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변태 연극 ‘진흙’

dasjflasdf완전변태 연극 ‘진흙’

2013년 9월 14일 7시 서대문구 신촌동 2-93 체화당

주의 –

1. 10분 늦으시면 연극이 끝날 수 있습니다.

2. 촬영은 주최측의 기록용 이외에는 금지됩니다.

주최 / 기획/ 연출 / 기타 등등 : 완전변태 (wanbyun.org / 010-9375-0287)

 

 

 

<장애인 접근권에 관한 안내>

* 공연장은 엘리베이터 등의 시설이 없는 지하공간입니다. 활동 보조 인력은 따로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가능한 부분에 있어서는 최대한의 이동 보조를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대사는 자막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기타 안내>

완변의 웹진 《이성애》(2012.12)에 실린 글 〈진흙〉(http://wanbyun.org/archives/4954)을 미리 읽고 오시면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른이 되게 도와주세요?

글을 쓰기에 앞서서,

이 글을 읽으면서 여러분은 아마도 지적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이미지로 제 상상에 살을 붙일지도 모릅니다. 우린 비장애중심적인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요. 아마도 제가 그랬을 것 같습니다. 공연히 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 쓴 글이 지적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불쾌하진 않기를 바라며. 이 글에서 비장애인중심적인 어떠한 지점이 느껴지신다면 적나라하게 지적해주세요.

인용은 모두 <어른이 되게 도와주세요! -지적 장애인 성교육 지침서> 카린 멜버그 슈비어 · 데이브 싱스버거 지음,에서 했어요.

책을 읽고 나서 제목을 읽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제는 <섹슈얼리티: 지적 장애를 가진 다신의 아들 딸>인 걸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출판하며 만들어진 제목인 듯 한데. “누가”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걸까? “누가” 도와줘야 하는 걸까? “누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걸까?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다.

우리들과 그들

영등위는 에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내렸다. 김조광수 감독은 청소년들이 볼 수 있게 하려고(청소년 관람가 판정을 받으려고) 섹스신에서 팬티도 입혔고 엄마도 등장시켰다며 어이없어 했다. 커밍아웃한 게이 감독으로서 이런 일에 항의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찬 바람이 불었다. 법원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김조광수 감독은 영등위 판정은 명백한 동성애 차별이라고 선언했다.

법률 지원을 맡은 변호사가 나와서 법적 해석을 제시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반응할 것 같습니다, 에게 이게 뭐야(섹스신이 약하잖아) 하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좀 낯설거나, 불편하거나,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낯섦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역시 낯선 내용이었지만, 그들(동성애자들)이 우리들과 …

거기까지만 들었다. 변호사의 감상도 더는 듣지 않았고, 법적 해석도 듣지 않았다. 나는 그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지만, 낯설어 하지도 않을 것이고 실망하지도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변호사가 입에 담은 ‘그들’에도 ‘우리들’에도 나는 포함되지 않는다. 변호사의 양 옆에는, ‘그들’이 서 있었다. 변호사는 자신의 일행을 모두 떼어 놓고, 다른 어디에선가 ‘우리’를 만들었다. 그들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 변호사 역시 ‘그들’에 속하는 사람일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모르고 있을 수도 있고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 알고서도, 남의 말을 따라 그렇게 나누는 것인지도 모른다.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에도 ‘우리들’에도 나는 없다는 사실이고, 변호사에게 ‘우리’였어야 할 사람들은 한 순간에 ‘그들’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쩌면 단순히 영화 속 인물들만을 묶어 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자리에 ‘의미 있는 낯섦’으로 그 영화를 받아들일 사람들은 없었음을 또한 나는 안다.

‘브레인 섹스’를 읽고서-고민시작

남성과 여성은 다르다. 함께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것만이 유일한 공통점이다.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재능이나 기술,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보았을 때 완전히 거짓말이다.

남성과 여성이 다른 원인은 뇌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활과 정서를 관장하는 주요 기관인 뇌가 각자 다르게 조직되어 있다. 남녀의 뇌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인식과 가치의 우선순위, 행동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이게 이 책의 주장이다. 공격성, 언어능력, 성정체성, 양육 등 인간의 광범위한 부분들이 뇌(와 호르몬)의 영향이라고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실험결과들은 매우 흥미로웠다. 대부분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사회적 영향’ 때문일 수 있다는지점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은근슬쩍 뇌와 호르몬의 영향으로 이야기한다. 그래도 몇몇 실험들은 나름대로 사회적 영향을 무시할 수 있을 만한 요소로 보고 해석할 만큼의 설득력이 (나에게) 있었다.

태어난지 2~4일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기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여자 아기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 어른과 눈을 맞추는 시간이 남자 아기보다 2배나 더 길었다. 남자 아기의 경우에는 어른이 말을 하든 안 하든 시간에 차이가 없었다.


