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화장실

  남자화장실에 가는 일은 늘 고역이다.
  남자끼리 뭐 어때, 라는 생각으로 아무렇지 않게 옷을 내리고 몸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들. 오줌이 변기에 떨어지는 소리, 가래 뱉는 소리, 힘 주는 소리, 그 어떤 소리조차 가려지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소리를 숨기기 위해 애쓰는 사람 따위는 없다, 고 말해도 좋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내가 있고,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말해 버리는 것은 잘못이다.
  직장 건물에 있는 다른 사무실들과 함께 쓰는 공용 화장실은 좁다. 소변기 두 개에 좌변기 두 개. 문이 없어서 소변기가 있는 공간은 밖에서도 다 보인다. 소변기 사이에 칸막이 따위는 물론 없다. 복도를 오가거나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는 그 소변기에서 남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오줌을 눈다. 오줌을 누는 것이 시원하다, 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걸쭉한 소리를 내며 볼 일을 다 보고 커단 행동으로 몸을 떠는 것도 잊지 않는다.
  혐오라기보다는 공포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저들이 무섭다. 아무렇지 않게 내 몸을 만지는 사람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몸을 내보이고, 당연한 일이라는 듯 남의 몸을 보려는 사람들. 남자끼리, 라는 동질감과 남자끼리, 에서의 경쟁심이 묘하게 섞인 그 시선들의 사이에 노출되는 것에 대한 공포다. 그런 그들을 보는 일이 물론 혐오스럽고 구역질나는 일이지만, 그 이전에 공포가 먼저 있다.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
  오늘도, 마치 보란 듯이 소변기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서서는 바지를 내리고 있는 어느 남자의 뒤를 지나 좌변기가 있는 칸으로 들어간다. 좁은 화장실에서 자리를 넓게 차지한 그와 혹시라도 몸이 닿을까 나는 두렵다. 사실 그가 나갈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싶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왠지 우스운 일이다. 밖에서 기다린다 해도 그의 온갖 행동과 소리들이 보이고 들리기는 마찬가지기도 하다.
  손대기 싫은 좌변기 커버를 발끝으로 들어 올리고 볼 일을 본다. 혹시라도 쪼르르, 물에 떨어지는 소리가 날까 두려워 긴장한다. 에티켓 벨이 있으면 좋겠지만, 남자들은 그게 뭔지도 모른다. 겨우 몇 백 씨씨의 오줌을 내리기 위해 버려지는 십 리터의 물이 아깝다. 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혹은 추상적인 공포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물을 낭비해도 좋은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하지만 당장은, 방법이 없다.
  남자의 몸을 하고 있지만, 여자니까,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도 좋은 어느 나라를 상상한다. 혹은, 남녀 구분이 없는 화장실―모든 변기에 칸막이가 있는 어느 화장실을 상상한다. 그곳에서 남자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여자 앞이니까 남자끼리 하는 그런 짓들을 하지 않으려 조심할까, 여자 앞이니까 자신의 남성성을 자랑하려, 혹은 여자들의 당황을 조롱하려 부러 더 크게 움직이고 더 크게 소리를 낼까. 그들이 나는, 두렵다.

성별을 물어봐2: 미궁속의 커밍아웃

“난 남성의 몸을 갖고 태어났어요. 한 번도 스스로를 남성이라고 적극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여자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이 20년 조금 넘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비수술 트랜스젠더라는 말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을 때, 난 너무도 반가웠어요.
하지만 당장 그 말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어요. 여성으로 태어나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 앞에서, 당당하게,‘나도 여성이에요’ 하고 말할 수 없었거든요. 결국은 남자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홧김에야, 그 말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나는 여성이에요, 라는 말은 아직도 서툴러요. 그러니 이렇게 말할게요. 여성으로서 살고 싶어요. 다른 여성들이 나를 여성으로서 대해주면 좋겠어요.(마초님들은 사실, 나를 안 대해 주는 게 제일 좋아요.) 다른 여성들이 나를 여성으로 대할 수 있도록, 정말로 여성에 가까운 여성이 되고 싶어요.
지금 당장은, 남자라고도 여자라고도 하기 애매한 그 사이 어디쯤엔가 있지만, 언젠가는 당당하게 ‘여자’라고 선택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종종 물어 봐줘요, 나의 성별을.”

