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8여성의날 유인물

나 여기 있어요

여성의 날 행사엔 딱 한 번 와 봤어요. 보라색이었던가, 고깔이며 스카프, 티셔츠를 맞춰 입은 사람들을 보며 엉거주춤 따라 걸었던 기억이 나요. 아름답다, 고 생각했었어요. 자신의 날을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해 즐겁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말이에요.

행렬에 자연스레 섞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남의 일인 양 멀찌감치서 구경만 하지도, 내 친구들인 양 함께 걷지도 못했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몇 미터 쯤 떨어져서 따라 걸었어요. 함께 외치지도, 함께 웃지도 못했던 것 같아요. 아름답다, 그 느낌밖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을 걸 보면.

여성의 날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내 일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도 없었던 것 같아요. 여성주의가, 여성운동이 나의 것이라고는 말할 수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요. 아마, 겁이 났던 것 같아요.

옷을 맞춰 입은 ‘여성들’의 사이에서, 홀로 다른 옷을 입고, 홀로 남성의 몸을 하고 있는 것이 말이에요.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도, 행렬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도―그들의 귀에 굵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전부 두려웠던 것 같아요.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불편하지는 않을까 싶어서.

“‘여성’은 누구인가요”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무에게도 따지고 싶지는 않아서, 저런 제목을 붙였어요. 나 여기 있어요, 라고. 알아만 줬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무서워 하지 않았으면(저는 남성의 몸을 한 사람들을 종종 무서워하거든요), 그리고 잊지 않았으면. 그런 이야기들이 하고 싶었어요.

여성의 날에 혼자 와 있는 수상쩍은 남성(의 몸), 그 사람은 지지자도, 구경꾼도 아닐지 몰라요. 그 역시도 여성일지도 몰라요. 저처럼 말이죠.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이곳에서의 약자라는 점에서 비유적으로든, 혹은 겉모습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살고 있다는 점에서든.

아무도 밀어내지 않았는데 혼자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그렇게 믿어요.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나를 밀어내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어요. 하지만 남는 걱정이 하나 있다면,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나를 밀어내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거예요. 호모포비아가 있지만 으레 그냥 이성애자 남성이려니 하는, 트랜스포비아가 있지만 으레 그냥 남성의 몸과 마음을 다 가진 사람이려니 하는, 그래서 나와 친한 사람들처럼, 그래서 나를 밀어내지 않는 누군가가 있진 않을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 누군가가 나를 밀어내게 되더라도, 그래서 어쩌면 엉거주춤 따라 가는 것조차 불편해 지더라도, 내가 여기 있다고, 나도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나, 여기 있어요.

여기 있는 나는 퀴어운동, 그러니까 성소수자 운동을 하는 사람이에요. 남성의 몸을 가지고 있고, 여성 정체성을 갖고 있어요. 성전환 수술은 하지 않았고, 나중에라도 아마 하지 않을―어쩌면 못할―것 같지만, 앞으로도 계속 여성으로 살아 갈, 여성으로서 여성의 날 행렬에 끼어들 사람이에요. 오늘 이 자리엔 게이 친구들과 함께 와 있어요. 어쩌면 안면이 있는 이성애자 남성 친구들을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겠구요.

소개는 일부러 늦게 했어요. 나 말고도, 나 여기 있어요, 하고 말하고 싶을 사람이 몇 명 쯤은 더 있지 않을까 싶어서. 감히 대신해도 된다면, 그 몇 명을 대신해 한 번 더 말해 보고 싶어요. 나 여기 있어요, 라고. 모르는 사람 누구도 여성으로 보아주지, 여성으로 불러주지 않지만 여성인, 여성으로서 여성의 날을 즐기고 있는 우리 여기 있어요, 라고.

나를, 우리를 환영해 주면 좋겠어요.

호칭에 대해서

벨을 눌렀는데 버스가 서지 않아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아저씨, 차 좀 세워주세요.” 그러고보면 참 자연스럽게도 저런 호칭을 사용한다. 식당의 노동자에게 ‘아줌마’, 혹은 ‘아주머니’라며 말을 건다던가, 가끔은 친근해보일까 하는 생각에 ‘이모’라는 호칭을 쓰기도 하고, 남성일 경우에는 ‘아저씨’가 되고 ‘삼촌’이 된다. 사실 생각해보면 ‘아주머니’, ‘아저씨’, ‘이모’, ‘삼촌’, ‘형’ 과 같은 호칭은 원래는 가족/친척 관계 내에서 쓰이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같이 느끼기 위해, 친근감을 주기 위해 이런 호칭을 사용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진짜 그럴까? 정말 ‘친근하게’ 느껴질까?

