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어제 수업에서 토론을 하다가, “예를 들면, 내가 ‘나는 여자가 좋아요’라고 말을 했을 때…” 라는 문장을 내뱉게 됐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자유, 그리고 민중에 대한 얘기를 하다보면, 사람들은 끊임없이 ‘동성애자’의 예를 드는데, 어쨌든, 대답을 하면서, 저 문장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공간 안에 몇명의 동성애자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전부 다 이성애자일 수도 있고 말이다. 어쨌든, 다들 이성애자 ‘인 것처럼’ 보이는데(물론 나를 포함해서 그렇게 보여지거나 암묵적인 합의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공간 안에서 저 문장을 뱉어낸 순간, 왜 그렇게 통쾌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약간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된다. 예전에는 ‘예를 들어서 한 여성이 ‘나는 여자가 좋아요’…”라고 표현하거나, “예를 들어서 한 남성이 ‘나는 남자가 좋아요’…”라는 식으로 표현해왔었다. 그런데 어제는 부득이하게 나의 일본어가 너무나 날것이어서 그랬는지 무의식 중에 뱉어버린 것인지 “예를 들면 가 ‘나는 여자가 좋아요’…”라고 말한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실실 웃음이 나왔다. 나사가 빠진 것처럼 풀풀거렸다. 굉장히 통쾌했다. 왜 그 전에는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지? 앞으로는 자주 이런 표현을 사용해야 겠다. “ ‘예를 들면’ 내가 나는 여자가 좋아요….”라고 말이다. 여기에서 “” 마크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거짓말은 아닌데요, 다 말한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그게 당신이 원한 거 아니었나요?


어쩌다가, 내가 아는 레즈비언과 내가 아는 이성애자가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이성애자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젠더에 관심이 많고, 동성애자의 인권문제가 ‘관심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이성애자 친구는 “아, 그랬어?” 라고 대답해주었지만, 그 뒤로도 계속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하지만, 남자 아이돌 좋아하고 그러지 않았어?” (‘하지만’으로 문장이 시작된다.) “네, 좋아해요.” “그런데, 전에 내 남자친구랑 같이 본 적 있었잖아. 그 때, 남자친구가 나중에 나한테 너 혹시 여자 좋아하는 부류 아니냐고 몰래 물어봤었거든, 그 때 나는 그냥 너 그런 거 아니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그랬었거든. 근데 진짜 신기하다.” “아, 그랬어요?”(이상하게도, 남자애들은 눈치를 채나봐. 여자애들은 모르고 말이야.) “레즈비언은 아니지?”(질문이 부정문이다.) “음, 조금 복잡한데, 여자도 좋고 남자도 싫진 않아요. 그런데 요새는 성적으로 별로 관심이 없는 시기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한 동안은 에이섹슈얼인가 고민하고 있었어요.” “여자도 괜찮아?” “네, 전 괜찮아요.” (여자 좋아해요.) “그런데, 레즈비언도 아닌데 레즈비언들만 있는 데서 긴장 안돼?”(여자가 괜찮다는 의미는 레즈비언이랑 같은 말이 아닌 걸로 인식하고 있었나보다.) “네?? 아, 그냥 저는 익숙해요.”


원치않는 상황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고, 커밍아웃을 할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환경적으로 커밍아웃을 강요당하는 듯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를 강하게 이성애자라고 믿는 상황에서는,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반쪽짜리 솔직함이었는데, 그것도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나는 레즈비언이에요.” 라고 완벽한 문장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이런 식으로 대화가 흘러가버린다는 것도 잘 몰랐다. 하지만, 그 순간에 더이상 어떻게 솔직해야 하는지 두려웠고, 무서웠다.  입안이 꺼끌한 느낌이 들었고, 식은땀이 나는 걸 느꼈다. ‘왜 그렇게 돌려말했을까?’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완전히 솔직하지도 않았다. ‘이 정도면 알았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잠시간 잊고 있었나보다. 그 순간에 이성애자인 그 친구가 원하는 대답은 너무나 명확해보였고, 그 대답이 너무 견고해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억울함이나 허탈함은 나중에 찾아왔지만, 약간의 혐오와 자책감은 그 대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연쇄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 제대로 말해야 하는데’, ‘목까지 차올랐었는데’, ‘다음에 만나면 말해볼까?’