존스홉킨스대학은 영재를 모아 능력 검사를 실시했다. 여기에는 언어지능이나 수학능력이 상위 3퍼센트에 드는 1~13살 아이들 수천 명이 참여했다. 수학 능력 검사에서 남자 아이들이 더 높은 점수를 보였는데, 점수가 올라감에 때라 남자의 비율은 증가했다……그리고 최상위 점수인 700점 이상을 받은 남녀의 비율은 13대 1이었다. 남녀의 차이는 연령이 올라감에 따라 더 두드러졌다. 남성 호르몬은 시각적 공간지각 능력을 향상시키지만 여성 호르몬은 그것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남성이 완전히 성숙했을 때 수학 점수의 차이가 더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이다……그들은 이러한 차이가 단순히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요인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했다. 우선 그들은 학교에서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른 수학 교육과정을 채택하기 때문에 남자가 추론에 강하고 여자가 단순 계산에 강하다는 주장을 조사했다. 그러나 그들은 남녀 간의 차이가 서로 다른 교육과정을 채택하기 이전부터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학 교사가 남성이기 때문에 언어와 가르치는 남성적일 것이고, 이에 따라 여자 아이들은 수학이 자신에게 맞는 과목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그러나 남자들이 더 우위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성취를 보이는 여자 아이들은 수학이라는 학문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이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어떤 여남의 차이들은 사회적인 영향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구나. 어쩌면 생물학적인 요소도 꽤 크게 작용하고 있구나’ 싶었다.(인간의 특성들이 본능과 문화 중 어떤 요인으로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은 단순히 몇%로 답하기 힘든 것 같다. 보다 복잡한 과정과 이분법으로 분리해서 설명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다.)

잠깐! 여기서 그만 읽으면 안돼. 아직 할 말이 너무 많이 남았어.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그렇듯이 저자는 여남의 차이를 ‘순수’하게 과학적으로 밝혀내고 “싶어”한다. 정치적인 논쟁에서 빗겨나서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연구 진행 과정에서 사회적인 영향을 무시할수 없음은 물론이고,(연구비가 어떤 연구에 가는지를 보시라. 연구자들이 어떤 연구를 하고 “싶어”하는가가 이미 정치적인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연구 결과 또한 연구자의 맥락대로만 퍼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권력관계가 얽혀있는 문제일수록 더 쉽게 가십거리로 기사에 나고 많은 사람들이 다른 맥락들을 덧붙여 자신의 주장에 이용한다. 그 과정들에 대한 인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뇌에 관한 한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기원과 동기와 중요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더 평화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평균적인 남성’과 ‘평균적인 여성’의 차이에 대해서 많은 연구들을 소개한다. 동시에 이 범주안에 들지 못하는 여성과 남성에 대한 설명도 덧붙인다.(나는 주로 이 범주에 들어가곤 한다.) 이런 식이다. 남성호르몬이 증가하거나 여성호르몬이 감소하면 공격성/경쟁심/자기주장/자신감/독립심이 증가한다는 ‘결과’에 바탕하여 “자궁 속에 있을 때 남성 호르몬에 추가로 노출된 남자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다른 형제에 비해 공격성이 2배나 더 강했고, 여자 아이의 겨우에는 자매보다 50정도 더 거칠었다.”고 설명한다. 생식기의 모양과 뇌의 성을 그대로 연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페니스가 있고 유전자도 XY이고 남성호르몬의 양이 적은 것도 아니지만, 자궁 속 뇌의 발달시기의 영향으로 여성의 뇌를 가질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도대체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할 때 ‘우리’는 누구냔 말이냐. 오히려 그리 많지 않은  ‘평균적인 여성’과 ‘평균적인 남성’일 뿐이다. 나같은 ‘예외’는 오히려 남/여로만 개인을 차이를 이해하려는 저런 주장에 더 많은 차별과 고통을 당할 뿐이다. 왜?소수니까? 나까지 고려하기 골치아프니까? 웃기지마. 모든 면에서 ‘천상여자’ ‘천상남자’는 없어.(그래. 있다쳐도 그게 소수야.) 저런 여/남의 차이에 대한 결과들이 사용될만한 곳은 아마도 효율성의 극대화를 위해 ‘예외’는 싹뚝 잘라버리는 보험회사나 기업의 인사과 혹은 성별이분법을 옹호히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주장속이겠지. 절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필요하진 않을거야. 내가 포함된 우리라면 말이지.

그래.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지는 않아. 하지만 어떤 차이를 읽으려 하는가는 매우 정치적이고 중요한 문제야. 성별이분법으로만 읽거나, 장애인/’정상인’의 범주로만 사람을 대할 때 결코 우리는 평등해지지 않아. 내가 포함된 우리라면 말이지.

 이 책에는 성정체성에 관한 장도 있어. 집중도가 2배 커진 상태에서 읽었지. 이 말 좀 봐.

“그리고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는 전통적인 성별과 마찬가지로, 성적 이상이 생물학적인 기능 또는 자연의 산물임을 확실하게 결론 내려 둔다.”