병원에 갔다. 거기 앉아있는 의사에게 아저씨, 라는 호칭을 사용해본 기억은 없다. 학교의 교사에게 아주머니, 아저씨, 삼촌, 이모 같은 호칭을 사용해본 기억도 없다. 이런저런 예를 들다보면, 이런 호칭들이 직업과 강하게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직업에는 아줌마, 아주머니, 이모가 붙고, 어떤 직업에는 아저씨가 붙고, 어떤 직업에는 (언뜻 보기엔 성별중립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선생님이 붙는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지만, 우리의 호칭엔 귀천이 있다. 물론 그 호칭들에 처음부터 그런 ‘귀천’의 어감이 붙어다녔던 것은 아니겠지만, 그건 또한, 특정한 직업군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 무수한 상황들에서 어떤 권력관계가 발생하는가를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홍익대학교의 청소노동자 투쟁1)에서 자주 나타난 ‘어머니’라는 호칭도 그런 고민을 안겨줬다. ‘어머니, 꼭 이기겠습니다’ 같은 현수막부터, 농성장의 내부에서도 청소노동자들을 어머니라 호칭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고, 언론 보도 또한 꼭 그랬다. 그리고 청소노동자들 또한, 이런 호칭을 반갑게 생각하고 농성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친근한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불편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까. ‘어머니’라는 호칭은, ‘아주머니’라는 호칭에서 대체 얼마나 벗어난 것이었을까.

‘어머니’라는 호칭은, ‘어머니같은’ 청소노동자들이 정말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에 놀란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가 이렇게 일하고 있다면 정말 끔찍할 것이라는 생각에 쓰기 시작한 호칭인듯 하다.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고, 지나친 노동강도를 요구받으며 일한다는 것은 사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끔찍한 일일 수 없다. 그게 누구였건, 그런 환경의 노동을 강요받는 것은 부당하다. 오히려 가사노동, 돌봄노동, 식당노동을 하는 여성들이 그런 노동조건 아래서 일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어머니’가 해왔던, 여성의 ‘집안일’로 여겨졌던 노동들의 연장선상에서 이런 노동이 이해되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기에, 자꾸만 ‘어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그들이 무슨 노동을 하는지, 그 노동이 어떻게 평가받아왔는지를 가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농성장에서도, 하고 싶어서,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라곤 하지만, 지지방문을 한 사람들에게 밥을 만들어 나누어준 사람들이 바로 청소노동자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사실 ‘어머니’이기 때문에, ‘어머니’라 불렀기에, 이런 일들이 그저 자연스럽게 되는게 아닐까. ‘나의 어머니’일 때만, 상황이 달라지는 것일까? 대체 어떤 사람들의 노동이 ‘진짜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았는지, 왜 ‘어머니’를 대입해야만 하는 것인지를 꼭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주)
1. 지난 1월 3일, 홍익대학교에서는 청소노동자들이 대거 해고당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열악한 노동조건 아래의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려하였으나, 대학측에서는 이들이 간접고용된 비정규직임을 이용하여 이들을 대거 해고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은 점거농성을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참하여 결국은 대학측이 고용승계와 기본 급여 인상을 약속하고, 노조 설립을 보장하도록 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아직 홍익대 측이 노조위원장을 고소한 것이나, 부당노동행위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싸움이 남아있긴 하지만 분명히 큰 성과다.

2010전국노동자대회 유인물

 

노동자는 누구인가요?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고 있는 이 자리에서 조심히 하지만 거칠게 묻고 싶습니다. ‘노동자’는 누구인가요? 그 안에 성적소수자는 있는 걸까요?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 무성애자, 간성, 자신의 성정체성을 질문중인 이들, 이 사람들은 ‘노동자’를 이야기할 때 함께 이야기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삭제된 채 이야기되는 것인가요?

