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거부는 포기한 것 같다

병역 거부는 포기한 것 같다

병역 거부를 포기하며” ― 마음 속으로 수십 번을 썼다 지운 글의 제목이다수십 번을 썼다 지웠다는 그 말마저도또 수십 번을 썼다 지웠다단체 생활도 싫고 군사 훈련도 싫었다병역 거부라는 말을 처음 들은 순간겁없이도주저 없이 하리라 마음 먹었다포기라는 말을 수십 번 떠올렸지만감옥이 두려워서는 아니었다감옥도 싫었지만 군대는 더 싫었으므로포기를 생각한 것은 오직나의 선택으로 누군가 흘릴 눈물에 내가 잘 대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서였을 뿐이다.

선후 관계는 모르겠다잘 알게 되는 것은 조금 두렵다어쨌든대학 졸업이 다가올 즈음그러니까 영장 발부가 조금씩 가까워질 즈음건강이 안 좋아졌다싫었던 단체 생활은 이제 말 그대로 몸이 못 견디는 일이 되었다농활을 갔다가 단 1초도 맘 편히 있을 수가 없어 중간에 빠져 나왔다집회에 가서는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하며 광장을 벗어나 골목으로 숨어 들었다싫었던 군대그리고 (군사 훈련도 없고 기간도 짧다는 점에서 오히려 군대보다 나았던감옥은 이제 두려운 곳이 되었다병역 거부라는 말을 알지 못했던 시기에 했던 것처럼병역 특례 업체나 KOICA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보곤 했다하지만 아무리 두려워도어떤 의미에서건 스스로 택한 방법으로 징병제라는 체제의 일부로 들어 가고 싶지는 않았다여기저기 빠질 수 있는 길들을 생각했지만그래도 여전히 종국에는 병역 거부를 선언할 것이었다.

몸은 계속 안 좋아졌고병원에서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결국 간 곳은 신경정신과였고, 1년을 좀 넘게 꼬박꼬박 약을 먹었다한 의사는 병명을 기분부전증이라고 했다우울증이라고 말할 정도는 못 된다고 했다다른 의사는 병명이 뭐가 중요하냐고 했다그래서 나는 여전히 내 병에 대해 알지 못한다무슨 병인지병이 있기는 한 것인지어쨌거나 1년 좀 넘게 꼬박꼬박 약을 먹었다몸은 어느 정도 나아졌지만완전히 괜찮아지지는 않았다우울증(잘 모르겠지만 편의상 이렇게 부른다)을 앓으면서는 코 앞에 있는 병원에 나가는 것조차도 큰 다짐이 필요했다예약한 날을 한 번 놓치고새로이 다짐을 하지 못한 어느 시기병원에는 더 이상 나가지 않게 되었다.

어쨌거나 1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신경정신과 통원그것으로 나는 징병 검사를 다시 받았고 공익 근무 요원‘ 판정을 받았다.(특별한 의미를 두고 따옴표를 쓴 것은 아니다여전히 내 입에 올리고 싶지는 않은 그들의 말에 따옴표를 쳤다.) 병무청에 찾아가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공익 판정을 받으면 최후에야 어떻게 되건 입영 연기가 조금은 더 쉬워지리라 생각했다공익 판정을 받으면차마 병역 거부를 하지는 못하게 될 것 같아 두려웠다어떤 결론을 내렸었는지는 모르겠다아마도 병역 거부를 하지 못하게 되는 두려움보다 1년 반을 감옥에서 낯모를 남성들과 좁은 방에 갇혀 보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을 것이다결국 공익 판정을 받았다.

여전히 스스로 징병제 속으로 들어가기는 싫다어차피 갈 거라면 빨리 끝내고 오는 게 합리적이지만여전히 입영 신청은 하지 않고 있다어쩌면 이대로 미루다가재징병 검사 시기가 도래하고 다시 현역 판정을 받게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한 달 간 군사 훈련을 받고 공익 근무 요원으로 일하는 것이군사 훈련을 피하기 위해 감옥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는 것보단 합리적이다아마 나는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다아마 병역 거부를 포기할 것이다여전히싫지만.

