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일까. 짜증만 낸 것은, 화를 내지 않는 것은 (누군가는 ‘짜증’과 ‘화’가 같은 것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였나. 간혹 겉으로 표출하던 화 조차도 사실은 짜증이었던 기억들. 결국 그 짜증의 끝에서 원인의 화살 끝을 내 안쪽으로 돌려버렸던 기억들. 모두 다 내가 히스테릭하고 소심한 인간이라서 그런거지, 응, 그런거지 하며.
화를 내지 말라고 한다. 진정하고 이야기를 하라고. ‘이성’적으로 이야기를 하자고. 그런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언제나 이 감정들은 뭘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화가 나는 걸까? ‘이성적’으로 화를 낼 수는 없는걸까? 짜증이 북받쳐올라도, 화가 머리 끝까지 나도, 워워, 진정하고 머리를 식혀, 그리고 이야기해, 라는 말에 더 화가 나는 걸. 그렇게 화를 낼 수 없는, 내서도 안 되는 인간이 되어간다.
짜증, 으로 화를 바꿔버렸다. 이것이 ‘나’의 문제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짜증을 만들고, 그것마저 속으로 삭여버린다. 가끔 통제를 벗어나 표출되는 짜증은 그냥 짜증이고 투정이다.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버리며,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화가 나는 상황에도, 이건 그냥 짜증일거야 라며 움직이지 않고, 부딪히지 않게 되는 것에. 이윽고 감정이 움직이지 않게 되고, 어떤 꿈틀거림도 그냥 그런거지, 뭐ㅡ 라며 넘겨버리고, 움직이고 싶을 때마저 그것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그런 상태가 된다.
그렇게, 화를 내지 않는 만큼, 화를 짜증으로 삭여 삼켜버리고 억지로 탈난 배를 움켜쥐는 만큼, 다른 이의 화에 직면했을 때 약해진다. 막상 다른 이의 화를 만나서 진정해요, 머리를 식히고 이야기해요, 라고 할 수 없는 것은 나 또한 머리를 식힐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일까? 같이 화를 내거나, 서로 화를 내서 서로 부딪히거나 하는 일이 점점 사라져가며 화에 대한 면역도, 화를 파고들 힘도 사라져간다.
이제 슬슬, 이 짜증에도 진력이 난다. 계속되는 불편이 단지 짜증인 이 상황이 ‘짜증’나, 문득 화를 내고 싶어졌다. 짜증 대신에 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