 일찍이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생생히 살아 숨 쉬며 노동운동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노동자’ 안에 없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최소한의 인식은 되고 있는 것 같지만 진정으로 ‘여성’ ‘노동자’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도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장애인은, 성적 소수자는 ‘노동자’라는 말 안에, 외침 속에 존재할까요? 없는 것 같습니다.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삭제가 가능한 것은 노동운동 내에서 말해지는 ‘노동자’가 ‘비장애 이성애 남성’ 노동자만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비장애 이성애 남성’이 아닌 이들의 ‘노동운동’은 기존의 노동운동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비장애 이성애 남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성폭력과 성차별, 가부장주의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노동운동을 자신의 노동운동으로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은 장애에 따른 차별, 억압과 함께 “노동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없는 노동운동을 자신의 노동운동으로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성적 소수자는 자신의 성적 지향, 성정체성, 이를 둘러싼 혐오와 차별에 관한 이야기 없는 노동운동을 자신의 노동운동으로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너무 단정적이었나요? 가지고 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렇게 가지고 가는, 자신의 노동운동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이들 또한 무수히 보아왔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외쳐지는 ‘노동자’의 단결 속엔 ‘누구’의 단결이 이야기되어지고 있나요? 최소한 분명하게 성적 소수자는 그 단결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서 함께 단결과 투쟁을 이야기하는 성적 소수자들이 분명 있을 것인데도 말이죠.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꽤 긴 시간일 것만 같은 미래에도 그럴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노동자들이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세상을 이 곳에 굳이 온 사람들이라면 다들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때 이야기되는 그 삶은 누구의 삶인지, 누구만의 삶은 아닌지,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이 자리에서 ‘너무나도 다르고 다양한 노동자’의 ‘해방’을 위해 LGBTAIQ, 완전변태는 함께 합니다.

‘바른’ 성 문화의 시대

‘바른 성 문화’의 시대가 왔습니다. 사실 예전부터 그래왔지만, 요즘 들어  ‘바른’ 성문화를 위한 노력이 거세어지고 가시화되는 것 같습니다.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을 위시한 몇 단체에서는, 지난 8월 조선일보에 “인생은 아름다워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 걸려 죽으면 SBS가 책임져라”라는 얼토당토않고 끔찍하기까지한 광고를 실었고, 이후에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등 몇몇 일간지에도 잇따라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광고를 실었습니다. 최근에는 차별금지법이 동성애허용법안이라며 입법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소리를 높이는 한편,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입법 저지를 위해 포럼까지 여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낙태를 ‘반대’한다느니, 낙태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느니 하는 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그야말로 바른 성 문화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는 그들은 임신을 중지하는 여성과, 낙태를 돕는 의사를 모두 강력히 처벌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에서 여성이란 단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존재일 뿐입니다. 다양한 여성의 임신 경험과 왜 임신을 중단하게 되는지, 그런 고민들은 모조리 사라져버릴 뿐입니다. 출산율이 점점 낮아진다구요? 태아에도 생명이 있다구요? 그렇다면 왜 지금 여기서 임신과 출산을 직접 겪게 되는 여성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는 것입니까. 여성에게는 자신의 재생산을 선택할 권리, 아니 애초에 선택 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다양한 몸과 경험은 ‘바른’ 성 문화의 이름 아래 통제되고, 재생산에 쓰일 몸과 아닌 몸으로 분류될 뿐입니다.

이성애결혼을 하고,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것은 이 사회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쯤은, 아니 시간나는대로 최대한 자주, 생각해보지 않겠습니까? 여기에는 수많은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간성, 무성애자, 그리고 아직 정체성을 질문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단지 사회에서 재생산을 담당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성적으로 ‘바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삭제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바른’ 성 문화, 그 문화의 당사자는 누구이며 그걸 당신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까?

항상 성 소수자, 여성, 장애인, 장애여성들은 더 많은 이야기와 걱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혹시 이 말들이 올바르지 않게 보이지는 않을까. 이 말들이 전혀 보이지 않지는 않을까. 너무 많은 것들이 삭제되고,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왔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여기에 같이 있었습니다. 바르거나 바르지 않거나, 그것을 떠나 여기에 함께 해 왔습니다. 왜 항상 소수자들은 스스로 조심하고 그 자들은 설쳐대는 것입니까? 더 이상 ‘바르다’는 이름 아래에 수많은 삶을 통제하고 없애려 하지 마십시오. 애초에 바르거나 바르지 않은 성 문화가 있기나 한 것인지, 대체 그들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성을 둘러싼 억압에 맞서 우리는 분연히 일어설 것입니다.

당신의 진짜 목소리를 알고 싶어요

우선, 목소리로 대화하지 않는 분들, 그리고 목소리를 낼 기회를 얻지 못하는 분들께 사과부터 드릴게요. 또한, 전해지지 않겠지만, 글을 읽거나 볼 수 없는 분들께도 사과드립니다.
이 글은, 무대에서나 행렬의 선두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정확히는, 무대에서 ‘발언’하는 여성들에게 보내는 글이에요. 하지만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읽으셔도 좋아요.

