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자로 산다는 것도 어렵겠지.

이성애자로 산다는 것도 어렵겠지.

 

이성애자로 산다고 인생이 그렇게 편안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소수자처럼 성정체성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이 자체에 대한 억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성애자로 산다는 것도 참 고생스러운 일이다.

 

이 망할 세상엔 남성은 어떻고 어떻게 해야 하고, 여성은 어떻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율이 촘촘히 짜여 있다. 여기에 맞추어 살려면 얼마나 참 고생스러운 일이겠는가. 또 여기서 벗어나려고 하면, 남자가 왜 그따위냐, 여자가 왜 그 따위냐 말들도 참 많다. 이성애자 여러분들도 참 고생이다.

 

그 속에서 정말 잘 맞는 사람도 드물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바동대지만 언제나 실패하고, 그러면서 불만은 쌓이는데 벗어나자니 그것도 참 힘든 길이고, 그러다보니 이성에 대해 서로 증오와 짜증을 보내고, 그러면서도 연애의 대상은 이성이니… 참으로 고생이다.

 

참 고생이시네요.

수고가 많습니다.

같이 분발 좀 합시다.

Lover

Lover
-제이

채팅방에서 만나 밥 한 끼 먹은 분을 따라 러버들의 모임에 갔다. 러버란 M2F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는 남성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 자리에서 내 옆에 앉게 된, 내 동행의 형님이라 불리우는 한 러버는 술이 얼큰하게 취하자 나의 허벅지를 더듬기 시작했다. 평소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던 여성 친구들에게 그럴 땐 이렇게 대응하라고 조언했던 나였지만, 직접 당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거부의 제스쳐를 취했지만 그는 집요하게 손을 내밀었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오빠는 일반이야’

소문에 의하면 그는 술만 들어가면 이런 행태를 보인다 했지만 사건은 그 소문을 접하기 전 이었다. 가끔씩 우연히 마주치는 연상의 그를 대놓고 무시해주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하고 있지만 또 그 못된 버릇을 내게 시전한다면 그 이상의 모멸감을 맛보여주리라 구상하고 있다.

여기서 나의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생각나는 의문이 하나 있다. 눈치 챘다시피 그의 마지막 말에 대한 것이다. 그는 과연 일반인가?

러버란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도 익숙치 않은 단어이다. 우리를 여성으로 인식하는 그들은 사전적인 정의로 이성애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와 같은 반쪽짜리 여성, 혹은 게이인 크로스드레서(이성 복장 착용자)를 일부러 찾아 만나는 그들의 자리매김은 상당히 애매하지 않은가? 내가 알기로는 그들 중에는 게이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도 있고 스스로 바이 섹슈얼이라고 밝히는 사람도 있다. 뭐, 그럼 어떠한가?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는 행위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정체성은 스스로가 정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위 남성이 스스로를 일반으로 정체화 한 것에는 이견이 있다. 타인이 이미 정체화한 그의 정체성을 내가 감히 부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위 남성이 일반이라 주장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대상을 어떤 성으로 인식했는지가 중요하다 생각한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게이도 헤테로도 아닌, 혹은 그 넷 다일 수도 있는 우리들과 우리의 육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여기서 육체라 굳이 한정 지은 것은 보통 일반들은 그 벽을 넘기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협소한 그룹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M2F 트랜스젠더는 상대를 만나는데 좀 너그러운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합의 없는 욕구 충족은 성추행일 뿐이다. 난 분명히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내 추측이긴 하지만 그는 아마도 사회생활 속에서 만나는 생물학적 여성들에게 이런 못된 버릇을 내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으로 미루어 그는 나를, 우리를 일반적인 여성과는 다른 성으로 인식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손을 마음대로 올려도 상관 없는 여성의 외모를 가진 그 무엇으로 말이다. 그것은 여성과는 다른 존재이거나, 그가 마음대로 건드릴 수 있는 여성일 것이다.

그를 포함해 스스로 일반이라 말하는 러버들은 일반이라는 단어를 꽤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그가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진 상태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는 몇 년간 우리 커뮤니티에 몸 담았으며 수많은 우리들을 만나왔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연애를 지속하면서 왜 일반이라 주장하는 것일까? 겉모습이 남성이 아닌 자에게 욕구를 느끼는 게이 혹은 바이섹슈얼로서 자신을 정체화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며 그 두려움은 우리의 겉모습으로 희석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두려움은 이성애자가 아닌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이 가설이 옳다면 그는 게이인 호모포비아가 아닐까?

