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과 실명 사이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비슷한 나이의 두 사람을, 한 사람은OOO형이라고 지칭하고 다른 한 사람은 XX이라 지칭하는 것. 왜 그런지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봤는데, 자기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더라. 단지 OOO에는 형을 붙이지 않으면 껄끄러운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잘 살펴보니, 아하, OOO는 실명이고 XX는 닉네임이다.

가끔은 닉네임에도 ‘형’이나 ‘언니’를 붙이곤 한다. 그래서 애써 ‘씨’나 ‘님’을 붙여 호칭하기도 하지만 이건 뭔가 답을 회피하는 느낌이다. 실명에 존칭 (이라기 보다는 나이 호칭) 을 붙여야할 것만 같은 생각은 왜 드는걸까. 상상해보자. Aissata라는 실명을 가진 사람이 아무리 한국어를 잘 한다고 해도 이 사람에게 Aissata형이라던가 Aissata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결국 이건, 한국어에 이미 내재되어있는 구조이지 않을까.

애초에 실명과 닉네임의 차이는 뭘까? 단지 사람을 구별하기 편하기 위해서 사용하는게 이름일텐데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은 역시 그렇게 체득당했기 때문일까. 나이 많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의 이름을 그냥 부를 수 없게 하는 어떤 알 수 없는 숨은 구조로부터 비롯된 것일까–생각해보면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을 특칭하는, 이름에 붙이는 호칭은 없다. 고작 호칭에 괜한 난리인가 싶기도 하지만 여전히 불편하다. 뭔가 더 필요하다. 닉네임을 사용하는 것만이 이 갈증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

기사 아저씨가 너무했네

떠나는 버스를 눈앞에서 놓치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기사 아저씨가 너무했네’라고. 흠칫. 내가 버스의 운전석에 앉아있던 분을 보았던가? 만일 성별과 나이가 대충 확인되었다면 ‘기사 아저씨’라고 호칭해도 되는건가? 아마도 나는 ‘버스를 운전하는 분들은 대체로 기사 아저씨였어’하는 생각에 그런 호칭을 무심코 사용하려 했던게 아닐까?

‘기사 아저씨’에게선 세 가지가 발견된다. 하나. ‘기사’라는 직업, 둘. ‘아저씨’에서 남성이라는 성별, 셋. ‘아저씨’에서 한 30~50대의 나이.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기사’에서 왜 곧바로 ‘아저씨’를 떠올렸냐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통계적인 것일까? 아니면 아무리 통계랑 일치할지라도, 나의 (어떤 것에 근거한건지는 불명확한) 편견에서 비롯된 직업과 성별, 그리고 나이의 연결방식인 것일까.

상황을 바꿔 생각해보자. 만일 내가 그 분의 외관을 확인했다면, ‘기사 아저씨’라는 호칭은 이제 올바른가? 만일 ‘아줌마’라면, ‘할아버지’나 ‘할머니’라면, ‘형’이나 ‘언니’라면? 여전히 아니라고 본다. 결국 기사 아저씨라는 것은 한 개인을 특칭한다기 보다는 전체 카테고리의 일원으로서 사람을 세는 것이 될테니까. 언어의 경제성과 같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어쨌건 고민을 해봐야 하는 지점이 아닐까.

한편, 이런 호칭들ㅡ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 형, 언니, 오빠, 누나, 등등등등등등ㅡ은 언제나 나이와 성별을 동시에 담고 있다. 어쩌면 나이란 것은 정말 이성애주의와 가부장제와는 떨어질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강하게 생각했다. 이 시점에서 성별 중립적이고 나이 중립적인 호칭을 새로 생각해보고 싶다. ‘선생님’이 떠오르긴 했는데…. 음, 이것도 나이가 들어있잖아!

마지막으로 사족을 붙여서, ‘기사’라는 직업을 호칭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왜 우리는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변호사님’ㅡ사실 나는 직업에 님자를 붙이면 안된다고 배웠어요ㅡ이라고 부르면서 ‘기사 아저씨’라고 부르고 ‘군인 아저씨’라고 부르고 ‘경찰 아저씨’라고 부르고 ‘식당 아줌마’, 내지는 ‘식당 이모’라고 부르게 되는 것 (오, 여기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나의 편견들, 용서하소서)일까? 직업사이의 간극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 애초에 한국어에 높임말이 있는 시점에서 이미 망했다는 생각이 약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