먼저 소개부터 할까요. 저는 망할세상을횡단하는LGBTAIQ ‘완전변태’라는 요상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팎이라고 합니다. L은 레즈비언, G는 게이, B는 양성애자, T는 트랜스젠더. A는 무성애자, I는 인터섹슈얼, Q은 고민중, 이라는 뜻이에요. 저는 그 중에서 T에 속합니다. 남자의 몸을 갖고 태어났고 또 남자로서 자랐지만, 스스로는 여자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고 있어요. (성전환) 수술은 하지 않았는데, 아마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남들이 ‘여자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과 연애도 하고 있어요.
아, 그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알아나 달라고 자기소개부터 시작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제 고민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먼저 한 이야기거든요. 집회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군가 풍의 투쟁가들, 굵직한 남자 목소리나 결의에 찬 쇳소리가 어울리는 그 노래들을 듣고 또 부를 때마다 하는 고민이에요. 내 목소리는 어떤 걸까, 나는 어떤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러야할까, 그 고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노래는 끝나 버려요.(노래가 마음에 드는지 마는지 하는 이야기는 일단 빼 두기로 해요.)
노래들에는 굵고 힘 있는 목소리가 어울리지만, 제 목으로 그런 소리를 내긴 쉽지 않아요. 또 굵고 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탓에, 그런 목소리를 내고 싶지도 않아요. 그렇다고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부르면 노래엔 어울리지도 않고 음정을 맞추기도 어렵게 돼요. 그런 생각들을 하다 가끔은 노래를 부르지 않고 딴청을 부리기도 해요. 괜히 쓸 데 없는 추임새를 넣는다든가 하는.

어느 게 진짜 목소리일까.
이런 고민을 정말로 심각하게 하게 되는 때는 따로 있어요, 사실. 바로 여성 활동가가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할 때에요. 방금 전까지도 내 옆에서 앉아서 자신의 일행과 여성의 목소리(이게 무엇인지 잘은 모르겠지만)로 즐거운 대화를 하던 이들이 무대에만 오르면 어느새 투사의 목소리(역시 이것도 잘은 모르겠지만)를 내기 시작해요. 목소리는 굵어지고, 쇳소리가 나기도 해요. 저런 소리를 내는 걸 목이 견딜 수 있을까, 걱정스러워져요.
멋대로 안타까워해도 될지 잘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안타까워요. 굵은 목소리를 낼 수 없으면 안 되는, 나약한 목소리는 숨겨야만 하는 곳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말이에요. 투쟁의 ‘적’들을 상대로 강한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물론.(하지만 그걸 인정하기 전에, ‘강한’ 목소리가 아니면 눈썹조차 까딱 않는 세상을 미워해야겠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우리들끼리, 그러니까 당신이 무대에 올라 ‘동지’라고 부르는 사람들끼리 있잖아요.
그런데도 왜 당신은,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걸까요.
누군가 이런 말을 한 건 아닐까요,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돼.”라고. 나는 보았어요, 그런 이야기를 듣는 여성 활동가들을. 생리통이 심해도 후배를 챙겨야 해서 약을 먹고 참아야만 하는, 한 달짜리 실천단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피임약으로 생리를 미루는, ‘앵앵거린다’는 말이 듣기 싫어 따로 발성연습을 하는 그런 사람들을요.
견딜 수 있다면,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닐 거예요. 누군가에게 내 모습이 힘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하지만 부디, 혼자서 견디진 말아요.) 그런데 말이에요, 당신이 보이는 건 약한 모습이 아니라 당신의 모습일 뿐이잖아요. 맥 빠지고 힘 없는 목소리가 아니라, 그저 당신의 목소리를 냈을 뿐인 거잖아요.
그래서 말이에요, 저는 당신의 진짜 목소리가 알고 싶어요.
친구들과 대화할 때 내는, 혹은 혼자서 노래를 흥얼거릴 때 내는, 당신의 진짜 목소리 말이에요. 고운 목소리가 아니라도 좋고 듣기만 해도 듬직한 목소리가 아니라도 좋아요, 저는 그저 당신의 진짜 목소리가 듣고 싶어요.

조심스럽지만, 다시 한 번 말할게요. 당신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그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미우나 고우나 거기밖에 있을 곳이 없을 텐데―에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감히, 다시 한 번 말할게요. 당신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당신의 진짜 목소리가 그런 것이라면, 나는 그 목소리를 사랑할 수도 있어요.)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모르겠지만, 그곳을 잃는 것이 당신의 목소리를 잃는 것보단 나을 거예요.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는 곳이 나중에 가서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될까요. 내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목에서 피가 나도록 외치면서, 정작 자기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낼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할게요.
당신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이 글을 받아 본 후에 무대에 오른 누군가가, 힘을 뺀 목소리로 소곤소곤 이야기를 해 준다면, 전 정말 기쁠 거예요. 당신도 기쁘길 빌어요.

