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사태

툭. ‘다양성영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독립영화, 저예산영화, 예술영화, 고전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을 광범위하게 통칭하는 이 단어가 연상케 하는 것이 있다. 조금씩 흐려지다 허울 좋은 ‘진흥’의 구색만 맞추게 될지 모를 지금 현재의 위태로움이다. 분별 없는 다양성과 ‘자유로운 세계’ 속에 생경한 말들이 ‘나머지’를 정체화하고 영역을 지정해주기 시작한 위태로움. 영진위는 영상미디어센터, 독립영화전용관, 시네마테크전용관의 사업운영자 면접을 벌였다. 의도를 훤히 알 만하다.

왜들 그러는 거야 ‘커밍아웃’

백분토론에서 노회찬이 재밌는 소릴 했더라. 기회가 되면 다시보기로 정확히 확인해보시는 게 좋겠다. 1시간 52분 지점에서 시민논객 하나가 황석영 변절에 대해 의견을 던지자 노회찬이 답한다. ( ① 나는 성전환자,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해온 사람인데 ② 국민 대다수가 성전환하는 것은 곤란하다) 대체로 쾌활하게 웃고 손석희는 다음으로 넘어간다. ‘잘 들었습니다.’
우스개소리. 깔깔. 싸이월드 메인화면 수준으로 유쾌하다. 농담이란 좋은 것이다. 그럴까? 비유의 적절성을 떠나서 생방송 중에 이런 개그를 할 수 있는 그는 ‘진보적’ 정치인인가?
궁금증에 인터넷을 검색하다 어느 블로그에 들어갔다. 그는 여행광이었고 카테고리명은 ‘커밍아웃’이었다. 재미나다. 그 블로거는 단지 여행광일 뿐이었고 외출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이것은 또 무슨 ‘커밍아웃’?
그러므로 이번엔 커밍아웃에 대한 질문 : 다음 중 ‘커밍아웃’ 이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것은?
㉠ 배우 K 코수술 커밍아웃 “촬영 도중 상대배우 주먹에 맞아”
㉡ “쌀 없어 굶었다” 작가 J 불우한 어린시절 커밍아웃
㉢ “나 교회 다니기 시작했어.” 떨리는 마음으로 나는 내 변화를 커밍아웃했다. 
㉣ “커밍아웃할 때가 왔다고 생각해! 난 사실 바이야!”
그래 코미디든 말장난이든 좋다. 소수자를 소재로 무슨 짓을 하든 ‘(그런 뜻이 있긴 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두 손바닥 내밀면 그만이다. 할 수 있어서 했던 말이고 대다수가 호의적으로 웃어주니 굳이 자중할 필요 없다 여겼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은근슬쩍 똑똑한 척도 해줄 수 있다. 맑스와 엥겔스 하트뿅뿅 해놓고 ‘맑스의 권위에 흠집을 냈다’느니 MB와 어청수를 커플로 묶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의 정치적 지형도를 명쾌하게 정리’했다느니 실없이 종이에 잉크를 찍어발라도 (일부를 제외한) 주위 사람들은 주먹 꼭 쥐며 환호할 따름이다. 이야. 위트와 상상력이여.
너희만의 커밍아웃. 다시금 그것의 의미. ‘나는 치부도 용기있게 고백하는 사람’ 내지는 ‘쇼킹하고 발칙한 선언’ 절대, 절대로 너희 것.
‘커밍아웃’은 쓰지도 말라는 건 아니다. 외려 그게 뭔지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좋겠다. 만약에 내가 내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하는 데 ‘커밍아웃’이란 표현을 쓰면서, 본래 그 말의 연유가 무엇인지 그렇다면 그들은 또 어떻게 ‘커밍아웃’하고 있는지 아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아니아니, 그 말 그리 막 쓰다간 어느 날 깜놀하게 된다 그 말이다. ‘레즈는 우웩’ 이라고 내뱉던 당신이 마침내 당신 절친의 커밍아웃을 짓밟아 깊이 상처 입히고 말 거라는 이야기다. 그리고는 또 ‘너가 갑자기 커밍아웃해서 난 너무 놀랐고 상처를 입었어’ 라고 막무가내 푸념을 늘어놓을 셈이지 싶다는 것이다. ‘커밍아웃은 좀 자제해줘. 더 많이 준비해서- 차근차근-’ 그렇게 우선 방어막을 치고 영영 그것을 다시 생각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그건, 실은, 당신이 ‘커밍아웃’을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잖은가? 
게다가 그 당신의 ‘커밍아웃’이라는 것은 중요한, 당신의 또 다른 무언가를 까발리고 있을 수도 있다. 이 까발림은 ‘아웃팅’이 아니지만 당신의 언어습관을 보건대 그리 부를 수도 있겠다. 고민 없이 쉽게 획득하고 휘둘러왔던 당신의 ‘이성애중심성’은 아뿔싸 만천하에 알려진다. 생방송으로 당장 쏘아버린다. 피슝. ‘앗, 나는 호모섹슈얼에 대한 지식, 소수자에 대한 관대함을 과시하고 싶었을 뿐인디?’  
듣는 사람이 움찔 경직되고 말하는 당신만 우스워서 신나는 것을 우리는 코미디가 아니라 흔히 ‘가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농담이 뭔지 코미디가 뭔지 커밍아웃이 뭔지 또 아웃팅이 뭔지를 잘 아시겠습니까? 저는 퀴어퍼레이드에 나갈 것이고 때때로 이반검열 중지나 에이즈 문제로 거리 캠페인을 할 것입니다. 당신은 나의 이 ‘커밍아웃’을 이해합니까? ‘커밍아웃’이 얼마나 많은 의미 덩어리를 껴안고 있는 말인지, 당신에게 전달하기 위해 나는 더 무엇을 이야기하면(‘커밍아웃’하는 것이 아니라) 되겠습니까?