‘왜 나는 나를 설명하려고 이렇게 노력해야할까?’, ‘내가 진실하지 않았던 것이 온전히 나의 잘못일까.’, ‘그런데 말이에요. 이게 당신이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나요?’ ‘나는 왜 이렇게 남죠.’ ‘왜, 이렇게 무언가 남아있죠.’ 아직 내 안에서 그 날의 대화는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그게 대화였는지 질의응답을 가장한 취조였는지도 알 수 없다. 기억하지 싫은 건지도 모르겠다.



난 미쳤다.

난 미쳤다. 피해망상증, 과대망상증에 걸렸다. 비뚤어졌다. 좋게 볼 수 있는 것도 나쁘게 본다. 제 정신이 아니다.

“난 남자보다 여자가 좋아. 자식아” 그 찡그러진 얼굴.

그의 면전에서 바지를 갈아입는다고 팬티만 걸친 녀석을 보고선, 뭐라고 한마디 내던진 소리다. 농담이겠지.

난 남자보다 여자가 좋아. 난 남자보다 여자가 좋아

얼굴 근육이 굳어지는 게 느껴진다. 고개를 돌린다. 내 표정을 봤을까? 그냥 드러낼까 말까. 귀찮다. 짜증난다. 밉다. 배신감이 든다. 커밍아웃까지 했는데. 나를 배려한다고 생각했는데.

개인적으로 악감정을 가지려는 건 아니다. 왠 착한 척? 욕할 수 있다면 욕할 거면서. 그러면 너만 힘들어지니까 아닌 척 하는 거지. 이 나이 또래 ‘남자애들’ 사이에 흔한 혐오다/장난이다/놀이다/공유다/연대다. 몰라서 그러는 거다. 악수할 때 손을 내밀듯이, 배우는 반사적인 혐오일 뿐이다. 구조의 문제다. 그래서 뭐? 내 기분이 나아지진 않는다. “난 남자보다 여자가 좋아.” “난 사과보다 키위가 좋아.” 그냥 그런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너 이성애자인지 누가 몰라? 남자가 팬티만 입은 거 한 두번 보는 것도 아니고 얼굴은 왜 찡그려?

익숙한 인터뷰 장면. “남자끼리 사랑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는 질문에 깜짝 놀라고 상상하기도 싫다는 혐오/경멸의 표정.

“이해하려고 노력해줍쇼.” “이해가 안 되더라도 인정은 해달라!” “어째서 이성애자는 동성애를 인정하고 말고할 수 있는 권력이 있는 거냐?”

우리에게는 혐오의 자유가 있는 건가? 얼마전 화성인이라는 티비프로그램에는 “남성 혐오자”라고 어떤 여성이 나왔다.

“난 싫다. 남자들끼리 그거 하는 건 역겹다.” 그저 감정을 표현하는 건가?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는 건가? 우리는 무엇을 혐오하나? ‘자연스럽게’ 혐오하게 되나?

그냥 잊어버려도 된다. 많이 그래왔듯이. 이젠 안 그럴거다. 까먹기 전에 모조리 기록할 거다. 난 모났고 사회 부적응자다. 마음이 좁아 터졌고, 매우 감정적이다. 예민하다. 피곤한 스타일.

구구절절이 내가 왜 기분이 나빴는지 설명하기 보단 생깔거다. 말해봤자 알아듣지도 못한다. 한 번 시도했었고 그걸로 충분하다. 미워하고 왜 미워하는지 궁금해하고 대화해서 풀고 이렇게 안 할거다. 잔인하게 할 말만 하면서 선을 그을 거다. 그 어떤 관계의 진전도, 친밀감도 공유하지 않은 채 피 말려 버릴 테다. 내가 먼저 말려 버릴 테지만.

별로 나쁜 애는 아니다. 어쩌다보니 나같은 괴상망측한 정신병자를 만나서 불쌍하게 된거지. 사실 걔가 잘못했으면 내 또래 남자애들의 반은 다 잘못했고 나머지 반은 잘못할 예정이다. 상관없다. 난 편협하다. 공정한 건 판사가 할 일. 난 걔가 밉다. 호모포비아라고 욕할 거다. 도덕적 정당성을 내세워서 욕할거다. 죄책감이 들도록 힘으로 밀어낼거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지금 이 사회에서 이성애자들이 기껏 할 수 있는 커밍아웃은 “나 건드릴 생각은 꿈도 꾸지마(–;)” “난 정상이야(넌 비정상이야)”라고 선포하거나 동성애혐오밖에 없다.

덧붙여서, 난 매우 간사하고 정치적이다. 이 글은 선량한 시민의 간절한 절규 따위가 아니다. 무척이나 계산적인 글이다. 이 글을 쓰면서 분노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이렇게 올린다. 난 시끄러우니까. 난 쿨하지 않으니까.