대학교 성소수자 모임의 현재와 앞으로 갔으면 하는 길 (2008.11.21; 다지원 발제문)

11월 21일 다중 지성의 정원에서 발제한 글
대학교 성소수자 모임의 현재와 앞으로 갔으면 하는 길

-완전변태 오리

* 제목이 주는 거창함과는 달리, 이 글의 내용들은 주로 2~3년 사이의 제 활동의 경험 속에서 나왔고, 다른 대학 성소수자 모임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경험밖에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저는 2006년부터 연세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컴투게더에서 활동하고 있고, 2007년 총여학생회에서 주최한 레즈비언 문화제 기획단을 했고, 지금은 완전변태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시작하며

대 학이라는 공간을 기반으로 성소수자 모임이 형성되어 있는 곳은 십여 개에 불과하다.(이도 대부분 수도권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친목모임, 정식 동아리, 인권 운동 단체와 같이 다양한 성격을 가지며, 간신히 이어지는 소규모 커뮤니티도 있는 반면에 문화제나 퀴어파티 같은 행사를 진행하는 모임들도 있다. 이 글을 통해 대학 성소수자 모임이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학 성소수자 모임의 활동

-대부분의 모임이 서로 만나 밥 먹고, 술 마시고, 수다 떨고, 놀고 하는 일상적인 활동들을 한다. 이런 친목도모는 성소수자 커뮤니티(공동체)로서 필수적이다. 학내의 이성애중심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대학 성소수자 모임은 성소수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공감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많은 성소수자들이 대학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인터넷을 통해 다 알고 오기 때문에 예전과 같이 대학 모임이 자신을 성소수자로 정체화 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대학에 들어와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자기혐오로 힘들어하는 성소수자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대학 성소수자 모임은 존재 자체만으로 성소수자 운동의 측면들이 존재한다. 학교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으면서 ‘누가 맘에 든다느니, 헤어졌다느니’ 등의 이야기들을 옆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은 쉽게 오지 않는다. 성소수자들이 모여서 친목도모를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고 온전히 삶 속에 녹여낼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졸업 후에도 대학 모임에서 알던 사람들로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 대학 성소수자 모임끼리 조인트(단체 미팅)을 한다던가, 한 대학 모임에서 행사를 하면 다른 대학 모임들을 초대해서 모인다던가, 여러 대학 모임들이 모여서 같이 행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이런 다른 대학 모임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자체수요로는 힘든 ‘연애시장’을 타개하고, 성소수자 문화를 만들어나간다. 드랙쇼나 뮤직비디오․광고 패러디와 같이 성소수자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통해 집단으로서 성소수자가 가지는 정체성을 더욱 단단히 한다.

-대학교 내에서 성소수자 모임으로서 매체를 낸다거나, 퀴어 영화제 혹은 문화제를 연다거나, 학내의 호모포비아적인 부분에 문제제기를 한다거나, 정식 중앙동아리로 인준 받는 활동1)들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학내에서 성소수자 목소리를 드러내는 작업들은 매우 소중하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많이 있다. 중앙동아리가 인준 받는 과정에서 몇 명 정도는 커밍아웃(학내의 무지한 정도를 감안해 아웃팅의 가능성도 각오는 해야한다.)을 할 수 밖에 없다.  매체를 뿌린다거나 문화제를 열고 자보를 붙이는 활동들을 할 때도 새벽을 이용하거나, 아는 친구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줄일 수는 있지만 아웃팅 가능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쉽게 할 수 없는 활동들이지만 몇몇 대학을 중심으로 이러한 활동들은 이어져 오고 있다.

