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연세대학교 제 22대 총여학생회 <speak-out>이 주최한
2010 제 12회 여성제 <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 Scene #0: intro.
고등학교 시절에는 2층에 교실이 있는 학생이 꽃 배달을 받았다는 소식이 꼭대기 층인 4층에 있던 내 귀에까지 들려온다거나 하는 일이 가끔 있곤 했다. 나는 학년도 다르고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친구의 소곤소곤한 투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통해 듣고는 했다. 우리가 소곤소곤 말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드러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왜냐면 미성년 고등학생이었던 우리는 성적 욕망이 없는 존재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적인 욕망’을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학생이면 연애를 하면 안 되고 학생이면 단정해야 하고 학생은 세수만 해도 예쁠 나이이고 학생이면 굽이 높은 구두를 신으면 안 되고 ‘학생이면, 학생이면, 학생이면…’으로 시작되는 규율들. 때문에 우리는 ‘성적인 욕망’의 단서를 드러낼 수 있는 행동들을 숨겨야 했고 그것들은 언제나 은밀하게, 선생님들이 포착할 수 없는 범위망 내에서 이루어지곤 했다. 하지만 ‘학생이면 단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무리 집요하게 주입되더라도 학생들은 ‘단정하지 못한’ 이야기들에 손쉽게 들썩이곤 했다.
대학교에 오고 성인이 되었다고 해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대생’인 나의 성적 욕망은 여전히 꾸준히 삭제당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단지 다른 이들이 갖고 있는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는 역할만이 주어질 뿐이었다. 이상했다. ‘성인 여성’이 되었다기보다는 여성으로 ‘다루어진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나는 갈등했고 고민했고 나는 우울했다. ]
여성에 대한 성애화는 생각보다 이른 시기부터 시작하여 지속적이고 꾸준하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성애화는 대개 ‘2차 성징’의 특징을 보여줄 때부터 시작되는데, 이 시기의 성애화는 주로 ‘수치심’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키워드로 읽어낼 수 있다. 여성은 대개 ‘2차 성징’이 시작되면서부터 자신이 성애화 된다고 느낄 때에 수치심을 느끼도록, 그로 인해 폭력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스스로를 검열하도록 끊임없이 훈육 받는다. 예를 들어 6세쯤의 아동이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을 때에는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 않지만 중학생쯤의 여학생이 다리를 벌리고 앉으면 정숙하지 못하다고 바로 훈육되는 것이라든가, 어린 아이가 옷을 벗고 집안을 돌아다녀도 무어라 하지 않지만 중학생에 접어든 여자아이가 옷을 벗고 돌아다녔을 경우에 그러면 안 된다고 혼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2차 성징’의 징후를 보이는 것은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는 몸의 시작을 알리는 지표로 간주되므로 그 때부터 여성은 ‘아기를 낳을 소중한 몸이니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1)고 훈육된다. ‘2차 성징’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시행되어 온 그간의 성교육(‘나는 아기를 가질 몸이야!’라고 말하라고 교육 받는 것)들이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 Scene #1: 초등학교 5학년 때 보건선생님이 여자아이들만 모아놓고 만약 누군가가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을 시도할 경우에는 ‘싫어요. 안 돼요 만지지 마세요.’라고 말하라고 가르쳤다. 교육이 끝난 후 애들이 계속 장난으로 그 말을 반복하며 놀았던 기억이 있는데, 어깨만 살짝 스치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우스꽝스럽게 그 말을 반복했고 나는 그렇게 연출되는 상황들이 매우 우스웠다고 기억하고 있다. 넓지 않은 복도에서 두 어깨를 감싸 쥐고 ‘싫어요. 안 돼요. 만지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초딩’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
이러한 ‘2차 성징’을 막 드러내는 시기를 지나 20대에 진입하기 전까지의 기간은 ‘성애화의 유예 기간’으로 볼 수 있다. ‘조심하라’는 훈육은 계속되지만 ‘학생이면 단정해야 한다.’는 말이 힘을 발휘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문계 여자 고등학교를 나왔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비평준화 시절에는 꽤나 높은 점수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 사립학교인지라 꽤나 오랜 시간동안 재직해온 선생님들이 많았고 그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가 얼마나 좋은 학교인지’와 ‘비평준화 시절 당시의 학생들이 얼마나 단정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했다.
