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인권위/법무부의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사단법인 불허를 규탄한다.

서울시/인권위/법무부의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사단법인 불허를 규탄한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은 2014년 10월 15일 출범한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를 위한 비영리재단이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지난 2013년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부모와 인권 활동가들이 함께 뜻을 모아 1년 만에 340명의 창립회원과 1억원의 창립기금을 모으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2014년 1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사단법인 승인을 받기 위해 서울시/국가인권위/법무부의 문을 계속 두드렸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미풍 양속 저해”, “보편적 인권이 아님” 등을 들며 승인을 거부하거나 이에 대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이는 명백히 부당한 일이다.

서울시가 이야기한 “미풍 양속 저해”, 그리고 법무부가 이야기한 “보편적 인권이 아님”에서 성소수자가 현재 한국에서 정당한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지니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저들에게 성소수자는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특수한’ 인권을 지닌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인권이란 말 자체는 부당하며 폭력적인 ‘특수한 상황’에서 ‘보편적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등장한 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상황에 의해 그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등장한 말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인권은 보편적인 것이며, 그 사람의 성별/국적/인종/장애/질병/성정체성/성적지향 등을 가리지 않고 주어지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이다. 그러므로 법무부의 “보편적 인권이 아님”이란 말은 성소수자는 “동등한 인간이 아님”이라는 뜻이 되며 더 나아가 성소수자는 “인간이 아님”이라는 말이 되어버린다.

한국에서 성소수자 운동과 커뮤니티는 해마다 날로 증가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성소수자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국가 시스템 속에 성소수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정당한 자리가 마련 되어 있지 않다. 이번 <비온뒤무지개재단> 사단법인 불허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현재 한국의 이러한 상황은 <비온뒤무지개재단>이 필요한 이유를 더욱 분명하게 하고 있다. 재단 명칭인 ‘비온뒤무지개’는 비온 뒤에 뜨는 무지개처럼 국내 성적소수자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인권위/법무부는 이러한 염원을 가로막을 그 어떤 정당한 이유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루 빨리 사단법인 승인을 허가해야 할 것이다.

완전변태 (http://wanbyun.org)

완전변태 연극 ‘진흙’

dasjflasdf완전변태 연극 ‘진흙’

2013년 9월 14일 7시 서대문구 신촌동 2-93 체화당

주의 –

1. 10분 늦으시면 연극이 끝날 수 있습니다.

2. 촬영은 주최측의 기록용 이외에는 금지됩니다.

주최 / 기획/ 연출 / 기타 등등 : 완전변태 (wanbyun.org / 010-9375-0287)

 

 

 

<장애인 접근권에 관한 안내>

* 공연장은 엘리베이터 등의 시설이 없는 지하공간입니다. 활동 보조 인력은 따로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가능한 부분에 있어서는 최대한의 이동 보조를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대사는 자막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기타 안내>

완변의 웹진 《이성애》(2012.12)에 실린 글 〈진흙〉(http://wanbyun.org/archives/4954)을 미리 읽고 오시면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용산참사 현장을 스쳐 지나가며…

용산참사 현장을 스쳐 지나가며…

 

두 달 전부터 용산역 근처로 이사 왔다. 그래서 집을 나와 한가로이 그냥 걷다보면 용산참사 현장을 지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난 죄책감을 느껴야했다. 저곳에서 함께 투쟁하고 있지 않은 자신, 바로 집 옆이면서 일주일에 1-2번이라도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는 자신,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보고 느끼면서 죄책감을 느낀다.

 

이런 죄책감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의무감에서 나오는 것 같다. 중요한 투쟁이고 무거운 싸움이라는 것을 알면서, 그리고 알기에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내 안에 분명 존재하고 있고 이러한 것들로부터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다. 마음속으로 함께 하고 싶다고 느끼는 자신 또한 분명 있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라… 뭐랄까? 변명을 하자면 일단 최근 나는 나의 일상에 찌들어가고 있었고, 교통사고로 허리가 아파서 하우스처럼 만성 히스테리 상태였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변명은 그 안에서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성소수자로서의 나로서 완전변태의 회원으로서 대책위와 함께 있을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많은 설명과 설득과 이야기를 풀어내야 할지를 생각하는 순간 막막해지고 힘이 빠진다.