대학 성소수자 모임이 가진 한계지점

– 많은 대학 성소수자 모임 이름에 ‘성소수자’ 혹은 ‘퀴어’라는 단어를 붙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은 남성 동성애자를 중심으로 돌아가곤 한다. 수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 자체가 게이들을 위주로 굴러간다. 예를 들자면,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중심주의 사회에서 자기비하적인 시선을 가지기 쉽다. 이를 전복하는 방법으로 게이 문화는 적극적으로 동성애혐오(여성스러운 남성 혐오)를 자신들의 욕망과 뒤섞어 이성애중심주의를 가볍게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곤 한다. 게이들 사이에서 ‘언니’라는 호칭을 쓰거나, ‘~년아’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 생각한다. 또한 이제껏 금기시 되어왔던 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성에 대한 이야기들은 성 보수주의가 강력한 이 사회에서 ‘문란하다’라는 이미지와 얽히게 된다. 여기서 게이들은 남성을 적극적으로 탐하는 자신들의 욕망과 비슷한, 가부장제 사회가 바라보는 ‘문란한 여성’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언어들로 장난을 친다. “몸을 판다”라는 언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며, “군 위안부”가 농담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게이들이 이성애중심주의와 성보수주의를 비꼬는 전복적인 언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철저하게 남성중심적으로 구성되어있는 언어이기도 하다.2) 때문에 여성회원들은(어떤 남성회원들도) 이러한 게이중심적인 문화에서 불쾌함을 느낄 수 있다.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는 남성의 언어가 ‘정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성소수자 모임 또한 성찰 없이는 너무 쉽게 게이중심적인 문화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 성소수자 모임 안에서 동성애자가 다수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너무 쉽게 성소수자=동성애자로 착각해 트랜스젠더나 무성애자처럼 다양한 성정체성을 동성애자의 시선에 끼워 맞추려고 한다. 자신과 다른 (동성애자가 아닌) 정체성을 가진 회원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의심하고 거부하고 직접 정리해주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경험을 절대화 시켜서 이에 끼워 맞추려는 행동들은 또다시 다양한 성정체성을 억압한다. 또한 동성애자를 부치/팸, 탑/바텀 이분법적으로만 바라보며 고정불변의 정체성으로만 이야기하려는 경향도 존재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친목모임으로서 대학 성소수자 모임이 가진 의의는 매우 크다. 성정체성을 긍정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만 머무르게 되는 지점은 안타깝다. 성소수자 정체성은 삶의 모든 측면에서 이성애중심주의와 부딪힐 수 밖에 없고, 여기서 생기는 억압과 불만들을 밖으로 풀어내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설마 저절로 바뀔까) 강의실에서 교수님의 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 발언으로 화가 났다면 서로 위로해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 모임의 이름으로 이메일을 보낸다거나 하는 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성소수자 모임들이 커뮤니티로만 남아있곤 한다.

앞으로 갔으면 하는 길

– 대학 성소수자 모임이 잡아야 할 토끼는 너무 많다. 성소수자 정체성을 긍정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 일상적인 친목활동을 등한시할 수는 없다. 이러한 친목활동 속에서 동성애가 아닌 다양한 성정체성이 긍정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사회가 얼마나 이성애만을 정상으로 여기고 다른 성정체성을 억압하는지를 같이 이야기하고, 자신과 다른 경험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차이들을 드러내고도 같이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내야 한다. 이는 이 사회에서 비가시화되어 있는 여성, 트랜스젠더, 장애인의 이야기가 담긴 글 또는 영화를 보고 같이 이야기해보거나, 회원들을 돌아가며 인터뷰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알아가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레즈비언이 너무 적고 모임에서 적응하기 힘든 공간일 때에는 레즈비언 소모임을 따로 만드는 것도 좋다.

– 대학 성소수자 모임은 친목모임에 더해서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내에 이성애중심주의적인 환경에 문제제기하고 성소수자 배재나 차별에 저항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회원모집 현수막이나 스티커를 학내에 붙이고 웹자보를 뿌리는 것도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매체나 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 사건들에 자보같은 형식을 통해 이성애중심주의에 문제제기 할 수도 있다. 중앙동아리 신청을 통해 학교에 공식적인 통로를 마련하거나, 문화제처럼 큰 행사를 진행할 수도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학내 성소수자 목소리를 드러내고 장기적으로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이 모든 활동은 아웃팅은 철저하게 조심하고, 커밍아웃을 하려는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대학 간의 일상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노하우를 주고 받거나, 서로의 행사에 참여하거나, 학교에서 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 사건이 벌어졌을 때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성애중심주의는 한 학교의 문제만도 아니고, 학교에 고립되어 있기 쉬운 성소수자 모임의 성격상 각 학교간의 연대는 중요하다. 연대는 대학교 성소수자 모임을 넘어서, 대학 내 다른 단체들(학생회나 정치조직, 동아리 등)과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때 더 큰 힘이 될 것이다.

-이성애중심주의는 이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적 차원의 이슈들에 대해서도 성소수자 단체들과 함께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사회적인 문제들은 학내의 우리들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제껏 차별금지법 사안처럼 큼직한 성소수자 이슈들에 대학 성소수자 모임이 함께 했다. 앞으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이성애중심적인 사회에 큰 균열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가며

고 리타분한 이야기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 이야기를 꺼내고 싸워왔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는 연애나 사랑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대학 성소수자 모임이 있다. 대학 성소수자 모임은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꼭 대학 커뮤니티가 아니더라도 여러분이 기대하는 성소수자 모임은 어떻고 우리는 이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 이야기해봤으면 좋겠다.