포기 하기 전의 고민 하나

병역 거부를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만 했던 것은 아니다하는 게 좋은 일일까하는 고민도 했었다물론 앞으로의 인생에 전과가 미칠 악영향에 대한 고민은 아니었다다른 의미에서의 악영향혹은 훈장그것에 대해 나는 고민했다어쩔 수 없는 일이므로별로 쓸모 있는 고민은 아니었지만어쩔 수 없다는 건 병역 거부를 해야만 하기 때문은 아니었다병역 거부를 해도얌전히 군대에 다녀와도비슷해 보였다어떤 종류의 인증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이론상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성‘ 모두가 가는 군대에 있다 오는 것은 반대로 그가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성이라는 증명이 된다국적을 갖고 있고장애가 없으며남성이라는 증명남자는 군대 갔다 와야 인간 된다고 흔히들 말하지만성별에 상관 없이군대에 다녀와야 인간 대접을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내가 어디 가서 남자/인간 대접 받고 좋아할 일이야 없겠지만그럼에도 인증은 인증이다적어도 징병제를 비판하는 중에 누군가 군대나 갔다 와 보고 그런 소릴 하냐고 시비 걸 때 답해 줄 말이나마 얻게 되기는 할 것이다그런 인증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병역 거부를 해도같지 않을까물론 같은 인증은 아니겠지만징병을 당해야 병역 거부를 할 수 있다다시 말하자면 병역 거부를 하려면징병을 당할 수 있는 사람 ―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성 ― 이어야 한다남성 인증에 더해, (굳이 말하자면 진성‘) 운동권 인증도 받을 것이다병역 거부를 한다고 단체에서 높은 자리를 맡게 되지야 않겠지만이따금씩 이런 질문을 받을 것이다. “그런 어려운 결심을 어떻게 하셨어요?”

그 역시 원하지 않았다그러나 내가 한국에서 남성의 몸을 갖고 태어나 별다른 병이나 장애를 갖지 않은 이상인증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이런 종류의 인증이란 단순히 증명서 몇 장이 아니다인증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인증을 거부하도록그 체제는 내버려 두지 않는다원하지 않더라도받을 사람은 받게 되고 만다.

인증에 대한 그들의 고민

어쩌면 잘 된 일이다병원을 다니고인증 받을 자격을 잃은 것은 말이다공익 근무라는 기괴한 체제는 군대 내에 있지만 군대 대접을 받지는 못하므로한 달 간 군사 훈련을 받는 것을 제외하면어쩌면 내겐 병역 거부보다 나은 선택이다원치 않던 인증을 받지 않을 수 있는나에게 현재로서는 사실상 유일한 길이다.

체제는 내버려 두지 않는다인증을 거부하는 데에는 몇 단계의 절차가 필요했다우울증 같은 것은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으므로, 1년이라는 시간동안의 지속적인 치료를 요구한다진단 기록과 심리 검사 결과둘 모두가 있어야 한다징병 검사장의 의사에게 둘 모두를 내밀고내 앞에서 그가 기록들을 훑어 보는 것이 시작이다.

나로서는 힘들지만나의 병력은 상대적으로는 가벼운 편이다자살 충동은 있지만 자살 시도를 한 적은 없고그들의 표현으로 성 동일성 장애가 있지만 수술은 하지 않겠다고 한다공격성도망상도환청도 없다심리 검사에서 나타나는 것은 깊은 우울감과 그로 인한 신체 통증 정도가 다다의사는 확답하지 못한다일단 자신은 4급 판정을 주겠지만심의를 거치게 될 거라고 한다.

심의를 맡은 것은 뭐하는 이들일지 모를 비전문가들이다그러니까병역 처분의 전문가일 뿐 의료 전문가가 아니다내 진단 기록을 봐도 그들은 내 상태를 알지 못한다그래서 그들은나에게 재방문을 요구했다. “외관상 건강하고우수한 인재인데(나의 학벌을 보고 하는 이야기다군대를 안 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어요그래서 이것저것 자세히 물어 보려고 이렇게 오시라고 했습니다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은 친절했고 정중했다비록 자신들은 책상에 앉고나는 몸을 가릴 곳 없는 의자에 앉혔지만시종 높임말을 썼고 나의 말을 끊지 않았다그래서 나는 하나 하나차분히 대답했다질문은 쉬웠다자살 충동을 느끼는 게 사실인지 묻고몸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를 물었다한의원에 다녔다고 하니 그 진단 기록도 보내달라고 했다술담배를 하는지 묻고얼마나 하는지를 물었다. ‘중독’이나 ‘의존증’이란 말이 어울리지는 않는 나에게그 정도면 아직 괜찮네라고 누군가 말했다.

확인도 않고 4급 처분을 내리지는 않았다는 핑계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아무 것도 확인할 수 없는 질문들을 한 시간 정도 했고나의 병역 처분은 확정되었다이론상 그 자리는 병역 의무를 기피하는 사람을 잡기 위한 자리였겠지만내게는 왠지 남성 인증이라는 혜택을 거부하는남성 인증이라는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을 잡아 내기 위한 자리로 보였다누군가가 거부해 그 인증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모인 자리로 보였다.