글 검토 회의를 하면서 너무 많이 생략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내용만으로도 글 한편이 나오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디 한편만 나오랴. 속에다 썩혀 둔 이야기를 꺼내자면 끝이 없는 것을. 그런데, 어쩐지, 저 이상은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묻어 둔 지 너무 오래 됐기도 하고, 자기 검열이 너무 많은 탓이기도 하다. 그 검열을 걷을 생각은 딱히 없다. 나의 정치적 신념에 따른 검열이었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트라우마에 따른 검열이었으니까.
어릴 때부터 여자같다는 말이 참 좋았다. 어느 친구가 머리띠를 한 나를 보며 여자 같이 생겼다고 말했을 때도 좋았고, 또 다른 친구나 너는 여자 같아서 왠지 화장실도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을 때도 참 좋았다. ‘남자들’이라는 집단의 하나로 묶이는 것에는 언제나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그 그룹의 누구에게도 동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고. 그들 중에는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그리고 양성애자가 있고 또 성정체성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성정체성 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은 과학의 발전 덕에 성전환 수술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거기까지였다.
그래서 나는 나도 그냥 남자인줄 알았다. 내 몸이 혐오스러웠고 남성이라는 명명이 끔찍했지만 수술을 할 마음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그냥 독특한 남자려니 했다. 남자들이랑은 말이 통하지 않고, 여자친구들만 그득하고, 가만히 둬도 끔찍한 몸을 굳이 운동으로 다지고 싶지 않은, 뭐 그런 독특한 남잔줄로만 알았다.
이성애자가 아닐 거라는 생각은 어렴풋이 했다. 여성에 대한 나의 성애는 동질감에 기반해 있었다. 몇 안 되는 여성을 사랑하면서, 그들을 ‘이성’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거기까지였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이성이 아니라고 해 봐야, 그것은 동성도 아니었고 양성도 아니었다. 결국 그것은 이성애였다.
그러다가 알게 된 말이 비수술 트랜스젠더였다. 스스로의 신체가 갖고 있는 것과는 다른 성을 자신의 성별 정체성으로 삼으면서 성전환 수술은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대학을 이미 반나마 다닌 후의 일이었다. 주사바늘이 싫은 사람도, 매스가 싫은 사람도, 그리고 자신의 성별을 몸으로 증명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비수술 트랜스젠더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도 꽤나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내가 스스로를 그렇게 불러도 좋을까,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그리고 레즈비언이라고 말해도 좋을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선뜻 그렇게 선언하지는 못했다. 내가 정체성을 선택하도록, 그리고 선언하도록 만든 것은 애인의 입에서 나온 남자의 조건―내가 갖추어야 할 그 조건들을 들은 때였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든 웃어 넘기면 된다지만, 내가 사랑하는, 평생을 함께 할 사람에게만큼은 그렇게 읽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의 입장과 나의 입장이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그렇게 여기지 않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말했다. 나는 비수술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살고 싶다고, 그렇게 나를 대해 달라고.
그리고나서 몇 번이나 말했을까. 내가 여성이라고, 나는 레즈비언이라고. 아마, 한 번도 당당히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애인과 싸우면서 몇 번쯤 입에 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맨정신에서 나는 여전히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홧김에 내린 결정이라서, 나의 선택에 자신감이 없어서,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접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앞에서 나는 차마 내가 여성이라고, 나도 여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공포와 고통의 앞에서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남성공화국이라 해도 좋을 이 세상에서 20년 가까이를 남성으로 살며 누릴 것을 누리고 짓밟을 것을 짓밟아 온 내가 당신과 같은 여성이라고 나는 말할 수가 없다.
그냥 자격지심이다. 20년 가까이를 남성으로―아무리 소극적이었다 해도― 살면서 누릴 것을 누리고 짓밟을 것을 짓밟아 온 나니까. 아무리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한다고 해도, 생리통에서부터 성범죄의 공포까지 수많은 것을 경험하지 못했고 못할 나니까. 두렵다. 나의 친구들에 대한 나의 동질감의 표시가 어쭙잖은 잰체가 될까봐 나는 입을 다문다.
트라우마에 따른 검열이다. 온갖 것을 누리고 살면서 나도 소수자야 라는 되먹지 않은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던 수많은 이들을 보며 내가 느꼈던 불쾌감. 나도 서민입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이명박을 보며 내가 느꼈던 불쾌감. 그런 말도 안 되는 선언 앞에서 오히려 대상화되는 나를 보며 느꼈던 어이 없음. 내 친구들 또한 느꼈을 그 감정들을, 그 트라우마를 나의 선언이 환기시킬까봐 나는 두렵다.
나도 안다. 모든 여성의 경험이 똑같을 필요는 없고 똑같을 수도 없듯이, 나 또한 나만의 특수한 경험을 가진 여성으로 살면 된다는 것을. 다른 여성들 앞에서 나 역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된다는 것을. 수많은 오해들이 생길 수 있겠지만, 오해들이야 풀면 그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습다. 다른 여성들이 나를 여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럴 수 있을만큼 여성에 가까운 여성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건 이상한 일이다. 그때가 되면 더 당당하게 나는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우습다. 가까워 질만한 여성이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여성이길 밝히기 이전에 누군가 나를 여성으로 대해주길 바라는 것도 요상한 발상이다.
그런데도 두렵다. 뭐가 두려운지 잘 모르겠는데도 여전히 나는 두렵다. 물론 내가 받은 트라우마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아무에게도 상처 주고 싶지 않은 착한 아이 컴플렉스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내어 준 것 이외의 선택을 이미 한 마당에서 상처 없이 그것을 인정받을 수 있기는 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두렵다.
끊임없이 분열한다. 남성의 외양을 한 누군가가 내 앞에 와서 나는 여성이에요, 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를 아무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가진 남성혐오나 남성공포의 적용 대상에서 그를 한번에 제외할 수 있을까. 사실 어쩌면 그것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못하니까 괜히 스스로 두려운 건지도 모른다.
같은 여자끼리,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같은 여자, 가 존재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언제쯤 할 수 있을까. 내가 여성이라고 커밍아웃하는 것과, 여성의 문제에 쉽게 공감하고 같은 입장에서 말함으로써 신뢰를 얻는 것, 어느 것이 먼저고 어느 것이 나중일까. 알지만 답을 말할 수는 없다. 실행하지 못할 테니까.
이렇게 패배적으로 쓰면, 사람들이 싫어하려나.