위에서 볼 수 있듯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대학 진학을 목적으로 한 학생’으로 간주되는 이들은 ‘학생이면 단정해야 한다.(학생이면 무성적인 존재여야 한다.)’는 명제만 벗어나면 그 어디에서든지(심지어 ‘학생’이라는 정체성으로 생활해야 하는 학교에서도) 성애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대에 진입한 여성에게는 성애화의 요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명확하게 생각나지 않는다면 ‘너도 이제 여자가 되어야지.’라는 말을 떠올려보자. 성인기에 접어들기 전까지 금지되었던 ‘성애화’적 요소를 제거한 그 모습들을 성인기에도 유지한 사람들 – 자신의 몸의 윤곽을 감출 수 있는 의상을 입고 다니고나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거나 자신의 머리카락을 하나로 꽉 묶고 다니는 사람들-이 주로 그런 말을 들을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학생’일 때는 ‘복장불량’이라며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20대에 진입한 여성에게는 ‘예의’라는 이름을 달고 ‘해야 할 것’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공식적’자리에서는 화장을 해야 한다거나 몸의 굴곡을 드러내는 옷을 입어야 아름답다거나 다리를 모으고 앉아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연령대의 변화에 따라 여성은 이런 규율을 수행하지 않거나 수행하도록 요구받는다.
[ Scene #2 :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단정한 것이 최고다.’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대학교 오니까 부모님이 ‘치장’(?)을 허락했다. 중학교 입학 이후로 금지되었던 머리 염색과 파마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렌즈를 끼고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짧은 치마를 입어도 ‘망측하다’라는 말 대신 ‘예쁘다’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화장을 하고 있어도 욕을 먹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내가 파란색 섀도만 칠했다 하면 갖가지 소리들이 날아든다.) ‘돈을 줄 테니 머리 좀 하고 다녀라.’ 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인사말에는 복장에 관한 말이 많이 나오곤 했었는데, 그런 말들에는 대개 이상한 추측들이 담겨 있었다. ‘소개팅이라도 있느냐.’ 혹은 ‘요새 많이 힘드냐.’ 같은 말들로 나뉘고는 했는데 그 추측들은 거의 항상 엇나갔다. ]
하지만 그러한 ‘예의’라고 간주되는 규율들을 내면화 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손쉽지 않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갑자기 해야 하니 어리둥절하면서도 불편하고, 깔끔하게 딱딱 떨어지는 안내서가 있는 것도 아니니 더듬더듬 알아가야 해서 더더욱 어렵다. 그리고 규율들은 항상 티가 나지 않거나 날듯 말듯하게 드러나는 정도로까지 개인 안에서 내면화되어야한다. 만약 이렇게 ‘예의’라고 간주되는 규율들을 지키기 않았을 경우에는 여성은 ‘수치심’을 느끼도록 교육받는다. 또한 이런 ‘수치심’의 연장선에는 ‘폭력을 당할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스스로 규율을 지키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리를 벌리고 앉지 말 것, 섹슈얼한 의미로 뒤덮여 있는 신체 부위를 드러내지 말 것, 노출이 심한 옷을 입지 말 것, 속옷빨래를 공개적인 장소에 드러내지 말 것.
