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

핏줄이라는 단어에서 나는 혈관을 떠올린다. 혈관이 터져서 일어나는 일들. 웅크리고 앉아서 덩어리진 피를 뱉어내는 모친. 나는 그가 각혈을 하면 ‘침착하게’ 대처했다.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고, 물을 가져다주고, 응급차를 부르고, 그와 내가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 따위를 담으며 나갈 채비를 했다. 그것은 그에게 감탄을 자아냈다. 부친은 노란 고름 같은 인상뿐이다. 아무리 닦아내어도 고름은 흘러나왔고, 진득하게 거즈에 달라붙었다. 부친은 날마다 그것을 갈아붙이고 있었다.

우리는 놀랄 줄을 모른다. 모친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쓴 수기를 보고 나는 궁금했다. 왜 아무것도 슬프지 않았을까? 원통하지 않았을까? 억울하지 않았을까? 화나지 않았을까? 왜, 그랬다고도 쓰지 않을까? 버려졌어도, 이유 모르고 흠씬 맞았어도, 굶주렸어도, 감금됐어도, 수개월 뒤에 죽는다는 말을 들었어도, 모두가 멸시했어도 그것에 대해 덧붙여 쓰지 않았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정말로 그런 일이. 그런 일이 많이 있었다고.

내 부모는 고되게 살았다. 그리고 그들은 실패하지 않았다. 삶이 버거워서 세상에 별다른 기여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악행을 한 적도 없다. 모친은 다른 환자의 환자복을 손으로 씻어서 돌려준 일이 있다고 했다. 죽게 된다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시설에서 체득한 순응적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시간만 흘려보내는 병원생활이었기에 마음을 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죽음을 앞두고 잔뜩 앓아서 바싹 마른 어린아이가 생면부지의 남에게 베풀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사기만 당한 미련한 삶이라고 욕하지만, ‘속기는 속았어도 남을 속여본 적은 없다’는 그 삶이 실패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가난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가난하니까. 가난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말은 마치 이것이 우리의 잘못인 것처럼 들린다. 이것이 잘못이라면 나는 잘못하고 싶지 않다. 이것이 옳은 일이어도 나는 하지 않을 것이다. 가난하면 더 많은 가책을 느껴야 한다. 가난하면 더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가난하면 그렇지만 나쁜 냄새가 난다. 가난하면 음울한 음악이 울린다. 가난하면, 가난하면, 가난하면…… 가난은 끝이 나지 않는다.

집주인에게서 쫓겨나면서 잠시 현금이 된 내 보증금 때문에 모친이 수급자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양의무자이다. 보증금을 땅에 묻을까 생각했다. 그 생각은 부끄럽지 않다. 그 지역에 수급자가 많으면 어떻게든 누가 탈락한다. 쌀이 없는 집도 탈락한다. 실정이 아니라 예산에 맞추어 집행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선 백만 원이 생겨도 땅에 파묻는 게 현명했다. 삼십만 원을 지키려는 정부와, 백만 원을 지키려는 우리가 있었다. 물론 써버리면 된다. 석 달을 살 수 있다. 쌀을 산다. 저축은 하지 않고.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 내일이 없어 보이는 이들도 내일을 생각하고 걱정하는데,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한동안 모친은 시달렸다. 영문 모를 전화가 오더니 갑자기 누가 찾아왔다. 그들은 당신이 장애인이므로 매주 오겠다고, 말동무나 해주겠다고 했다. 시간도 알아서들 정하더니 ‘우리도 먹고 살자는 거’라며 고집을 피웠다. 모친은 말소리를 내지 못하니 손만 저었다.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강하게 거절했다가 장애가 심하지 않다고 전달될까봐 두려웠다. 그런 사기꾼한테 또 당하고 있다고 내가 분노하고서야 일은 멈췄다. 그게 활동보조라는 것, 다른 지역은 그렇게 막무가내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지원을 개개인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등급에 따라 기계적으로 배치하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모친은 이번에도 꺼지라고 하지 못했다.