내가 해양 폐기물이었을 때

“내가 그것을 겪어봐야 할 것 같다” 고 말했다고 한다. 군사기지가 지어지고 있는 그 지역에 머물기로 결정할 무렵.

그런데 난 무기력했다. 공사차량을 막아서고 차량 아래로 기어들어가면 경찰들이 둘러싸서 잡아끌고 내동댕이쳤다. 처음의 분노는 폭발적이고 눈물도 쏟아졌지만 점차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소진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지만, 진실은 내가 너무나 약하기 때문이다. 경찰병력을 당해낼 수 없고 폭력적인 광경을 보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총괄자가 소집권을 갖고 진행하는 회의는 권위적이었다 (그는 이제 떠났지만.). ‘웃대가리’와 상의하지 않은 즉흥적이고 강렬한 저항은 아쉽다고 평가되기도 했다. 취미, 일상, 관계까지, 내부를 향한 규제는 갈수록 강해질 것 같았다. 군대와 맞서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조차 ‘군대처럼’, ‘군인같이’ 될 것 같았다. 그런 은근한 강요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규율에 대해 정할 때만이 장시간 많은 이가 모여 대화했다. 규율에 대해서. 나는 멍하니 밥이나 축내고 있었다. 군인처럼 명령에 따라, 직장인처럼 직분에 맞게, 움직이면 된다고 생각하자니 더욱 입맛이 없었다.

해경은 바다 위에서 탈진한 나를 ‘구조’하러 오면서 보트로 날 들이받다시피 했다. 지시 받은 대로 멀찍이서 날 조롱하다가, 내가 떠내려갈 지경이 되자 다시 지시를 받고 건져내려 내 쪽으로 오긴 했지만, 내가 인간인지 해양폐기물인지 그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것 같다. 놀라서 미안하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들의 얼떨떨한 목소리를 한쪽 귓구멍으로 들으면서 난 보트에 눕혀졌다. 육지까지 가는 동안 아무도 내게 설교를 하지 못했다. 비닐과 담요로 덮어주고 괜찮냐고 몇 번 물어봤을 뿐이다. 대답할 기운이 없어서 가만히 있으니 더 묻지 않았다. 그 사고는 그들의 고의는 아니다. 그들은 고의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보트가 날 들이받았을 때, 난 물속에 가라앉아 보트 바닥을 발로 차다가 다리 전체에 쥐가 났다.

“저 사람들과 우린 달라요” 라는 대사를 어디서 들은 것 같다. ‘저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와 다른 것인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저 사람들’이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국가와 자기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사재기해야 한다는 이들은, 내가 고개를 끄덕여주는 대신 “그럼 그 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건가?” 하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우리’와 ‘저들’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위협용으로 막대한 무기를 산다. 그것은 장난감이 아니다. 조종하면 폭탄이 떨어진다. 죽을 때는 ‘우리’도 ‘저들’도 없다. 나는 그 해경과 내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 해경은 자기 동료였다면 하지 않았을 위험한 ‘실수’를 내게 했다. 늘 모는 보트로. 돌아가는 프로펠러에 부딪혔으면 다쳤을 것이다. 그들의 상관이 날 북한으로 보내버려야 할 미치광이라고 보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군인들은 국가를 지키는데 난 국가에 대한 배반을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난 당신들과 달라.” 그건 웃긴 말이다. 그것만으론 웃긴 말이다. 난 다르지 않았다. 다르게 취급당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이 싫었고, 큰소리로 욕하며 삿대질을 할 수 없었을 뿐이지 그들이 경멸스러웠다. 마음속으로 그들을 여러 번 때렸다.

군사기지를 지으려는 군대에 맞서는 무리가 있다. 무리는 너무 작다. 끌어내고 막아서기를 반복하는 대치와 고착, 그 일들을 전쟁으로 부르든, 아니든, 그 자리엔 절대 서로 해결점을 찾을 수 없는 두 개의 ‘적’이 만들어졌다. ‘만들어졌다.’ 난 그것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싶다. 권위적인 지휘자의 문제만은 아니다.