성별을 물어봐1

원래 제목은, 성별을 묻지마, 였다. 서울메트로의 시사회 이벤트에 응모하려면 몇 가지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데, 그 중에 성별항목이 끼어 있다. 이름, 나이, 주소, 전화번호까지 스크롤바를 내려가며 주관식 항목들에 답한 후 나는 스크롤바를 다시 끌어올린다. 이름을 쓰는 칸 옆에 있는 성별 항목은 남자와 여자, 두 가지 중에서 고르도록 되어 있다. 어차피 뻔한 답을 고를 거면서도 나는 늘 고민한다. 반복되는 고민을 끝내면 아무도 없는 주위를 둘러 본 후 ‘여자’를 클릭하고 전송 버튼을 누른다.

괜히 주위를 둘러 보는 것은, 내게 페니스가 있기 때문이다. 또래 남자애들처럼 사춘기에 갑자기 키가 크거나 하진 않았지만 목소리도 그럭저럭 굵어졌고 수염도 나기 시작했으니 2차 성징도 웬만큼은 있었다. 소위 ‘여자같이’ 생긴 얼굴도 아니고, ‘여자같이’ 옷을 입지도 않는다. 앞으로도 그 속성들을 바꿀 생각은 크게 없다. 그런 꼴을 하고 앉아서 스스로를 여자라고 입력하는 모습을 남에게보이는 건,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곤란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입력 전에 고민을 하는 것은 누군가 볼까봐 두려워서는 아니다. 남자도 여자도, 내게 딱 들어맞는 성별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일단 스스로의 성별을 비수술 트랜스젠더로 생각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보통의 남자로 생각하진 않았지만 성전환 수술에 마음이 동한 적이 없어서 그냥 ‘독특한 남자’ 정도로 생각해 오다가 지난 해에 내린 결론이 바로 비수술 트랜스젠더다.