[ Scene #3: ‘화장을 하지 않고 어떻게 바깥을 다녀?’ 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말도 안 돼!’ 라고 생각했으나 정작 내가 화장을 하지 않고는 집 바깥에 나갈 수 없게 되었던 것. 얼굴 위에 미친 듯이 올라오던 여드름을 바로 가라앉힐 수 없다는 좌절감과 당장 내 얼굴에 무언가 붉고 튀어나오고 건드리면 아픈 것이 올라와 있다는 것에 대한 이물감과 불쾌감이 겹쳐져서 감당할 수 없었던 것, 자꾸 만지면 덧날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나갈 때에는 화장을 덧발라 가리던 것, 안경을 쓰고 집 바깥에 나가는 것 또한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었던 것. ]
여성의 훈육은 ‘2차 성징기’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본격화되지만 20대에 진입하여도 여성은 여전히 훈육된다. 둘 다 ‘훈육’이지만 특히 후자에는 성애화적 요소가 추가되어 있다. 20대에 접어든 여성은 ‘학생’ 시절과는 다르게 자기 몸의 섹슈얼한 요소를 드러내기를 요구받음과 동시에, 그러한 의도는 감추어야 하는 모순되는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한 의도를 감추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거나 일련의 ‘성애화’를 거부하는 여성에게는 가차 없는 비난이 쏟아지거나 여러 형태의 폭력이 가해진다. 하지만 그것들은 너무도 손쉽게 정당화된다. 왜냐하면 그녀는 가부장이 지켜줄 수 있는 테두리 바깥의 여성이고 이러한 여성은 가부장이 ‘지켜줄 수 없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은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자면) ‘누군가(흔히 여성과 어린이)를 지켜주면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그에 따른 기쁨을 느끼는 존재들이므로 이러한 여성은 가부장에게 위협적이다. 통제의 영역 바깥에 위치한 그녀는 가부장의 영역으로 포섭되어야 할 여성으로 여겨지며 가부장은 그녀를 포섭하기 위한 폭력을 그녀의 온몸에 가한다.
[ Scene #4: 20대 초반이라는 나의 나이는 좋은 자원이 된다. 그런데 내 물리적 나이만 자원일 뿐이다. ‘20대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몸의 가능성’은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하나의 몸의 가치’에 살해당한다. 나의 몸이 현재 가지고 있는 윤곽은 자원이 되지 않는다. 사실 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화장도 사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옷을 입는 것도 내가 만들어서 입는 게 아닌 이상 내 마음대로 입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내가 만약 화장을 꽤나 짙게 하고 다닌다면, 내가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밤거리를 거닌다면, 나는 성폭력의 위협을 느낄 것이다. 자원으로 여겨지는 나의 몸이 나 혼자 밤길을 내 맘대로 쏘다닐 수 없게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2) ]
그리하여 그녀들은 지속적으로 규율 하에서 행동하도록 훈육된다. ‘2차 성징’을 보일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훈육은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시기에는 ‘학생은 단정해야 한다.’는 명제에 따라 노골적 ‘성애화’를 금지한다. 하지만 그 명제는 가부장들이 꾸준히 행해온 ‘성애화’의 작업을 은폐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학생은 단정해야 한다.’라는 명제는 ‘학생은 무성적 존재이다.’라는 명제로 이어진다. 그것은 ‘학생은 성적 욕망을 가지지 않는 존재다.’라는 명제까지 다다른다. 그 명제 하에서 많은 ‘학생’들의 몸의 서사는 난도질당한다. 이렇게 난도질당한 서사는 20대 여성에게 노골적으로 드러난 성애화 요구를 통해, 가부장의 통제가 가능한 단조로운 몸이 아니면 살해당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살해당한 몸의 서사들을 직시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비록 고통스럽고 명확하지 않아 더듬거리게 되겠지만, 이러한 시도는 사라진 몸의 서사를 찾기 위한 시작이 될 것이다.
by 성애화 너마저!!!!!!!! 삵









<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너에게
출처: 연세대학교 제 22대 총여학생회 <speak-out>이 주최한
2010 제 12회 여성제 <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처음에 내 몸에 관한 경험을 쓰고 나서 달았던 제목이 “좌절의 기억”이었다. 하지만 내 몸에 관한 그 동안의 느낌을 “좌절”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도 들었고, 내 몸에게 미안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에겐 아픔과 슬픔의 이미지로만 기억되던 몸. 하지만 그것은 내 몸이 진정 무엇이고, 뭘 원하는지는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들한테 잘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내 몸은 나와 점점 어색해지고, 내 것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래서 내 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진실하게 내 몸을 불러보고 싶은 마음에 “너에게”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
어렸을 때 나는 친구들과 다양한 놀이를 하는 걸 좋아했었다. 친구들과 자주 축구를 했었고, 쉬는 시간에는 오목이나 장기를 두는 걸 좋아했었다. 또한, 여자애들과 공기놀이를 하거나 아이앰그라운드 하면서 노는 것도 빠지지 않고 했었다. 하지만 나의 시선을 끄는 놀이는 바로 고무줄 놀이였다. 여자애들이 폴짝 폴짝 뛰면서 즐겁게 웃는 모습에 끌렸던 것 같다. 나도 고무줄 놀이하고 뛰어 다니면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낄 것만 같았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엔 주로 점심시간에 학교 건물 옆에서 여자애들 여러 명이서 고무줄놀이를 했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여자와 남자를 구분해서 하는 놀이는 별로 없었지만, 고무줄놀이만큼은 예외였다. 여자애들이 즐겁게 놀 때 항상 고무줄을 가위로 끊는 남자애들이 있었고, 그 애들은 어떻게 하면 잽싸게 고무줄 끊고 잡히지 않을지를 고민했었다. 나는 당시 너무나 소심하고 평소엔 말도 잘 안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고, 여자애들한테도 같이 하자는 말을 하지 못했었다.