내가 해양폐기물이었을 때, 바다에서 짠물을 먹고 허우적거리며 “살려주세요” 하니까 해경은 “미안합니다” 라고 했다. 나보다 입이 더 얼어서 “보트를 제대로 못 멈췄어요”, “괜찮아요?” 라고 했다. 군사기지를 짓고 나서 폭탄을 ‘저쪽’으로 날려보낸 뒤에 ‘저쪽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죽으면 ‘미안합니다’ 라고 할까, 하지 않을까? 방패를 들고 서 있는 경찰들에게 “왜 이래요? 다른 곳으로 가세요. 나한테도 이러는 거면 지난 몇 년간 마을사람들한테 어떻게 한 거예요? 우리가 잘못한 게 뭐예요?” 묻는 건 슬펐다. 그 질문은 절망스러웠다. 그 이유는 그들도 모른다. 경찰은 어금니가 깨지고 뼈가 부러지도록 사람을 때리고 약올렸다. 왜 미안하지 않았을까. 군대였기 때문에? 폭력적인 상황에서 요구되는 미덕이 있고, 그것을 몸에 익히면 미안함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고, 나는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군대는 있을 수밖에 없고, 있어야 하는 것이고, 전문가들도 그렇게 이야기해.” 그것이 정말 현실인가? 그렇다면, “군사기지를 더 지어서는 안된다!” 고 말해선 안되는가?

텔레비전 뉴스를 보게 되었다. 핵미사일 경로를 분석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한다. 불구경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라는 고민은 애초에 없었다.

군대에서 쓴 글 모음

군대에 있을 때 쓴 글들을 휴가 나올때마다 블로그에 올렸었다.

모아 봤다.

글을 클릭하면 볼 수 있다.

시작은 맨 밑에서 부터.

 

2013년 6월

• 복수다, 군대

 

2011년 4월

• 제대 기념 선물

• 작별의 시간

• 안녕히 계세요, 반장님

• 배식의 정치학

• 이 글들은

• 되돌아 보기

 

2011년 3월

• 착각

• 적은 뭘까? 평화는 뭘까?

• 순환 반복

• 다중인격

 

2011년 2월

• 지겨워 지겨워

• 성공이닷

• 추운 겨울이야

• 용어 설명

 

2011년 1월

• 그림들5

• 너무 닥치게 하고 싶다 보니

• 남성도 여성도 아닌

• 요즘 제일 듣기 싫은 소리 중 하나는

• 고생하십시오

• 나도 내가 싫다

• 오랜만에 할머니랑 이야기했다

 

2010년 12월

• 죄책감

• 인정해

• 이성애자가 된 두 남자

• 그림들4

• 내가 소통에 대해 뭔가 잘못 알고 있는게 틀임없다.

• 보통 이런 꿈을 꾸는데

• 억울하면

• 레슬링

• 누가 이기나?

• 내가 동성애 문제에 예민한 것과 같이

 

2010년 11월

• 그림들3

• 오만해지고 싶진 않다

• 니가 이해좀 해주라

• 드라큘라 감정이입

• 화나셨군요

• 남자가 가진 이쁜 손에 대한

• 생활관에서 자기전 잡담

 

2010년 10월

• 그림들2

• 난 아직 멀었어

• 이건 혁명이다

• 집단으로 존재함

 

2010년 9월

• 골때려.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

• 방법은 두 가지

 

2010년 8월

• 웃긴다 나도 참

• 세번의 안아줘

• 성폭력 교육이 나에게는 성폭력이네

• 대화

• 남자애들

• 나쁜사람나쁜환경나쁜환경나쁜사람

• 학대

• 미팅해 보셨습니까?

• 웃기지도 않는다

 

2010년 7월

• 이것도 팁이라고 할 수 있을까?

• 대굴욕

• 치, 좋겠다. 이성애자라서

 

2010년 6월

• 책읽고 글쓰기 싫어서 그림그렸어

 

2010년 5월

• 안아줘

•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이쁘더라구요.

 

2010년 4월

• 너구리

• 군대에서 스킨쉽

• 세세하게 풀어야 할 필요성에서

• 군대에 있다

• 미안해

• 난 미쳤다.

• 동성애혐오가 아니라 그냥 긴장일 수 있어.

 

2010년 3월

• 하나의 불빛, 이모, 반장님

• 이성애자 남성인 친구가 있어

 

2010년 2월

• 사례집-의문들

• 또 말했다. 나 게이라고.

 

2010년 1월

• 나의 민망함과 찝찝함

• 훈련소에서 씀

• 훈련소에서 그림

• 지금 여기에서

• 요즘 상태가 안 좋다.

• 그래, 지금 여기에서

• 대박

• 같이 티비를 보면서 하는 말들의 대부분은

• 화가 많이 났었어

• 유체이탈 없는 대화를 위해

• 진지한 대화

• 언제나 그렇듯이 그 중 하나

• 이 오빠가 ~

• 민주주의가 필요해.