비수술 트랜스젠더, 라는 말을 알게 된 것은 3년 쯤 전 학내 퀴어 동아리 소책자를 통해서였다.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해에 애인에게서 남자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의 일. 애인이 나를 남자로 대하는 것을 왠지 참을 수가 없어서, 약간은 홧김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가끔씩 고민한다. 스스로가 남자가 아니라는 생각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지만, 과연 나를 여자라고 말해도 좋을까, 하는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나는 늘고민한다.

사설이 길어졌다.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유독 객관식으로, 심지어 별 필요도 없으면서 매번 해대는 서울메트로 때문에 짜증이 나서 그런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심지어 여성주의 사이트들에서도 그건 마찬가지니까. ‘남성’을 선택하면 여성 전용 페이지에들어갈 수 없고 ‘여성’을 선택하자니 괜히 사기치고 훔쳐보는 것 같아서 마음에 걸리니 어쩌면 서울메트로보다 심각한 건 그런 사이트들이다. 다만 서울메트로가 자주 물어보니까 서울메트로에 짜증이 날 뿐.

하지만 그렇게 글을 시작하면서도 이미 알고 있었다. 진짜 곤란한 건 묻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몇 번이나,도입부를 쓰고 지우다가 결국 포기하고 끄집어낸 것이 지금 하려는 이야기다. 진짜 곤란한 건, 묻지 않고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 말이다.

앞에서 말했듯 나는 남성의 몸을 갖고 있다. 게다가 나는 여성과 꽤나 오래 연애하고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내가 남성이 아닌 다른 무엇일 거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울 거란 걸 인정은 하지만(아마 나 역시 같은 상황에서라면 그러하겠지만), 그렇다곤 해도 놀라울만큼 아무도 물어 보지 않는다. 이성애자 친구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동성애자 친구들 역시 나를 당연한 이성애자 남성으로 전제한다.

여자 친구들이 나를 남성으로 생각하는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행히 키도 작고 힘도 약해서, 그들과 있으면서 내가 남성적 역할을 맡을 일이 없는 탓이다. 그들은 나를 자신과 다른 성별로 생각하니까 대할 때 조심하기도 하고 말이다. 너는 남자니까, 라는 생각에 선을 긋는 경우가 있어 서운하긴 하지만 그건 불편하거나 불쾌한 성격의 일은 아니다.

문제는 남자들. 내가 자기들이랑 똑같은 줄 안다. 물어보지는 못 해도 눈치라도 채야 할 텐데, 도무지 그런 게 없다. 여자친구들은 너는 다른 남자들이랑 다른 거 같다든가 여성스럽다든가, 조금 가까이라도 가는데, 남자들은 도무지 그런 게 없다. 물론 그들 역시 나를 독특한 사람으로 보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당연하다는 듯 트인 곳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어제치고 아무 때나 덤벼들어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 역겹다 못해 무섭기까지 하다. 숙소는 당연히 남녀로만 나누면 되는 줄 아는, 그거면 충분한 줄 아는 관행도 나는 무섭고 사람 많으니까 한 번에 두 세명씩 같이 씻자거나 찜질방에 같이 가자는 말도 나는 무섭다. 물론, 쟤는 절대 누구랑 같이 샤워 안 하더라며 한 번 놀래켜 주기나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갑자기 샤워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애초에 공용 샤워실 문은 잠기지도 않는단말이다.

