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화장실

  남자화장실에 가는 일은 늘 고역이다.
  남자끼리 뭐 어때, 라는 생각으로 아무렇지 않게 옷을 내리고 몸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들. 오줌이 변기에 떨어지는 소리, 가래 뱉는 소리, 힘 주는 소리, 그 어떤 소리조차 가려지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소리를 숨기기 위해 애쓰는 사람 따위는 없다, 고 말해도 좋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내가 있고,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말해 버리는 것은 잘못이다.
  직장 건물에 있는 다른 사무실들과 함께 쓰는 공용 화장실은 좁다. 소변기 두 개에 좌변기 두 개. 문이 없어서 소변기가 있는 공간은 밖에서도 다 보인다. 소변기 사이에 칸막이 따위는 물론 없다. 복도를 오가거나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는 그 소변기에서 남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오줌을 눈다. 오줌을 누는 것이 시원하다, 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걸쭉한 소리를 내며 볼 일을 다 보고 커단 행동으로 몸을 떠는 것도 잊지 않는다.
  혐오라기보다는 공포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저들이 무섭다. 아무렇지 않게 내 몸을 만지는 사람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몸을 내보이고, 당연한 일이라는 듯 남의 몸을 보려는 사람들. 남자끼리, 라는 동질감과 남자끼리, 에서의 경쟁심이 묘하게 섞인 그 시선들의 사이에 노출되는 것에 대한 공포다. 그런 그들을 보는 일이 물론 혐오스럽고 구역질나는 일이지만, 그 이전에 공포가 먼저 있다.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
  오늘도, 마치 보란 듯이 소변기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서서는 바지를 내리고 있는 어느 남자의 뒤를 지나 좌변기가 있는 칸으로 들어간다. 좁은 화장실에서 자리를 넓게 차지한 그와 혹시라도 몸이 닿을까 나는 두렵다. 사실 그가 나갈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싶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왠지 우스운 일이다. 밖에서 기다린다 해도 그의 온갖 행동과 소리들이 보이고 들리기는 마찬가지기도 하다.
  손대기 싫은 좌변기 커버를 발끝으로 들어 올리고 볼 일을 본다. 혹시라도 쪼르르, 물에 떨어지는 소리가 날까 두려워 긴장한다. 에티켓 벨이 있으면 좋겠지만, 남자들은 그게 뭔지도 모른다. 겨우 몇 백 씨씨의 오줌을 내리기 위해 버려지는 십 리터의 물이 아깝다. 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혹은 추상적인 공포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물을 낭비해도 좋은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하지만 당장은, 방법이 없다.
  남자의 몸을 하고 있지만, 여자니까,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도 좋은 어느 나라를 상상한다. 혹은, 남녀 구분이 없는 화장실―모든 변기에 칸막이가 있는 어느 화장실을 상상한다. 그곳에서 남자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여자 앞이니까 남자끼리 하는 그런 짓들을 하지 않으려 조심할까, 여자 앞이니까 자신의 남성성을 자랑하려, 혹은 여자들의 당황을 조롱하려 부러 더 크게 움직이고 더 크게 소리를 낼까. 그들이 나는,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