•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글을 써대는 이유

 

2009년 11월

• 남성들 간의 스킨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해석당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오

• 이미 여성(이기도 한)인데

• 물론 이 사회를 제대로 굴리는 사람들은 비장애인/이성애자/남성으로 상정되지.

• 끊겨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가벼운 대화 속

 

2009년 10월

• 훈련소에서

• 노예가 주인에게 말했다. “나는 더이상 당신의 노예가 아니야” 주인은 배신감을 느꼈다.

• 동물의 왕국-침팬지 무리에는 서열이 존재하고, 이는 음식을 누가 먼저 먹는 지로 드러납니다

 

2009년 3월

• 내가 군입대를 하다니…

일기장

무용담

군대이야기는 식상하다. 군대가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찬반론이거나, 무용담이거나.

‘그들’의 무용담은 군대가 얼마나 재밌고 유의미했는지, 혹은 얼만큼 힘들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무사히 잘 제대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언제나 그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잘도 적응하고 잘도 받아들이며, 잘도 승리해낸다. 그들의 무용담은 다방면으로 불쾌하다.

우리에게도 무용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언니가 부대에서 몇명과 잤다더라 하는 신나는 이야기들은 한두번쯤은 들어보았다만, 그 뿐이다. 입대를 앞둔 가여운 게이에게 할 수 있는 위로는 안타깝게도 섹스 정도다. 사실은 섹스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아닌데도.

무용담을 쓰려한다. 군대의 패배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있던 공간을 어떻게든 일그러뜨리려했다. 이성애중심주의나 혹은 남성중심적인 문화 같은 것을 분쇄하려고 그랬다기보단, 평온한 그들에게 화딱지가 났을 뿐이다. 누군가는 나로인해 불편하고, 억울하고 화딱지가 났을것이다. 심지어 누군가는 ‘이상하게 변해서’ 제대했을지도 모른다. 머물렀던 공간에 어떤 흔적들을 남겨두었고, 공고한 그들은 열심히 그것을 문대 없애려 들겠지만, 어떤 것들은 남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

일기

일기를 쓰고 있었다.  1처음엔 이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이야기들 뿐이었다.

운이 좋았다.  2나는 똑똑했고, 어떻게 해야 예쁨받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금새 웃는 것을 허락받았다. (일기장엔 ‘3웃어도 된다!!!’ 라고 씌여있다.) 예뻐해주는 선임들이 생겼고 어쩐지 그들은 한결같이 잘생겨(보여)ㅆ었다. 격무에 허덕일때 손위의 미남자의 쓰담쓰담은 그의 손이 머리에 닿기도 전에 사랑이었다. 선임A는 잠버릇도 나빴고, 그렇게 잘 벗고 다녔으며 좋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방을 쓰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의 옆으로 가서 자기도 했고, 종종 그도 내게 왔다. 정말 잠만 잤지만 어쨋든 그는 잠버릇이 나빴기에 닿는 면적은 많았다. 4A의 팔을 베고, 일기를 썼다.

5근무지는 주방이었다. 큰 주방이었다. 너무 큰 주방이었다. 부대도 넓었다. 너무 넓었다. 빈틈이 많았다. 술을 구할 길은 얼마든지 있었고, 어느날부터 후임들과 술을 먹기 시작했다. 주섬주섬 주방을 마무리하고 몰래 숨어서 오늘도 고생했다며 마셨다. 맛있었다. 6재밌었다.

주말에 면회를 하고 핸드폰을 가지고 왔다. 좋은 음악을 들으며 마시니 어쩌다 보니 취했던 것 같다. 다들 취해있었다. 누군가 ‘섹시하게’ 치댔고, 나는 뽀뽀를 했다. 키스였던 것 같다. 관심도 없던 후임 B였다. 다음날 B는 자기가 게이는 아닌데 내가 좋다고 했다.7 섹스를 했다. 내 타입은 아니었지만 귀여운 아이였고, 외로웠기에 ‘그런’관계는 일회성으로 남지 않았다. 일주일정도 되었나, B가 나를 조용히 불러 일기장에 대해 말했다.

우리 방에 내 일기장이 돌고 있었다.

A와의 끈적한 관계에 대한, C나 D나 E나 F가 얼마나 귀여운지에 대한, G나 H가 일은 어떻게 하며 성격은 어떤지에 대한 글을 모두 상기된 표정으로 ‘구독’하고 있었다. 머리가 하얘지고 숨이 멎었다.