그가 나를 여성이라 인식했다 하더라도 친한 동생과 동석한 초면의 내 몸에 손을 댄 것은 그가 우리라는 존재에 가진 인식이 얼마나 비뚤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그는 아주 비뚤어진 일반이거나 호모포비아 게이라는 결론. 어쨌든 난 그가 역겹다.

신부에게

신부에게
– 용왕

사실 전날에는 술을 많이 마셨어요. 얼굴이 퉁퉁붓고 밤새 피우던 담배연기가 몸에 배여서 아침에 샴푸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 어쨌든 12시 반까지 역에 도착해야 했고, 결혼식이니만큼 옷도 잘 갖춰입고 화장도 밝고 단정하게 해야 했습니다.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습니다. 나를 만나면 당신이 어떤 표정을 지어줄까, 내심 무슨 생각을 할까, 내게 어떤 말을 건넬까. 당신이 내게 말을 건네지 않고 나도 당신에게 건네지 않아도 남들이 보기에 어색하지 않게 잠시 스치게 될 그 순간이 그렇게 순조롭기를 간절히 바랬어요. 나는 연기를 하는 것에는 정말 쥐약이니깐,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지하철역에 내릴때까지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었습니다.

역에서 사람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에 조금 늦었어요. 내가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자 매니저처럼 보이는 사람이,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라며 내 이름을 확인했어요. 그리고는 은행 적금 팜플렛 갈피에 꽂힌 현금 얼마와 음료수 한병을 건네 주었습니다. 그땐 뭔지도 모른채 가방에 그것들을 얼른 집어 넣었어요. 그리고 그 매니저는 아직 오지 않은 다른 친구들을 확인하면서 이렇게 늦으면 안되는데.라며 누구를 나무라는지 모를 말을 뱉었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이미 도착한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두 세명을 기다렸습니다. 10분이 지나서야 모두 도착했고 매니저는 모두를 둥그렇게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신부의 이름은 지은이에요,
서른 네살이고,
신부 대기실에 들어가면 ‘어머 지은아, 축하해~’라고,
알죠?
이렇게 다섯명은 저를 따라서 지금 출발하고
여기 네명은 5분 뒤에 건물 3층 신부대기실로 올라오세요.]

나는 뒤에 가는 네명중의 한명이었는데 함께 가는 친구들과 약간 긴장한 상태로 허둥지둥대며 건물로 들어갔어요.

행여나 온 가족과 친척들이 있는 곳에서 실수라도 할까봐 또각또각 구두소리에 맞춰 당신 이름을 연거푸 불러봤습니다.
건물 3층에 도착해서 신부대기실에 들어갈까 망설이는데
멀리서 조금있다가 들어오라는 눈치를 주었어요.
우리 넷은 우르르 화장실에 들어가서 머리도 만지고 화장도 고치고
알 수 없는 어색하고 긴장된 미소를 주고 받으면서 언제 들어갈지를 고민했습니다.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신부대기실을 훔쳐보며 눈치를 보는데
이내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았어요.

우리는 병정들처럼 딱딱하고 어색하게 걸어 들어갔고 안에는 촬영이 한창이었습니다.
아까 먼저 올라간 다섯명이 신부와 함께 촬영중이었어요. 우리는 잠시 가장자리에 기다렸다가 촬영이 끝나자 당신에게 축하해, 너무 예쁘다. 라는 말을 전하는 것을 미션처럼 수행하고 사진사의 ‘이쪽으로 조금 더 오세요. 조금 더 앞으로 오세요’ 하는 말들에 즉각즉각 움직여 꽃 같은 당신 뒤에 이파리 장식처럼 섰습니다. 처음 보는 우리들에 조금 놀랐던건지 당신에게 사진사가 긴장 풀고 웃으세요, 라고 말했고 나는 처음 만나는 당신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지은아, 괜찮아 긴장풀어] 그랬어요.
사진을 찍고 우리는 예식장에서 볼께, 라는 말을 당신에게 건네고 식장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넷이서 총총히 앉아 조금 기다리자 예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순박해 보이는 신랑이 입장하고 극의 클라이막스처럼 당신이 들어오는데
우리는 정성을 다해서 박수를 쳤습니다.
난 문득 내가 누군가의 결혼식에 와서 이렇게 신난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한건 내가 느낀 그런 통쾌한 감정들이 당신을 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구멍이 많은 것인지 재차 확인하고 느끼는 감정이었지요.