‘실천단’이라는 이름으로 단체 활동을 갔을 때였다. 어찌어찌 구한 숙소는 아직 세입자가 없는 어느 빌딩. 가게나 사무실이 들어올 넓은 홀이 한 층을 다 채우고 있고 층계참에 화장실이 있는 곳이었다. 그 화장실이 바로 샤워실. 설상가상으로 문고리가 고장나서 잠기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두 세명씩 들어가서 차례차례 다 씻은 후 새벽이 되어서야 나 혼자가 남았다. 잠가지 않는 문을 닫아만 두고 복도에 널부러져 있던 화이트보드를 옮겨다 바리케이트를 친 후에야 주섬주섬 옷을 벗었다.

한참 씻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여는 거다. 화이트보드를 보고 이게 뭐지, 라길래 씻고 있어요- 라고 답했다. 물론 들어오지 말라는뜻이었는데… 그 사람은 그걸 쓱 밀고 들어오면서 이런 건 왜 세워 놨냐, 라고 내뱉고는 내 뒤에 있던 소변기에서 볼 일을 보고나갔다. 그가 그 일련의 행동들을 하는 동안 나는, 벗은 몸으로, 세면대 거울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절대 그에게 물이 튈까봐 씻는 걸 멈춘 것은 아니다. 어이 없어서, 그리고 두려워서, 몸이 얼어붙어 있었다.

뭐, 늘 그런 식이다. 남자끼린데 뭐 어때, 라며 어깨에 매달리더니 이자식 돼지네 라며 가슴을 주무르고, 남자끼린데 뭐 어때, 라며 되먹지 않은 음담패설을 찍찍 내뱉고. 나는 눈꼽만큼도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데다가 거기에 더해 불쾌감과 혐오감만을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서 근거도 없는 동질감을 느끼며 자기 편한 대로 해대는 거다.

사는 꼴이 그렇다보니, 성별을 묻지마, 라는 글은 도무지 써 지지가 않더라. 필요치 않은 영역에서 성별을 구분하는 것, 성별정보를 아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에 매우 강하게 반대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 물어봐 줬으면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드니까 말이다. 성별을 당연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남의 성별을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더 나쁘다고 느낀다. 매일써대는 글이 아니니까, 더 나쁜 일을 까야지.

이 글을 읽고 누군가 공감할 수 있을까. 시각은 새벽 다섯시, 감정은 분노(?), 멀쩡한 글이 나올 리가 없는 터라 잘 모르겠지만, 사실 맨정신으로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문단 세 개만 죽어라 썼다 지웠다 했으니까.

내가 움푹이라는 이름으로 완전변태에서 글을 쓴다는 건 완변 멤버들을 빼면 내 애인밖에 모른다. 그런데 내 지인들 중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혹은 글쓴이가 누군지 한 번에 감을 잡고 내게 성별을 물어오면 나는 뭐라 답할까. 엄청나게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 제대로 답하지 못하겠지만(아우팅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알려줬는데도 나를 남성으로 대할 게 무서워서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뭐 물론, 아무도 안 물을 걸 아니까 하는 생각이다.

처음으로 말해 본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난 남성의 몸을 갖고 태어났어요. 한 번도 스스로를 남성이라고 적극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여자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이 20년 조금 넘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비수술 트랜스젠더라는 말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을 때, 난 너무도 반가웠어요.

하지만 당장 그 말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어요. 여성으로 태어나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 앞에서, 당당하게, ‘나도 여성이에요’ 하고 말할 수 없었거든요. 결국은 남자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홧김에야, 그 말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나는 여성이에요, 라는 말은 아직도 서툴러요. 그러니 이렇게 말할게요. 여성으로서 살고 싶어요. 다른 여성들이 나를 여성으로서 대해주면 좋겠어요.(마초님들은 사실, 나를 안 대해 주는 게 제일 좋아요.) 다른 여성들이 나를 여성으로 대할 수 있도록, 정말로 여성에 가까운 여성이 되고 싶어요.

지금 당장은, 남자라고도 여자라고도 하기 애매한 그 사이 어디쯤엔가 있지만, 언젠가는 당당하게 ‘여자’라고 선택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종종 물어 봐줘요, 나의 성별을.

 

 

 

덧. 나를 그렇게도 괴롭히는 남자들 중에, 또 누군가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나는 슬프다. 나 또한 어딘가에,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나는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