얼마나 언어가 없는지. 자연의 산물인데, 성적 이상이래.(저자의 의도는 좋았을 거라 생각해요. 방긋~)그럼 단순히 수적으로 적어서 ‘이상’인 건가? 그럼 수적으로 적은 어떤 것들은 이상이라고 비정상이라고 안 부르는데.  사실 백만장자도 수적으로 적잖아. 그런 건 ‘자본소유적 이상’, ‘비정상’ 이라고 하지 않지?

너무 공격적인 말투로 바뀌었네요. 조금 가라앉히고.

“되르너는 남성 호르몬의 존재 여부에 따라 여성 혹은 남성의 성적 정체성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정체성이 세 가지 단계로 나타난다고 했다. 신체적 성별 결정기, 성적 취향 결정기, 성역할 결정기가 그것이다.

첫 번째, 신체적 성별 결정기는 남성 혹은 여성의 전형적인 신체 특징이 만들어지는 데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이 분비되는 시기다.

두 번째, 성적 취향 결정기는 앞뒤 단계와 약간 겹쳐지는 단계다. 되르너는 이 시기를 여성과 남성의 시상하부가 다르게 배열되는 시기라고 설명하면서, 어른이 되었을 때 성적 행동을 통제하게 만든다고 밝히고 있다.

세 번째, 성역할 결정기는 호르몬이 태내에 있는 아이의 뇌 속에서 작용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 공격성의 수준, 사회성, 개인주의, 모험심, 소심함 등과 같은 일반적인 성격들이 형성된다. 이러한 성격은 사춘기가 되었을 때 호르몬의 영향으로 완전하게 표출이 된다.

되르너는 각각의 시기에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장 기초적인 성적 특성의 발달 단계인 첫 번째 단계에서 유전적으로 여성으로 결정된 태아가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남성 호르몬에 노출이 되었다면 남성과 같은 기관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되르너는 성적 취향 결정기에는 시상하부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남자 아이의 경우, 남성 호르몬 또는 안드로겐의 농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태어날 아이가 동성애적 경향을 띨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여자 아이의 경우 안드로겐의 수준이 높으면 같은 여성에 대해 매력을 느끼도록 시상하부가 구성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역할 결정기에는 뇌회로가 만들어지는데, 남성 혹은 여성 호르몬의 비정상적인 출현으로 여성은 남성의 패턴을 따르게 되거나 남성은 여성의 패턴을 따르게 된다고 한다.”

이 책에 의하면 되르너의 연구가 과학자들에게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어쨌거나 태아일 때 호르몬의 농도로 ‘남성/여성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지’가 결정된다는 가정은 참 신기하다. 남성에 대해서 끌린다면 거기서 남성은 뭘 말하는 걸까? 고추? 넓은 어깨? 탄탄한 살결? 굵은 목소리? 짧은 머리? 총각냄새? 무뚝뚝함? 거친 행동? 젠틀함? 책임감? 등등?

“동성애의 유형에는 단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국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동성애자의 주사위는 이미 자궁 안에서 결정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타고난 (남성)동성애자와, 이성애의 경험이 있고 심리적으로는 덜 여성적이며 동성애를 수정하기 위한 치료 효과가 잘 나타나는 후천적인 (남성)동성애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같은 후천적인 집단은 타고난 (남성)동성애 집단보다 생물학적 뿌리가 약하며, 그들의 동성애는 ‘학습 이론에 따라 익히게 된 심리사회적인 영향으로부터 야기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타고난 (남성)동성애자는 에스트로겐을 주입했을 때 호르몬 반응으로 여성적인 패턴을 보인다. 후천적인 집단은 여성 호르몬을 주입했을 때 호르몬 반응으로 남성적인 패턴을 보인다. 이처럼 환경적 또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다른 유형의 동성애가 나타날 수 있다.”

동성애자 연구는 대부분 자신을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 자신을 동성애자로 드러낸 사람만을 대상으로 했을 것이다. 그러면 동성애는 뭘까? 동성애 연구에선 주로 성적인 충동을 일으키는 대상이 동성인 걸 말하는 것 같다. 이걸 ‘타고난’ 동성애자라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동성애를 성적인 충동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다. 그게 이미 이성애중심적이다. 이성애는 성적인 충동으로만 설명되지 않잖아.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우정, 사랑, 친밀감, 애정, 성욕의 감정은 경계가 분명치 않다. 그런데 이성애중심주의는 이 모든 걸 이성 혹은 동성 간의 관계라는 이유 하나로 완벽히 구분한다. 그러다 보니 “(이성애자)남여는 친구가 불가능하다.”라는 말이 나오는 거다. 그럼 “레즈/게이끼리는 친구가 불가능하다”란 말도 나와야지. 아니잖아. 이성간에는 모든 감정과 관계들을 “통속적 사랑” 하나에 쑤셔넣어 버리는 거다.

일단 여기까지. 뭔가 더 많은 고민거리들이 떠오리지만, 일단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