그가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려면 더 많은 것을 드러내야 한다. 나는 마치 헝클어진 실더미 같은 것을 안고 있었다. 그 중의 한 가닥을 쥐고 다시 감아보려다가 그만둔 날도 있다. 잘 풀리지 않아서 무작정 잘라본 날도 있다. 나는 그가 왜 실패하지 않았는지 쓰고 싶다. 그는 살기 위해 애썼다. 잘 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미련했지만, 악행을 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것이 미련할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가난한 자답게 충분히 가책을 느끼거나 정직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우리를 따라다니는 나쁜 냄새와 음울한 음악을 떨쳐내려고 했다. 그래도 나는 가끔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패하는 삶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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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반복, 실패

반복, 실패

같은 이야기는 몇 번이나 반복하는 것 같은데,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면 실패했다는 절망감이 먼저 든다. ‘아직도’라는 말을 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느껴지지만, 마음 한구석에 ‘아직도’는 매번 맴돈다. 언제까지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하나, 개미지옥에 빠져서 발버둥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매번 같은 자리에서 허우적거려야 하나.

처음 반성폭력 운동을 했을 때, 뒷풀이 술자리에서 술도 마시지 못하고 두 시간동안 한 남학생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던 적이 있다. 그날 언급했던 다양한 성폭력 사례들에서, ‘데이트 성폭력’,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라는 것이 자신의 상황 같았던 모양이다. 자신의 애인과 술 먹고 섹스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애인이 기억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같이 이야기 나눠보라고 했더니, 애인은 섹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했다. 반복적인 이야기의 핵심을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 깨달았다. 이 사람은 나에게 “그것은 성폭력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을 뿐이었다.

매번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경찰까지 넘어가는 사안이 아닌, 특히나 데이트 성폭력에 대해서, 그리고 ‘강간’이 아닌 성폭력에 대해서 말이다. “성폭력이 아니다” 혹은 “성폭력이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넘쳐나지만, 성폭력이 무엇이냐를 함께 고민할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성폭력입니다, 땅땅, 치는 판결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이 성폭력을 가능하게 한 것인지, 그것을 어떻게 탈피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다. “성폭력 없는 세상”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폭력 없는 세상”을 기대하지 않는 만큼 말이다. 난 피해자가 낙인 찍히지 않는, 그것을 자기 변명 없이 당당히 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제3자의 성폭력이다/아니다 판단을 통해 자기 위안을 하는 세상 대신 말이다.

나는 성폭력의 의미를 더 넓게 해석하면서,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타겟으로 하는 폭력을 포함시켜 해석했었다. (지금은 각각의 폭력을 세밀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묶여 해석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성별에 부과되는 이미지, 강요되는 행위, 이성 간의 섹스 각본 등 다양한 요소들이 두 폭력을 만들어내는 공통 기제로 존재했다. 그래서 내게 반성폭력 운동은 성소수자 운동과 분리되지 않았다.

성폭력과 동일한 기제 위에서 차별받지만, 퀴어 커뮤니티는 마치 스스로를 “성폭력 없는 세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성폭력은 성별 권력 차이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권력 차에서 발생하며, 다양한 구도의 피해-가해가 존재한다. 군대 내 성폭력 문제를 가시화하고, MTF 트랜스젠더에게 발생한 성폭력 피해를 ‘강간’으로 인정받기 위한 운동1들은 이러한 전제 하에서 이루어졌다. ‘강간’으로 인정되는 성폭력의 문제에 대해서 퀴어 커뮤니티의 운동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커뮤니티 내에서 일어나는 “성을 기제로 하는” 성폭력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소위 법적으로 ‘성희롱’이라고 명명되는 성폭력에 대해서만은, “이성 간의 성별 권력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성적 기제의 폭력”로 읽고 있는 듯하다. ‘남성 가해자와 여성 피해자로 그려지는 성폭력의 전형적 이미지’를 가지고, 레즈비언 간에 혹은 게이 간에는 성폭력이 아니라 ‘플러팅’만 존재한다는 근거가 된다고 믿는 것일까. 그래서 지난 어느 토론회장에서, “단체 내 성폭력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끊임없이 당혹감만을 강조하고, “팸이 성폭력 가해자가 되는 상황”을 예외적인 무언가로 이야기해 청중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상황이 나타나는 것일까.

