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의문

결의문

; 유하

 

글이 쓰고 싶다. 잡지가 완성되어 가는 이 시기에, 이것은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일 수도, 글을 보면서 무언가 머릿 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할 말’들을 끄집어 내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취업을 하고, 나 자신을 회사와 ‘정상적 사회’의 틀에 우겨 넣으면서, 나의 ‘할 말’들은 회사의 발목을 잡는 부정적이고 눈치 없는 푸념이 되고, 사회 초년생으로서 겸손하지 못한 자존심이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나의 ‘할 말’들은 언어도, 화자도 잃어 버리게 되는 것 같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다. 분명 나의 불편함들은 언어를 찾지 못했어도 실존하고 있는 것 같고, 이것은 두통으로 화로, 그리고 다음 날의 숙취로만 구현되고 있을 뿐이다.

뭐가 됐든 좋으니 토해내고 싶다. 다음 잡지에는 꼭 글을 쓰리라.

놀라는 것 놀리는 것

사람들이 놀라는 것이 좋다. 최근 놀라게 만드는 것이 유쾌해진다.

과제 발표에서 에널섹스를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것

과거 같이 활동하던 반여성주의적 단체가 과거의 낭만을 회자하던 자리에서 지금의 나는 너네랑 운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것

모두가 공감하는 것을 편견이라고 설명하는 대신 무지라고 꼬집는 것

차별적 발언과 욕설이 섞인 농담에 모두가 웃는 자리에서 무표정으로 개그한 자를 쳐다보는 것

파우치에 들어가지 않은 생리대를 들고 다니는 것을 놀라며 쳐다보는 아저씨를 내려보는 것

그 벙쪄있는 침묵에서 혼자 살며시 비웃어주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싸우자는 마음이면 돼


엄마를 때렸다.


엄마는 세상이 자기중심에서 아빠로, 그러다가 자식들로, 다시 또 나에게로 넘어온 사람이다. 유능하고 독선적이며 막나가지만 그래도 소위 ‘모성’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엄마는 항상 감정의 기복이 심했다. 그리고 자제를 할 수 없을 때에는 나에게 그 화를 풀곤 했다. 내가 미련한 애라서 매를 벌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엄마는 자신이 그 시대에 여성이어서 얻지 못한 것,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나에게 투영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나에게 이루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했다. 나도 그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엄마를 기쁘게 해주기 위하여. 다만,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내가 그 꿈을 이뤄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원하는 삶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것을 이뤄주기에는 내가 너무 힘에 부쳤다. 다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과, 그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막아섰다. 그렇게 우리 관계는 멈춰 있었다.


그런 엄마를 때렸다. 전혀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고, 술이 잔뜩 취한 상태였긴 하지만. 엄마는 내가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살이나 찌게 술을 먹고 왔으며 여자애가 술을 취하게 마셨다는 것에 화를 내고 있었다. 엄마의 화는 폭력을 동반한다. 아직까지 왜 내가 그 때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차피 술에 취해있었으니까 기억하기도 힘들겠지만. (지금와서 정당화를 한다면 나의 풀지 못한 화가 그렇게 표출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왜 그랬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시끄러운 엄마가 짜증이 났을수도 있고, 날 때리고 있는게 싫어서 그랬을 수도 있었겠지.) 나는 왼손을 들어 엄마의 오른쪽 따귀를 한 번 때렸다. 짝. 내 손의 얼얼함과 엄마의 충격받은 얼굴, 그리고 곧이어 온 아빠의 구타. 엉망이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아침에 아빠는 나를 깨워 기억이 안난다며 잘못했다고 싹싹 빌라고 하였고(그래, 항상 너는 그렇게 해왔던거야. 무책임한 것) 나는 집에서 나갈 때를 대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만 잔뜩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은 잘 풀렸다. 이런 일을 해놓고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엄마는 내가 자신이 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엄마를 위해 살 수 없다는 것을 내 의지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엄마는 내가 갈 길은 정해져있지만 내가 그 선택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여성주의 나부랭이 따라다니지 말고 니 인생을 고민하라고 한다. 분명히 아직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나의 인생은 엄마의 인생에서 분리되었다. ‘때림’은 내가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서 한 말들과 쓴 논리들, 흘렸던 눈물과 부렸던 짜증들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이 되어있었다.