오히려 우리는 결혼식 내내 신부를 염려하였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 지금 마음이 어떨까하고,
거기에 여태껏 가지 않은 결혼식들과 앞으로 가지 않을 결혼식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식이 끝나고 우리는 식장 앞에서 당신의 ‘친구’로서 어색한 미소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당신의 일생동안 당신의 집 어딘가에 내 얼굴이 찍힌 사진앨범이 있어 그것이 여러번 펼쳐지고 덮어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우리는 촬영 후, 식장 부페로 점심을 해결하고, 식당내로 사람들에게 인사하려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당신을 피해 도망치듯이 나와 근처를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다 공원 벤치에 앉아 별말없이 함께 햇볕을 쬐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신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모두 그 한마디 뿐이었습니다.

참 그 뒤로 몇개월간 매니저에게 다시 오라는 연락이 없어요.
그날 우리의 연기가 참 별로였나 봅니다..

엎자!

 

A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A라는 성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성적 매력이든 호감이든 사랑이든을 느끼는 게 동성애라면, 나는 어떤 걸 하고 있는 걸까. 완변에서 쓴 몇 편의 글에서 나는 스스로를 (비수술 MTF 트랜스젠더) 레즈비언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해부학적 여성과 연애하고 있다. 내가 여성 정체성을 갖고 있으니, 만약 그도 여성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나는 동성애를 하고 있는 게 맞을까. 그와 나의 성은 같지 않은데. 그의 성엔 그의 몸이, 나의 성엔 나의 몸이, 그리고 그 몸이 처한 상황과 그 몸이 받는 인식들이 포함될 텐데. 그래도 나는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고 불러도/부르면 되는 걸까. 레즈비언이라는 이름은 어쩌면 충분하지 않다.

 

늘 성별이분법을 공격하지만, 이성애나 동성애라는 말은 여전히 그 구도 속에 있나 보다. (남, 여 두 개의 성별이 아니라 자신과 동일한 성별과 자신과 다른 성별 두 가지를 가리키는 의미에서의) 양성애, 혹은 다성애라는 말(그리고 때로 범성애라는 말)은 그 구도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나 있겠지만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는 이름들은 아니다.

 

남, 여 두 개의 서로 다른 성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쨌거나 서로 다른 성별에 관한 말로 정의한다면 이성애라는 말이 오히려 내게는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성애라는 말은 남, 여 두 가지로만 구성된 성별 구도에 속한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뭐라 불러야 할까.

 

에이, 모르겠다.

 

다른 이들이 어떤 의미로 쓰든, 스스로를 이성애자라고 부르는 게 어쩌면 더 편한 것 같기도 하다.

 

나를 동성애자라고 불러도, 그 역시 흔히들 쓰는 의미와 다르긴 마찬가지지만.

미확정 이성애자

 

미확정 이성애자

 

종종 자신을 어떤 정체성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고 있는 ‘이성애자로 보이는’ 이들이 있다. 이성애 연애를 지금까지 해왔고, 과거의 재구성을 통해 비이성애적 경험도 ‘굳이’ 발굴해 본 적 있는 사람들, 소위 ‘올바른’ 사람들, 하지만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성애 관계만을 맺을 것만 같아 보이는 그런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 정체성에 관해 물으면 “뭐 – ‘굳이’ 이성애자로 못 박을 필요는 없잖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와 같은 말들이 나온다. 솔직히 아니꼬웠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이들을 보면

여전히 살짝 눈을 찌푸리게 된다.

게슴츠레. 게슴츠레.

갸우뚱. 게슴츠레.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아무리보아도 이성애자로 보이는’ 그 인간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여지’를 남겨둔다는 차원에서, 그렇게 자신을 이성애자로 부르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미확정으로 남겨 두는 여유를 부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지를 남겨두는 것 같은 그런 ‘여유’ – 아니꼬웠다. 이성애적 권력 기반을 버려야할 위험이 없는 삶, 성적 소수자로 자신을 구성해 나갈 때 겪게 되는 갈등과 긴장을 겪을 필요가 없는 삶, 그런 ‘자유로운’ 삶, 현실의 나는 이 진흙탕 위에 서 있는데 훠이훠이 자유롭게 소위 경계를 누비는 자들… 그럴 수 있는 자들.

좋으시겠네요.

게슴츠레.

 

최근엔 많이 나아져서 그런 말을 들어도

“그렇구나~ 그랬구나~”라며 일단은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만

눈은 게슴츠레. 게슴츠레.

어쩔 수 없다. 미안합니다.

그렇게 많이 미안하지는 않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