마치 퀴어커뮤니티는 예외인 듯하다. 호모포비아 집단은 우리를 ‘변태’라고 부르고, 우리는 ‘그래, 변태다! 어쩔래!’라고 외친다. 퀴어 커뮤니티는 분명 지금 사회의 성에 부과되는 규범을 전복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전복적 힘은 때로는, 성폭력 상황을 다시금 재현하는 이상한 형태로 나타난다. “야한 옷이 성폭력을 유발한다”는 말에 “남자들은 게이 무서워서 해변에 어떻게 가지?”라든가 “게이에게 강간을 당해봐야 안다” 등의 발언이 ‘전복적’인듯 나타난다. 그것이 퀴어커뮤니티에서 나온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게 비춰지는 것도, 위치 지어지는 것도 불편하다. 다시금 성폭력은 헤테로섹슈얼 이성 간의 문제가 되고, 퀴어는 어떤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예외적 존재가 된다.

‘우리’는 그렇게 예외적 존재가 되어 ‘유쾌하게’ ‘농담’을 즐기고 웃어넘긴다. 성폭력을 판단해달라는 앞선 그 질문은 “이거 성폭력 아니야?”라고 아주 가볍게, 매우 유쾌하게 등장한다. 퀴어들만 모인 술자리의 유희거리가 되어 나타난다. 성폭력은 이성 간에 나타나는 것이지만, 자신들은 이성에게 끌리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참 재미있는 농담으로 여겨졌나보다. 이게 성폭력일 리 없지, 웃음이 그득한 채로 말이다.

나도 우리가 되어 유쾌하게 웃기를 바란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까지 ‘유쾌’한가. 대학 성소수자 모임에서 나는 유쾌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가 ‘유쾌한 농담’에 불쾌해하는 것은 아직 내가 게이 문화에 섞여들어가지 못한 깐깐한 레즈비언이기 때문으로 치부되었다. 커밍아웃할 수 있는 퀴어 공간은 내게도 소중했지만, 그것이 언제나 내 공간일 수는 없었다. ‘우리’는 모두 달랐고, ‘우리’의 어떤 이름은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조그만 집단에서 ‘권력’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우습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성애자의 이슈가 우선시 되고, 게이의 이슈가 우선시 되고, 커뮤니티에서 더 소수인 정체성 MTF 레즈비언에게 그 존재를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무뢰한도 있었다. 우리는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 에이섹슈얼, 인터섹슈얼, 쾌스쳐닝 등의 이름으로 공평하게 나열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순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나뉜 혹은 나뉘지도 않은 이 집단이 한 농담에 같이 웃을 수 있을까?

내가 허우적거린다고 표현할만큼 이 이야기를 많이 했던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불편하다고 했던 그 술자리에서 내가 웃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다. 난 내 문제제기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방관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나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꺼내지 않았던 내가, 반복하지 않았던 내가, 하지만 또 반복되는 이 문제제기가 실패라고 생각되어 써본다. 실패에 대해서 쓰다보니 글도 실패했다. 내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일까. 그냥 실패에 허우적되는 자의 자기 고백적 실패담으로 읽히겠구나 싶다. 언젠가는 성공담을 써보고 싶다.

1 법적으로 ‘강간’의 객체는 ‘부녀’에만 한정된다. 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에, ‘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MTF트렌스젠더는 제외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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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2014년 4월 어느 날의 일기