B에게 얘기를 들은지 십분만에 같은방에 사는 이들을 불러모아 문을 걸어잠그고 소리를 질렀다. 뭔가를 땅바닥에 집어던진 것도 같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냐며 펑펑울었다. 특별히 착하지도 특별히 모난 성격들도 아니었기에 다들 어쩔줄 몰라했다. 그들의 상식에도 잘못은 큰 잘못이었던데다, 내 반응도 충격적이었을것이다. 서로가 한참 말을 잇지 못하다 참기 힘들었는지 어떤 멍청이가 말했다. ‘형 괜찮아, 우린 이해해’ 라거나 ‘형 근데 우리 일기본지 한달도 넘었는데 우리 태도가 이상하거나 하진 않았잖아. 술도 같이 계속 잘 먹고, 우린 아무렇지도 않아’라거나. 입대하기전에 매일 듣던 헛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성원들을 격리하고, 한명씩 불러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사과를 듣기로 했다. 면담 후에 우리 방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았고, 진짜로 미안해한다는 판단을 하고, 당장 세미나를 열었다. 그날 밤에는 이런저런 개념에 대한 설명, 그들이 벌인 짓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왜 분노하는지를 말했다. 다음날은 쪽글을 받았다. 평범한 반성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왠지 마음이 풀렸다. 글을 잘쓰고 못쓰고를 떠나서 아무 강제성도 없는데 (왜 없겠냐마는) 그 이십대 남자애들이 글을 빽빽히 써내는 모습이 좋았다. 이날까지 나는  ‘운동’ 이라 불리우는 경험이 내 생존과 안위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크게 작용할 것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무튼 나는 운이 좋았다.

호기롭게 사과를 받아들이고, 살아 남았다. 제대할 때까지 수상한 낌새가 없었다. 그 정도면 되었다.

일기장은 찢어버리고 싶었는데, 예뻐서 그냥 가지고있다.

1 처음엔 이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이야기들 뿐이었다.

‘힘들다’ 라고만 쓰기엔 억울하다.

훈련소에서였다. 하루종일 구르고 총을 쏘고 악을 쓰고 10분남짓의 샤워시간이 허용되었다. 어떤 조교는 샤워실이 시끄럽다며 씻고있는 우리 모두에게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나는 샴푸를 묻히고 엎드려서 하나에 정신, 둘에 통일을 외치며 위 아래로 덜렁거렸다. 기합이 끝나고는 머리를 헹궈야겠다는 생각을 못하고 샤워실에서 나왔다가 다시 돌아왔다.

‘천안함 사건’ 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훈련소에는 텔레비전이 나오지 않았다. 면회는 커녕 공중전화도 할 수 없었다. 내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정보가 차단된 공간이었고 심지어 군대였다. 전쟁 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감에 압도되어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미사일이 떨어질 것 같아 조그만 소리에도 소스라치며 잠도 제대로 못잤다.

식당에 배치받고 나서다. 누군가 잘못을 했고, 같이 근무한 몇몇이 선임에게 냉장고로 끌려갔다. 냉장고가 너무 커서 열명은 우습게 들어갈 수 있었다. 불옆에서 일하느라 땀에 홀딱 젖은 반팔티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열심히 괜히 혼나는데 몸을 떤다고 예고도 없이(!) 머리를 맞았다. (어느 순간이 되니 맞는것보다는 예고가 없다는 것에 느낌표를 붙일 만큼 익숙해져있었다.) 너무 놀라 쳐다보니 뺨을 때렸다. 안경이 날아가 부러졌다. 물어내 이 버러지같은놈아 라는 생각보단 그나마 냉동고가 아닌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밤에는 열통이 터져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맞을 때는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무서웠다.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은 자기 직전뿐이었는데,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하니까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자고 싶었다.

4. A의 팔을 베고, 일기를 썼다.

이상한 관계였다. 그는 나를 매번 같은 휴가조에 넣었다. A는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세시간을 가야있는 그의 말마따나 ‘촌구석’에 살았다. 나는 그의 집에서 자고, 그의 동네를 구경하고, 과수원도 가고, 피시방도 가고, 어느 학교 캠퍼스도 걸으며 맥주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손도 잡은 적이 없지만, 말없이 옆에 누워 팔을 베도 빼지 않았고, 그도 왕왕 새초롬하게 앉아있는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남들보다 세배로 블루비앙카향 피죤을 들이붓던 그는 언제나 피죤냄새와 담배냄새가 섞여났다. 그는 잠이 많았고, 한번 잠에 들면 좀처럼 깨지 않았다. 그리고 잠버릇이 안좋았다. 아주 안좋았다. 그 뿐이었다.

그의 치아가 잇몸이 눈알이, 그 몸이 얼마나 아름답고 건강한지에 대해 여러번, 자주, 계속 해서 써내려갔다.

5. 근무지는 주방이었다.