 

나는 많은 운동들에 관심이 있고 다른 운동들과 함께 하고 싶다. 의욕만 앞서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함께 하고 싶은 욕망 자체는 강한 편이다. 하지만 함께 하고자 할 때 그런 결정을 할 때 그 앞에 펼쳐질 무지막지한 일거리들(나는 성소수자에요, 해치지 않아요, 그냥 그런 것이에요, 아 제가 게이인 것 같긴 한데 게이가 아닌 것 같기도 해요, 바이는 아니에요, 트랜스젠더도 아닌 것 같은데, 근데 게이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게이라고 나를 온전히 설명하긴 좀 어려운 것 같고, 그렇다고 딱히 언어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아 난 그냥 나에요.. 그냥 그렇게 보면 될 것 같아요.. 등등)을 생각하는 순간 힘이 빠지고 의욕은 현실 앞에 좌절한다.

 

(사실 용산참사대책위와 함께 일해본 적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으면서 분명 피곤할 것이고 너무나도 힘들 것이라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은 편견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경험상 예측가능한 상황이라는 것, 전혀 근거 없는 상상 혹은 편견은 아니라는 것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내 탓인 걸까? 물론 누군가는 그 안에 들어가서 풀어내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내야 한다곤 생각한다. 뚫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대 없이 변화를 만들어내기는.. 특히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더더욱 힘드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수 없는 것 같다. 그럴 힘이 없는 것 같다. 무기력 선언. 이런 나의 무기력 선언이 무책임한 것일까? 운동 한답시고 돌아다니는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운동이라는 것은 뭘까? 나는 운동을 왜 하는 걸까? 의무감으로 책임감만으로 운동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것이 옳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또한 그냥 선언일 뿐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 같다.(최소한 나에겐) 내가 운동을 하게 된 이유는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주고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고 또한 나 자신 자체를 계속해서 알 수 있게 발견할 수 있게 느낄 수 있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많은 경우 다른 운동(다른 운동이라는 표현이 매우 거리감을 두고서, 어느 정도는 편협한 표현이라는 느낌이 든다.)과 연대하고자 할 때 나는 사회주의자로서 존재할 뿐이었다. 그 정도였다. 아니면 여성주의자로서 정도? 나에게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은 매우 매우 중요한데.. 그 부분이 삭제된 채 연대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경험은 나에게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힘을 얻는 경우들도 분명 있었지만(함께 하는 사람들의 적극성, 진취성을 보면서..) 그렇지 못한 경우들도 허다했다. 오히려 열 받고 피곤하고 짜증나는 경우들이 많았다.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와 멀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고 사실 이런 경우 이건 내 탓이 아닌 것 같다. 마초적이고 위협적인 언행들, 나보다 나이 많다고 함부로 반말하며 나를 소위 ‘어린’ 아이로 만들어 버리는 행태, 성소수자라고 감히 밝힐 수 없게 만드는 분위기, 나를 당연히 이성애자 남성으로 간주해버리는 행태, 그리고 밝히는 순간 나를 향한 의아한 시선(수많은 궁금증과 약간의 경멸이 뒤섞인 그 망할 시선), 그런 것들은 내 탓이 아니다. 내가 연대해온 사람들의 탓이다. 그들이 잘못한 것이다. 그들이 나의 연대하고픈 마음을 거부한 것이다. (용산대책위와 이야기해본 적 없으니 대책위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경험상 그저 보통의 위의 반응들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게 되고 그것이 근거 없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 같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끝맺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나는 연대하고 싶고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싶고 그런 것들을 통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눈곱만큼이라도 바꾸고 싶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예전에 그랬듯이 언젠가 다시 힘이 나고 부딪힐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면 어디든 가서 나 자신을 드러내며 성소수자라고 이야기하며 완전변태에서 왔어요라고 말하면서 연대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나의 발걸음은 용산참사현장을 스쳐지나갈 것 같다. 물론 대책위에 대한 무한한 지지를 마음속으로는 항상 보내고 있다. 파이팅!이라고 지나가면서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외친다. 그 마음과 외침이 대책위와 그곳의 유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나 또한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내 마음 만큼 성소수자로서의 나와 그들(이런 표현 싫은데.. 적당한 게 생각나지 않는다.)이 연대하고 싶고 그들에 대한 나의 지지만큼 성소수자 운동에 대해 그들이 지지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린 언젠가 함께 하고 있겠지….아마도….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