<참고> 대학 성소수자 모임 활동 정리

* 부족하게나마 대학 성소수자 모임 활동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던 문제들에는 대학 성소수자 모임들이 함께 해왔기 때문에 같이 적었습니다. 여기에 넣지 못한 대학 간의 교류활동이 많지만 너무 많아서 적지 못했습니다.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소수자 이슈들에 연대하였으나, 대학 성소수자 모임은 아니라서 넣지 않았습니다.

1995.03.27  연세대학교 학보에 서동진이 동성애자회원 모집 광고를 냄.

대학 동성애자 모임으로는 국내 최초

1995.04.01  연세대학교 동성애자 모임 “컴투게더” 발족, 대표 서동진(사회학 석사)

1995.04  서울대학교 동성애자 모임 “마음001” 발족. 대표 이정우(미술대학 4학년)

1995.05.29  “마음001″이 소식지를 창간해 교내에 배포해 화제

1995.06.26  4개 단체 연합인 “한국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이하 동인협) 결성, 기자회견 가짐

1995.08.12~08.14  “동인협” 주최 제1회 동성애자 여름인권학교 열림. 모토는 퀴어스마일

1995.09  고려대학교 동성애자 모임 “사람과사람” 발족

1995.10.11~10.13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성정치 문화제를 통해 동성애가 더욱 이슈화됨

1995.10.15  <세계일보>, 대학 동성애자 모임을 겨냥한 ‘상아탑이 병들고 있다’ 게재

1995.12  “마음001″이 동성애자 인권수치 향상을 반영 명칭을 “마음 003″으로 바꿈

1996.03.22  3개 대학모임 연합인 “대학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 공식 발족

1996.04  건국대학교 동성애자 모임 “화랑”, 충북대학교 동성애자 모임 “동일인” 결성

1996.05.15  “마음003” 제2회 이반영화제 개최

1996.08.16~08.18  “동인협”주최 제2회 동성애자여름인권캠프가 장흥에서 열림. 130여 명 참가.

1997.01.14  “동성애자 연대투쟁위원회”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악에 반대하는 노동자 연대투쟁’에 참여. 이후 2개월간 계속됨

1997.03.11  2개월간의 노동자 연대투쟁을 정리하는 토론회가 연세대학교에서 열림. 150여명 참석

1997.04  “마음003”, 교내 제3회 이반영화제 및 공개토론회 개최

1997.08.15~08.17  “동인협” 제3회 동성애자 여름 인권학교 개최. 모토는 이반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1997.09.19  연세대학교 동문회관과 구청의 압력으로 제1회 서울 국제 퀴어영화제 개최 무산

1997.11.02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이하 대동인) 출범

1997.12  “마음 003″의 모임 명칭 “마음 006″으로 변경

1998.03.15  “대동인”의 소식지 창간

1998.04.01~04.03  “마음 006” 제3회 이반영화제 개최

1998.05.01  노동절 기념 행사에 “대동인”이 참가. 회원 30여 명 참여

1998.05.17  “대동인”회원 오세인 자살로 커뮤니티에 애도의 물결이 일어남

1998.06.27  23개 동성애단체의 협의체인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이하 한동협) 출범식이 종묘공원에서 열림

1998.08.01  “대동인”이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로 새출범

1998.08.03~08.08  “친구사이” 제1회 ‘청소년 동성애 학교’ 개최

1998.10.15~10.18  홍익대학교 거리미술전에 <버디> 기획으로 ‘퀴어전’ 열림

1998.11.28~11.30  “친구사이”, “동의모”, “마음006″이 공동으로 콘돔배포, 영화제 및 강연회 등 개최

1999.05.14~05.21  “마음006” 교내 제5회 이반 문화제 개최

1999.06.01  “마음006” ‘서울대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타이틀의 댄스파티 개최

1999.06.26  “한동협” 1주년 기념 축하행사가 영화제, 토론회, 댄스파티 등으로 열림

1999.08.03~08.10  “친구사이”, 제2회 ‘청소년동성애인권학교’ 서울대학교에서 개최

1999.09.15  “마음006″이 서울대학교 신규 동아리로 공식 인준받음

1999.10.05  KBS <뉴스투데이>에 “마음006” 동아리 등록 인준 관련 보도

2000년 중앙대학교 이반 모임 “레인보우 피쉬” 결성

2000년 성신여대 LCIS(레즈비언 커뮤니티 인 성신) 다음카페 개설로 만들어짐

2000.04.10~04.12  “마음006” 교내 제6회 이반영화제 개최(이후로도 2005년까지 총 10회의 이반영화제 개최)