식당에서 실제로 조리를 하는 사람은 따로있었다. 불을 켜고, 볶거나 삶거나 튀기고, 옮기는 일은 ‘병사’가 했지만, 양념을 하고, 옆에서 감독하는 것을 업무로 가진 이들이 있다. ‘주사님’이라고 불리우던 그들은 대부분 50대 이상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의 ‘짬밥’은 왠만한 간부들 보다 오래되었기에 소위 ‘식당 아줌마’ 로 대우받지 않았다. 되려 간부들을 ‘갑갑한 군인양반’이라고 부르며 ‘선배’로서 훈계도 하곤 했다.

여러 주사님들이 국, 반찬, 튀김, 손질같은 것들을 돌아가며 맡았는데 언제나 제일 먼저 나를 찾았다. 같이 고기도 볶고, 국도 끓이면서 항상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자기들 중에 누가 일을 못하고, 잘하는 지 부터, 간부 욕,  딸/아들 자랑, 청춘적의 명랑극, 레시피 연구, 은퇴 계획까지 주제는 끊임없었다. 군대에서 누군가의 삶의 경험에 대해서 감화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군대라는 공간에서 주방에서 일하는 여성으로서 오랜 시간을 보낸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보통 내공의 것이 아니었다. 어쩐지 힘이 났다.

수많은 아이들이 오고갔지만 결국 ‘너같은 애들’만 남더라고 입을모아 얘기하셨다. 휴가때마다 된장에 김치에 나물에 각종 반찬들을 주렁주렁 달고 가느라 늘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야 했다. 같이 서울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휴가때는 밭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아직까지 때만 되면 된장은 떨어지지 않았는지, 올해 갓이 너무 맛있다며 좀 가져가라느니 챙겨주신다. 시골집이 없는 나로서는 엄청난 ‘인맥’이 생긴 느낌이다.

요리를 좋아했다. 음식을 하는 곳에 배치되었다. 한끼에 이천여명의 밥을 해야 했는데, 처음엔 체력이 버텨나질 않았다. 생활도 불규칙한데다 원체 몸만 쓰는 일이었기에 매일같이 넋이 나가 있었다. 그렇게 일년쯤 지나니 튼튼해졌다. 신났다. 몸이 건강한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렇게 안좋던 위장도 말썽이 없고, 깊이 잠들어서 가뿐하게 일어났다. 건강하다는 사실이 일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생각해보면 재밌었다. 핸드폰을 가져가서 두달정도 쓰기도 했고, 신선한 식재료로 가득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팬트리도 있었고, 돈 걱정도 안했다. 타협 할 수 있을 만큼만 착취했으며, 괴롭히지도 못하게 했고, 술도 엄청 먹었고, 부족하지 않게 스킨십도 많이 했으며, 물이랑 불이랑 일하는 것도, 재밌었다. 매일 땀 뻘뻘흘리며 하는 일 자체도, 일을 잘 하는 나 스스로도 너무 재밌었고, 그 어마어마한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도 그닥 고역이 아니었다. 그리고 의외로 나는 힘도 셌다. 그냥 모르던 나를 발견하는 재미들도 있었다. 쓰고 보니 정말 잘 지낸 것 같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일기를 쓰다가 퍼뜩,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근무가 끝나면 운동도 따로 해서 원하던 예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샤워하면서 거울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색했다. 그토록 평생을 굶으며 갖고싶던 몸이었는데, 그건 내가 원한 게 아니었다. 이겼는데 진 느낌이었다. 건강해졌고 예뻐졌는데, 내가 원해서 내가 한 게 아니다. ‘그들’이 내 건강한 몸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게 했다. 좋긴한데 분했다.

6. 재밌었다.

7. 섹스를 했다.

그는 섹스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세미나를 마치고 한번 더 그들앞에서 울고 마무리를 한 날이었다. 그중 하나가 담배를 피자고 조용히 이야기해서 불러냈다. 난데없이 좋다고 했다. 왜이런지 모르겠다며 속상해했다. 키도 크고 잘생긴 아이였다. 계단을 하나 올라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담배는 역시 맛있다.

동성애폭탄의 어색함이 가실무렵 술을먹으며 남들은 다 취해서 방에들어가 자고 둘이 남았다. 그가 궁금해했다. 남자랑 자면 어떠냐고. 좋다고 했다. 너는 여자랑 자면 어떠냐고. 좋다고 했다. 여자랑 섹스할 수 있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남자랑 잘 수 있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애널섹스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궁금하긴 하다고 했다. 그런태도로 누가 해주겠냐고 했다. 자긴 잘생긴데다 섹스도 잘하니까 괜찮다고 했다. 근데 잘생긴 것만 사실이었다.