2014년 4월 어느 날의 일기

어쩌면 나는 장애인이다. 비수술 트랜스젠더라는 이름을 갖고 이곳에서 사는 데에는, 장애인으로서 사는 것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이미 수 년 전의 일이다. ‘우리 모두는 장애인입니다’ 같은, 공익 광고 문구 같은 것으로 오해 받지 않도록 쓸 수 있을 자신이 없어서 그간 쓰지 못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 써본다.
국어대사전은 장애인을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어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비슷한 말로 “장애자”를 제시한다. (신기하게도 장애자는 장애인의 비슷한 말로, 장애인은 장애자의 같은 말로 실려 있다.) 눈이 있지만 옮고 그름을 제대로 못 본 나야말로 장애인이라는 말은 물론 우리 모두 부족한 곳이 있으니 저들과 다를 바 없다는 ―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장애인입니다’라는 ― 말과 같은 착한 반성들이 이런 데서 비롯된다. 귀가 있지만 국민의 말을 듣지 않은 정치인들이야 말로 진짜 장애인이라는 분노 어린 헛소리도 마찬가지다.
물론 다른 데선 다르게 말한다. 자신들의 의견을 사전에 실을 수 있는 주류 인간들은 사회적 제약의 원인이 장애라고, 손상이나 결함이라고 말한다. 그와 반대로, 차별 받는 사람이 장애인이 된다고, 손상이니 결함이니 하는 것들이 그 핑계가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정한 신체적 특징은 특정한 사회에서만 장애라고 명명된다. 책에서 본 어느 미대륙 원주민 부족에서는 나와 같은 정체성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듯, 책에서 본 어느 섬에서는 농(聾)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나는, ‘비슷한 구석’을 찾는다.
누구나 수화를 할 수 있다는 그 섬에서라면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사람을 대할 때 문제가 되지 않듯, 아무도 나를 남성으로 여기지 않는 곳에서라면 내가 남성의 몸을 가진 것이 사람을 대할 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내가 혼자서도 내 몸에 혐오를 느끼듯,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여전히 불편한 때가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어딘가에서는 삶을 곤란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어쨌건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나는, ‘비슷한 구석’을 찾는다.
굳이 스스로를 장애인에 빗대는 것은, 굳이 스스로를 장애인이라는 범주에 넣는 것은 어쩌면 그저 한때 내가 장애 차별 철폐 운동의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저 당시의 내 운동과 지금의 내 운동을 한데 묶어두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맘먹고 찾아보자면, 다른 여러 약자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건, 스스로의 몸(혹은 몸에 새겨진 무언가)과 이 사회를 생각하며 나는, ‘나는 장애인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짧고 거칠게나마, 그 말에 몇 마디를 덧붙여 보고 싶었다.