2000.08.05~08.10  “친구사이” 제3회 청소년동성애자인권학교 개최

2001년  이화여대 레즈비언 인권운동모임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 결성

2001년  “레인보우 피쉬” 퀴어영화제 개최 (2005년까지 매년 퀴어영화제 개최)

2001.02.09  민주노동당학생그룹 주최 ‘홍석천과 함께하는 동성애 이야기’ 강연회 열림

2001.05.19~05.20 제1회 대학동성애자인권캠프 (이후로도 2002년 2003년 겨울과 여름에 두번씩, 2005년 여름에 한번 동성애자인권캠프가 열림)

2001.08.06 ~08.08  제4회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 학교가 “끼리끼리”·”친구사이”·”컴투게더”·”사람과사람”의 공동주최로 열림(이후로도 대학모임들과 “친구사이” 공동주최로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가 2006년까지 매년 열렸다.)

2001.09.01  “마음 006″이 다시 모임 명칭을 “마음 005″로 바꿈

2001.09.14~09.16  제2회 퀴어문화축제 – 무지개 2001이 홍익대학교 일대에서 개최됨. 15일의 거리 퍼레이드엔 약 200여 명 참가

2001년 12월  “사람과 사람” <퀴어가이드> 1호 발행 및 학내 배포 (매년 퀴어가이드 발행. 현재 7호까지 나와 있음.)

2003.05.13~05.15 이화여대 레즈비언 인권운동모임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 학내에서 문화제 개최(이후로 매년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2003.09.05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 이화여자대학교를 ‘성적지향에 의한 교육기관의 인권침해’ 사유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2003년 10월  “사람과사람” 중앙 동아리 연합회 공식 인준

2004년 3월 “마음 005” 모임 명칭을 ‘QIS(Queer In SNU)’로 개명

2004년 5월   “사람과사람” 퀴어 문화 사진전 개최 (제2학관 사진 전시회)

2004년 8월   제7회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 학교 개최

2005.11.02  중앙대학교 “레인보우 피쉬” 제 5회 퀴어문화제 개최

2006년 9월  “QIS” 성적소수자 매체 ‘QueerFly’ 제1호 ‘시선’ 발간 (매년 발행하고 있다. 2008년에는 두 개나. 현재 5호까지 나와 있다.)

2006.05.25~26   “사람과사람” 강연회, 영화제 개최

2006.09.08~09.10 한국레즈비언권리운동연대 주최로 “위험한 레즈비언의 화려한 꿈”이라는 레즈비언 문화제 개최.

2007.5월  “컴투게더” 신문1호 발행 및 학내 배포. (2007년 12월 신문2호 발행)

2007.05.30~06.01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주최 레즈비언 문화제 <나는 레즈비언입니다.> 개최

2007.9.19  “컴투게더” 연세대학교 중앙동아리로 인준 받음.

2007.10.1~10.30  10월 1일자 연세대 학보인 연세춘추 기사에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호모포비아 발언이 실렸다. 컴투게더는 이에 대해 문제제기 하고, 여러 단위들의 성명서를 모아 자보전을 하였다.

2007년 10월 “QIS” 법대 최종고 교수 동성애자 혐오발언 관련 자보 게시

2007.11.05 <차별금지법 및 성소수자 혐오, 차별저지를 위한 긴급 공동행동> 공식 발족

2007.11.27 <긴급행동> 대학연대팀, 대학 내 차별금지법을 알리는 ‘자보릴레이’ 시작

2007.11.22~11.24  대학모임들을 주축으로 ‘처음 만나는 괴상학 대학, Queer University’ 개최

2007.12.24 대학생 연대팀 “피다”, 거리 퍼포먼스 ‘천박한 우리들의 순결한 첫키스’ 진행

2008.9월  “컴투게더” 연세대학교 교수들을 대상으로 호모포비아 발언 삼가를 부탁하는 메일을 보냄.

2008년 9월~10월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 레즈비언 문화제에 테러한 범인을 잡음. 범인이 속한 기독교 동아리 중앙동아리연합회에서 제명.

2008.09.29 한국외국어대학교 학보에 외대이반모임 “HUFSANEVAN” 대표를 아웃팅 시키는 기사가 나옴. “HUFSANEVAN”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외대학보에 사과문이 실리고 현재 외대학보에서 세미나 진행 중.

2008년 5월 망할 세상을 횡단하는 LGBTAIQ 언론 “완전변태” 결성

2008.06.10 촛불집회에서 “완전변태” 유인물 배포

2008년 10월 “완전변태” 창간호 발행

2008.11.09 노동자대회에서 “완전변태” 유인물 배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