나에게 폭력이란 항상 남을 상처 입히는 것이었다. 나에게 온 폭력을 폭력으로 되돌려 주고 싶지 않았다. 폭력은 나에게,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일 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 무서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내가 반격을 하면 그 순간 무서운 보복이 돌아오고, 때리면 더 맞고, 그러니까 내가 참으면 일이 좋게 좋게 더 큰 피해를 다른 사람들에게 입히지 않은 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이, 울지 않고 때리지 않는 것이 이 시간을 제일 빠르게 넘길 수 있는 길이라 믿었다.(그것을 엄마는 매를 부른 것이라고 표현했다. 미련하다고.) 폭력을 쓰는 내 자신을 상상하는 것도 무서웠다. 폭력을 쓰는 나는 아빠와 같은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기분을 위하여 있지도 않은 일까지 만들어가며 사람을 때리는 명분으로 삼고, 그것으로 분을 삭히던 그런 인간이 될 것 같았다. 모든 것을 폭력으로 해결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를 효과적으로, 충동적으로 사용하고 또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엄마를 때린 순간에 충격을 받았다. 나에게 나 자신은 사람을 때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람을 때렸다는 것에 쇼크였고 그것이 엄마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랬다. (사실,  왜 아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누군가를 때렸다는 사실이 나를 ‘사람을 때리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와 내가 그렇게 증오하던 아빠는 같은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손을 더럽힌 기분.


하지만 생각을 하다 보니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때림’과 아빠의 ‘때림’은 결코 같지 않다.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고 자신에게 거역하는 사람을 폭력으로 제압하면 자신의 가부장적 권력을 과시하는 당신과 지금까지 내가 당해온 것들을 이야기하며 더 이상 당하고만 살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나는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데 시간이 걸렸다. 나 자신에게서 죄책감을 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때림’은 더 이상 폭력이 아닌 자기방어가 되었다. 나는 너를 상처낼 수 있어. 넌 그래도 돼. 더 이상 나를 건드리지마. 내 나름의 표현방법이었다. 그것도 매우 효과적인. 나는 사람을 때리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때릴 수도 있는, 내가 당할 때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방어할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럼에도 아마 나는 때리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을 때리는 것이 나에게는 그렇게 유쾌한 선택지는 아니니까. 하지만 그것또한 나의 선택지 안에 있으며 나는 언제든지 방어할 수 있고 공격할 수 있고 그러한 방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힘이 된다. 싸우자.


덧. 이 사건이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났더라면 웹진에 같이 넣을 수 있었을텐데.

가족.독립

결혼을 할 생각은 없다. 뭐 내가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사회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결혼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분명 하는 순간 그 늪으로 빠지는 나를 보고만 있을 것 같으니까.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의 가족과 나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금의 ‘가족’에 있는 아빠와 동생은 제외하더라도 엄마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애정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과의 관계는 소모적이다. 지금 나는 기생하고 있으며 그 사람의 욕망을 거짓으로나마 충족해주고 있다.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엄마의 욕망과 나의 욕망을 분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엄마가 나에게 끊임없이 주입하고 애걸하던 것들에 대해서 찬찬히 생각해보고, 그 사람의 욕망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이야기해야 한다. (아마 대학을 다 다닐 때까지는 못할 것 같지만. 비싼 등록금ㅠ. ) 몇 날을 지내며 분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나의 온전한 욕망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엄마에게 영향을 받았던, 강압적인 아빠의 폭력에 대한 반발심이었던, 그런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던 사실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것을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회화되는 것이 이런 것이가 싶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그들을 탓하고 싶지도 않다. 단순히 내 자신이 나로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달까. 몇 날을 더 고민했다. 엄마의 욕망과 내가 가족과, 사회와 쌓아온 것들을 나에게서 전부 떨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의 나에 충실하자고, 그들이 만든 것도 고맙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하지만 받아들이자고 했다. 그것이 현재의 나라고 인정해야 했다.