미디어오늘만평사태 (아니면 미디어오늘만평늘있는일)

실은 진중권이 게이미학에 대해 쓴 글을 보고도 속으로 웃었다. 써야 할 것이 많이 있을 텐데 왜 이리 무료한 글을 썼나 싶어서다. 책의 페이지를 늘리기 위해 실은 것도 아닐 텐데. 게이는 일반인과 다른 미학을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그리고 그에 기대어 게이의 사회적 가치를 말하는 건 도드라질 정도로 똑똑치 못한 일이었다. 허술하다못해 불리한 근거가 상기시킨 건, 가치가 없으면 어쩌자는 걸까 의아한 질문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도우려다 우습게 됐지만 의도는 귀엽지 않나.
갸우뚱할 일이 자주 생긴다. 없는 셈 치던 존재들을 질릴 만치 소재로 쓰고 있어서다. 어떤 식이든 얄팍한 고민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한다. 때때로 기다아니다 한 마디 덧붙이거나 어깨만 으쓱하면 된다. 일상이다. 다만 매번 겪어도 화가 나는 때가 있다. 정치적인 발언을 위해 편한 대로 아무것이나 끌어서 쓸 때다. 예컨대 미디어오늘의 만평 따위. 세메냐와 서민MB를 나란히 놓는 일. 
며칠이 지나도 열불이 난다. 이 분노를 웃음으로 바꾸고 다시 삶의 재료로 쓰기 전에 글줄을 더 많이 남기기로 한다. 이 만평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나. 간성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이상스러운 성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정체성이다. 부끄러움이 있다면 대통령에게 빗댈 수 없다. 비판을 하고자 했다면 비판하는 이유를 함축하면 되었다. 날카로운 펜이 정확한 방향을 겨누지 않으면 많은 사람을 찌르게 된다. 만평은 대통령을 뭉개는 데 실패했고 대신 충분히 조롱당하고 있는 것을 또 비웃었다. 
실은 동성애자도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진보인사들에 동조하고 싶지 않은 짜증이 있다. 그 가치는 적을 부수기 위해 던지는 돌멩이 하나쯤 되려나 한다. 의심이다. 간성과 대통령의 서민코스프레 비교가 전자에 대한 모욕인 걸 모를 만큼 어리석을 수가 있나. 정치적 올바름이란 이것을 위해 저것을 짓밟는 반항질인가. 진보가 만든 세상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기분도 든다. 그보다는 자격이 안될 것 같다. 배려의 마음으로 끼워준다면 착한 나사처럼 조그만 흠집 하나 메꿔야 하나. 세메냐의 정체성은 모호하지 않고 대통령을 비판하겠다는 그림 한 장이 세상에서 제일 중한 것도 아니다. 물론 버릴 것은 버려야겠고 편을 잘 택하는 점은 참 영리하기도 하다. 이렇게나 뒤엉킨 분노가 넘쳐흐르고 살이 떨린다. 그 고상함과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식들, 목적성, 정당함, 풍부한 예시와 사전에나 나오는 단어들, 떳떳한 거만, 투지, 진지하고 엄숙한 몸짓, 희생정신, 그런 것들이 넌더리가 나는가보다. 연장도 아니거늘 여기선 어르고 달래며 뭘 가르쳐주신다고 하고 저기선 동네북처럼 두드려댄다. 어쩌나. 비문 안 쓰는 연습을 좀 하고 그림도 틈틈이 배워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