분들의 문제제기를 통해, 문제제기의 대상이 된 회원 뿐 아니라 행성인의 조직문화와 구조에도 폭력을 용인하고 묵인하도록 만드는 잘못이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사과드립니다 (18.03.17 게재)

두 사건은 활동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활동가/회원에 대해, 가해자가 상대적으로 지위와 힘을 이용했다고 보인다. 이들 사건은 ‘좁은 성소수자판’에 큰 충격과 상처를 남겼고, 반성폭력에 대한 더 깊은 고민과 교육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높아졌다. 이후 대학 성소수자동아리나 작은 규모의 단체 등에서도 성희롱, 성추행, 위력을 이용한 성폭력 사건들이 공론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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