오래 걸렸다. 그러고도 ‘어쩌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비슷한 구석’이라는 말로 거리를 두었다. 웹진 <이성애>에 실은 글에는 “스스로를 이성애자라고 부르는 게 어쩌면 더 편한 것 같기도 하다”라고 썼다. ‘나는 이성애자다’라고 하지 않은 것은 그러고 싶지 않아서지 그럴 수 없어서는 아니었다. ‘나는 장애인이다’라고는 쓰지 못했다. 그럴 수 없었다. 웹진 <바빴어요>에 “내가 접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앞에서 나는 차마 내가 여성이라고, 나도 여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공포와 고통의 앞에서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썼을 때와 같은 감정이다.
바로 얼마 전에도, 장애등급 심사에서 ‘걸을 수 있다’는 이유로 3급 판정을 받아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조차 못한 한 중증장애인이 화재로 사망했다. 이미 여러번 반복된 일이다. 내가 만났던 한 장애인은 태어나서 처음 자기 의사대로 해 본 일이, 서른이 넘은 나이에 점퍼 하나를 산 것이었다. 또 어떤 사람은 평생을 바보니 미친년이니 하는 소리를 들으며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런 사람 앞에서 나는, 늘 실패한다. 나의 소수자성에 장애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에, 내게 가까이 있었던 그 삶과 운동에 다가가는 데에.
단순히 그 한 마디를 내뱉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 앞에서 나는, 어떤 차원에서건 스스로를 소수자나 약자로 명명하는 것조차 망설이게 된다. 학생이나 활동가 이외의 지위를 가져 본 적 없는 나는 (물론 동시에 노동자이기도 했지만) 불편하고 불쾌했던 적은 많아도 위험했던 적은 없다. 우스운 일이다. 위협을 느끼는 일이 있었지만 그래서 위험에 처했다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극단으로 내몰리는 이곳에서, 너무 많은 이들이 그렇게 내몰리는 이곳에서, 나는 나의 감정에 제 이름을 붙이는 데에조차 실패한다.
일상적이다. 2012년 3월, 핸드폰을 변기에 빠뜨린 후 투덜거리기도 하고 수리비 걱정을 하기도 하다 나는 문득 부끄러워졌다. 그날 어떤 사람들은 제주 강정마을에서 구럼비 바위를 지키기 위해 화약고를 막고 경찰과 싸우고 있었다. 깨질 위기에 처한 그 바위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자면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그저 사치였다. 아무 죄 없이 나는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우울증 약을 먹(었)고 늘 우울에 시달리면서도 우울하다는 말을 내뱉기가 힘들다. 어딜 놀러 가볼까, 낯선 음식을 먹어볼까 하다가도 어디 한 푼 후원도 못하는데 그게 할 짓인가 싶어 그만 두는 일이 잦다. 그저 삶이 계속되기를 바라야만 하는 이들 앞에서는 투덜거리는 것도 웃고 떠드는 것도 모두 부끄럽다고, 그날 일기에 적었다. 내가 누구와 같다고 말하는 것에 이어, 내가 누구라고, 내가 어떻다고 말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적어도 내 친구들은 흔하게 겪는 일이었다. 오지랖 넓은 우리 몇몇의 문제일 줄만 알았다.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사람 수백을 태운 채로, 여객선이 가라앉았다. 새로운 소식도 없는데 여러 채널에서 종일 쉬지 않고 뉴스가 나온다. 전 국민이 슬퍼한다고 아나운서는 말했다. 전 국민이 슬퍼하기 좋도록, 방송국들은 예능 프로를 방송하지 않았다. 머리를 시키려 예능 프로 방송 시간에 맞춰 티비를 켰던 나는, 흘러 나오는 뉴스를 끄지 못해 한참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천재지변으로 많은 이들이 죽었을 때의 슬픔과는 다르다. 운명이려니, 타고난 복이 거기까지였으려니, 하는 유일한 자위가 허용되지 않는 죽음들에 대해서는 말이다. 누군가가 극단으로 몰리는 것을 넘어, 누구나가 극단으로 몰릴 수 있음을 나타내는 죽음들에 대해서는 말이다. 사전 관리도 사후 조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 나라에서, 어쩌면 살아 있음 자체가 사치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한 거야 ― 어떤 사람들이 가난한 나라, 가난한 동네를 보며 하던 말이, 어쩌면 이젠 어디를 보고 해도 낯설지 않게 되어 버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제 감정을 부끄러워 하기도 전에, 어떤 사람들은 남의 감정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가장 먼저 스스로를 부끄러워한 이들일 것이다. 그 어떤 불행에도 이 정도면 행복한 거라고 말하며, 온갖 불의를 받아들이며 살아온, 그러다 스스로 불의가 되어버린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얻는 것도 없으면서.) 카메라가 켜진 줄 모르고 웃음을 지었던 한 기자는 온갖 비난을 받았다. 구조된 후 언젠가 한 번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비쳤던 어느 생존자도 그랬다. 끝없이 슬퍼하라는 명령을 이길 수 없었던, 이미 슬펐던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말에 갔던 술집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기업들과 학교들은 평소처럼 문을 열었으며, 지상파 3사의 뉴스 시청률은 다 합쳐 30%를 밑돌았다. 케이블 채널에서는 여전히 예능 프로들이 흘러 나오고, 채널을 가리지 않고 광고는 쉼 없이 나온다. 분명히 다들 평소처럼 살고 있고, 어쩌면 그래야만 할 텐데, 사람들은 감정을 금지당한다.
잘못이 아닐 수 있는 감정이 슬픔 이외에도 하나 있다면 그것은 분노, 정당한 분노일 것이다. 삶의 사소한 것들, 변기에 빠진 핸드폰 따위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악인에 대한 분노 말이다. 40년 경력의 뱃사람이라는 자긍심을 저버리고 승객들보다 먼저 구명정에 오른 선장에게 사람들은 분노했다. (아마 나 역시, 그가 영웅적으로 죽었다면 이 사건이 조금은 덜 슬펐을 것이다.) 선상에서 보낸 40년 세월에 주어진 보상이 겨우 비정규직 선장 자리 뿐이었대도, 그것에 대해서는 슬픔도 분노도 사치였던 것일까. 재난 대책이랍시고 거창하게 법만 만들어 놓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은 분노가 허용될 만큼의 악이 아니었던 것일까.

세 덩어리의 서로 다른 이 이야기를, 나는 더 짧은 글로도 더 긴 글로도 제대로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적어도 내게 이 셋은 이어져 있다. 몇 년 뒤면 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내게도 남에게도 좋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쓰기로 했다.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누구라고, 내가 누구와 가깝다고, 내가 어떻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이 사치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기 위한, 그렇게 믿을 수 있기 위한 연습이 필요하다. 물론 단서를 달아야 한다, 연습을 위해 가볍게 소재로 삼은 것은 아니라고.

헐겁게나마 썼다.

그리고 조만간, 조금은 더, 쓰고 만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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