컵케익을 구운 적이 있다. 어느날 엄청난 크기의 오븐이 들어왔는데, 눈이 뒤집혀져서 200인분의 당근컵케익을 구웠다. 월급을 탈탈 털어서 재료를 샀다. 달콤한 시나몬냄새에 취한 게이하나가 자기도 달랬다. 친한사람만 줄거랬다. 친해지자고 했다. 너무 친해졌다.

이제 제법 선임이 되어 근무를 땡땡이 치고 내무실에 놀러갔다. 귀요미 둘이서 기겁을 하며 놀랐다. 나란 것을 확인하고 놀랐다며 노크좀 하고 다니라며 하던일에 열중했다. 음… 왠지 분했다.

군대가 죽인 어떤 것들

군대가 죽인 어떤 것들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착한 군대 후임이었다. 나랑은 크게 만날 일 없던 기수차이가 많이 나는 후임이었다. 근데 어떤 이유로인지 걔가 욕을 많이 얻어 먹었다. 다들 걔에 대한 싫은 소리를 해댔다. 걔는 심하게 눈치를 봤다. 점점 위축됐다. 하루는 얘가 많이 힘들어하면서 죽고 싶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랑 친한 후임(걔에게는 선임)은 걔를 혼냈다. 나는 그 때 정말 화났다. 친한 후임에게 처음으로 적의가득한 말을 내뱉었다. 나는 끊임없이 강함을 다그치는 것이 싫었다. 그것은 분명 무언가를 죽이고 있었다.

말로 하기 너무 어렵지만,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닥치고 강해질 것만을 요구했다. 그건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든 그를 위하는 사람이든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는 선택권이 별로 없었다. 강해지든가 죽든가. 어쩌면 살아남은 많은 이들은 그렇게 강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이들도 그들 안의 어떤 것들을 스스로 죽여야만 했다. 군대는 그것들을 죽이고 있었다. 그 순간 그게 보였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감옥에 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한낱 훈련병으로 있던 나는 나일 수 없었다. 군대는 병사를 원했다. 나는 병사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 머리를 자르고, 내 관계들을 자르고, 내 개성을 자르고, 내 생각을 잘랐다. 정말 나를 어떻게든 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나는 바닥을 질질 기었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나 당연하게 벌어지는 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군대에 온 이들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슬프게도 오기 전부터 알았던 이들도 있겠지만 뭐 이젠 모두 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에 또다시 그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 굴어야 할지 아는지도 모른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군대는 어떤 것을 죽였다. 그 수많은 사람들의 어떤 것을 죽였다.

후임이 500일이 되었다길래 진심을 담아 “축하해”라고 말했다. 갑자기 컴퓨터를 하고 있던 하사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역겹다는 표정이었다. 나의 “축하해”는 군대가 보기에 너무 ‘여성’스러웠다. 혐오스러웠다. 그의 눈에 비춰진 내가 보였다. 나는 능글능글한 “변태 아저씨”였다. 창피해 귀까지 빨개졌다. 하사는 생뚱맞게 “너는 여자친구 안 사귀나?”고 물었다. 화가 나 “여자친구 안 사귑니다!”라고 내뱉었다. 그는 “왜?”라고 다시 물었고, 순간 정신 차린 나는 “군대왔는데 어떻게 사귑니까?”라며 숨었다. 군대는 내가 날 부끄러워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나를 죽이도록 만들었다. 스스로 직접. 나는 어느새 그렇게 애써 벗어난 혐오에 굴복했다. 수치스러웠다.

천안함 참사가 벌어졌을 때 나는 갑자기 군대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애도하고 싶어졌다. 훈련소에서 소문으로 들었던 어느 소대 건물에는 자살해서 죽은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게 죽은 이들이 많겠지. 죽음을 당했겠지. 다 말로 하지 못했겠지.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겠지. 그리고 죽은 이후에도 소문처럼 귀신으로밖에 남지 않겠지. 군대가 죽이고 죽인 것들에 분노가 일었다. 그렇게 침묵으로 마무리되는 것에 이가 갈렸다. 그렇게 이만 갈았다.

(나에게) 군대가 끔찍했던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군대에 가야만 하는 이들에게 공포만을 주고 싶진 않다. 군대는 그 공포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마치 조금만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굴지만 별로 그렇지도 않다. 예비역들이 군대를 대하듯 신병들이 군대를 대할 수 있다면……좋겠다.

나의 군대 이야기는 침묵으로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군대에 복수를 하고 싶었다. 이건 그 복수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