또 말했다. 나 게이라고.

그래서 뭐. 뭘 말한 걸까? 

“난 동성애자/게이야”라는 말은 나에 대해 무엇을 설명해줄까? (생각해보니 보통 좀 더 성실히 이야기하고 싶을 때 동성애자라고 말하고 커밍아웃을 던져버리듯이 하고 싶을 때 게이라고 하는 편인 거 같다. 아무래도 게이에 더 많은 이미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느낌이라 그런가? 뭐 어차피 그들에게는 그게그거일테지만.) 내가 ‘남성’을 사랑하는 대상으로 여긴다는 거? 그건 당신이 이성애자라는 단어를 들을 때 상상할 수 있는 만큼,아무것도 나에 대해 설명할 수 없을 거다. 어쩌면 원하지 않는 다른 이미지만 전해줄 수 있겠지. 비정상, 변태, 더러워, 불쌍해, 신기해 등등. 그리고 사실 정확히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정확히 ‘남성’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정확히 ‘사랑’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당신은 아는가? 그저 내가 좋아하는/성적으로 끌리는/사랑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모아 놓고 그게 뭔지 종합할 뿐인데, 난 계속 좋아하는/성적으로 끌리는/사랑하는 새로운 사람이 생기니까 그것도 조금씩 변한다.

한 4년간의 나의 삶은 커밍아웃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계속 진행 중~. 누구 말 마따나 불쌍하기 그지 없다. 섹스도 한번 안 해본 애(그 당시로 치자면 말이다. ‘처녀’라고 하면 게이들이 떨 호들갑이 들리는구나.)가 커밍아웃만 하고 다니니. 그들에겐 게이=섹스니까 말이다. 어쨌든 그 많은 커밍아웃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을 기대했던(혹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일까?

-처음. 가족에게 커밍아웃 했을 때에는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철저히 금지되었던 욕망, 경험을 드러내고 내 스스로를 받아들이겠다는 말. 흥분, 혼란, 공포, 통쾌함 들이 뒤섞인 시간은 길게 늘어지고 몸에서는 열이나고 덜덜덜 떨렸다. 더 이상 나를 버리지 않겠다. 선언이었다. 그들이 날 버리지 않기를 꿈꿨지만 기대하진 않으려 했다. 기대가 많아질 수록 나를 버려야 했을 테니까.

-다행히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다. 그 때 쯤 친구들에게 했던 커밍아웃은 그들이 나에게 많은 것들을 물어봐주길 기대한 말이었다. “그래. 넌 게이야~ 난 상관없어”하고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첫사랑은 어땠는지, 친구들 중에 누가 제일 맘에 드느지, 어떨 지점에서 힘들었던 건지. 그냥 뭐든 좋았다. 내가 동성애자로서의 내가 존재하는 이야기면. 그랬기에 그때의 난 “넌 남자역할이야? 여자역할이야?” 같은 질문들도 그저 반가웠다.

-한 번은 동아리 커뮤니티 게시판에다가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기도 했다. 이 모임에 있을지도 모르는 동성애자, 또 다른 나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동성애자/게이/호모에 씌워진 그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고도 싶었다.

-동성애자로서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생기자, 더 이상 그들이 날 버려도 그리 크게 두렵지 않았다. 나에게는 날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동성애혐오 발언을 거침없이 던지는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기도 했다.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그들을 당황시키고 입막음 시켰음 했다. 불친절하기 그지 없었다. 그들이 혼란스럽던 말던 내 알바 아니었다. 나는 침착하게 말 한마디로 그들을 테러했다. 동성애자 여기 있으니까 생각 좀 해라. 생각하기 싫으면 입닥쳐라. 동성애가 나름 인권의 담론에 속한 만큼 노골적인 동성애혐오 발언을 계속 내뱉을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젠 그냥 거짓말 하기 싫어서 커밍아웃을 하곤 한다. 여자친구 있냐고? 졸업하고 뭐할거냐고? 이런 질문들에 거짓말로 대답하기 귀찮다. 그런데다 에너지 쏟고 싶지 않다. 더이상 (진심으로든 전략적으로든) 불쌍한 척, 저자세로 인권의 방패막을 앞에 깔고 커밍아웃하지 않는다. 그냥 말한다. 나 게이라고. 그들의 반응이 그리 크게 기대되지도 걱정되지도 않는다. 놀라는 표정도 익숙하다. 가끔씩 재밌는 놀이이기도 하다.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은 “나 동성애자/게이야”라고 이 빈약한 한 문장을 말하고 다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