아직까지 나의 욕망을 다 찾은 것은 아니다. 지금도 찾는 중이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만 더 고민하고 찾아가서 내가 원하는 인생을 그릴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과정이 나를 ‘집을 나가게’ 해줄 것이다. 왠지 매우 오랜만에 ‘확신’이라는 것이 든다. 언젠가는 엄마에게 나는 내 인생을 찾았노라고, 이제는 당신의 인생을 찾으시라고 진심으로 얘기해주고 싶다. 집에 꼭꼭 숨겨둔 핑크색 여행가방을 끌고.

 

_여성해방제준비 발제문 中

교도소

그러니까 지난 목요일에 수업에서 견학으로 의정부교도소를 갔다왔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랄까. (여담이지만 처음 죄수현황에서 봤을 때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한미협정반대시위를 하다 온 사람들이란다.)]

열심히 설명을 해가지만, 그 속에는 제소자에 대한 시혜와 경멸의 시선이 가득했다. 그것은 견학을 하는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걷다가 저 멀리 제소자가 보이면 우리의 원숭이 쳐다보듯 목을 늘여가며 눈을 굴려댔다.

간수들의 ‘이제 옛날같지 않아요. 지금은 잘하고 있어요’ 라는 말과 함께, 자기들이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곳만 보여주었다.

외국어를 가르친다며 토익고득점자가 있다며 자랑하고 있지만, 일본어와 영어 둘중에 선택을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선택이 아니다. 둘중에 하나는 꼭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각방앞에 영어반1, 일어반1 이런식으로 붙여져 있더라.

사회화를 위한다고 직업훈련을 한다지만, 손으로 전기면도기를 만드는 일이 사회에 나가면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그 누구와도 이야기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뭘 배워가라는 걸까. 심지어 견학을 간 우리들 앞에서 간수들은 좋은 성능을 가진 새로운 기계를 자랑하듯 제소자들을 ‘칭찬’했고, 그 어떠한 대화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소자들은 그저 묵묵히 일을 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보여준 곳이 그들의 자랑인 ‘가족만남의 집’이다. 펜션처럼 만들어놓은 25평형 콘도에 매우 엄선한 1급 제소자들 30여명에게 가족들과 하룻밤을 지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전기가 쳐져있는 펜스와 각 창문마다 있는 창살들 안에서 지낼 수 있는 몇 안되는 ‘행운’인 것이다. 그것도 그나마 신원이 확실하고 호적이 확실한 가족이어야 한단다. 서로 말도 하지 않는 가족은 여기서 만날 수 있는 반면에 파트너나 친구, 뭐 호적이 확실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아크릴 벽을 사이에 두고 고작 10분 얼굴을 마주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면회실도 보고 싶다고 교수가 이야기했다. 갑자기 제소자와 가족의 인권을 들먹이며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럼 그 전에 우리가 만나고 얼굴도 보고 심지어 간수들에게 희화화되고 견학자들에게 웃음거리가 된 제소자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으면서. 면회실은 옛날의 그대로 말이 통할 수 있는 몇 개의 구멍을 제외하고는 막혀있고, 면회하는 동안에 간수가 옆에 같이 있는다고 교수가 나중에 말해주더라.) 가족제도는 이런 저런 곳에서 다 골치다.

떠나는 길에 간수들이 한 마디 더 붙였다. ‘지금은 옛날과 다르고 사람들의 인식과 다르게 많이 교도소가 좋아지고 인권신장도 하고 있으니까 잘 홍보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