중학교 올라가서는 내 몸을 더 마르고 호리호리하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강했었다. 당시 중2때까지만 해도 키는 170 조금 넘는데 몸무게는 40 밖에 나가지 않았었다. 거식증이나 폭식증의 증세는 없었다. 단지 난 같은 학원에 다니는 여자애들 보면서 저 애들보다도 더 말라보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딱히 이유도 없이 먹고 싶은 것도 참아가면서 내 몸을 지치고 힘들게 만들었었다. 결국 한창 클 나이에 뭐하는 짓이냐며 엄마한테 심하게 혼나고 집에서 식사를 할 때엔 반강제로 밥을 먹기에 이르렀다. 그럴 때 내 몸은 포만감을 느끼고 편해지지만 내 머리만은 불편함에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차츰 차츰 생기는 여드름에 나도 모르는 거부감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내 얼굴에 나는 이 빨간 건 무엇인가? 만지면 아픈 게 너무나도 싫었다. 그래서 여드름이 생기면 미친 듯이 짜고, 세수할 때에도 일반 비누로 미친 듯이 닦았다. 결국엔 여드름이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고, 병원에 가서 심각하다는 판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나는 이렇게 여드름을 만들고 싶지 않은데 내 몸은 자꾸 왜 이러는 건가 하는 좌절감에 빠졌고, 내 몸에 대한 미움이 커져갔다. 그 후 수시로 여드름을 짜는 건 내 머릿속에서 생각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이루어졌다. 결국 이러한 피부에 대한 집착은 내 피부를 심하게 망가뜨렸고, 그 후로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볼 때 피부만 볼 것 같다는 심한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중학교 다닐 때엔 키도 부쩍 커지고 축구, 농구 같은 운동도 친구들과 잘 어울려서 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친구들 사귀는 데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을 풀지 않으면 몸이 불편했을 정도로 끈기가 있는 성격 덕분에 공부도 잘해서 반장도 해보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었다. 하지만 이런 내 몸의 고마움의 크기보다는 피부로부터 느끼는 내 몸에 대한 미움과 혐오감이 더 커서 이런 몸을 주신 부모님을 미워하기 일쑤였다.
결국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내 몸에 대한 혐오감이 더 커졌다. 친구나 선생님과 대화할 때도 나는 마치 죄인처럼 얼굴을 푹 숙이면서 눈도 안 마주치고 얘기를 하게 되었고, 사진을 찍는 기피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직도 내 고등학교 시절의 사진은 나름 깔끔하게 나온 졸업사진을 제외하고는 2,3장 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 후 대학교 들어오면서 피부 관리에 대해 차츰 알아가게 되었고, 돈이 많지 않았던 나는 저렴한 가격 선에서 피부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무작정 내 얼굴, 내 피부를 질책하지 말고,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달래주자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6년 피부에 학대를 해왔기 때문에 피부 개선은 매우 천천히 이루어졌다. 다행이도 요샌 친구들도 많이 좋아졌다고 칭찬하지만, 과제 때문에 며칠 밤을 새면서 내 몸을 혹사시키는 내 피부는 화가 난 듯 심하게 빨개지고 벗겨진 상태로 나한테 항의를 한다.
고등학교 시절엔 두발 제한이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머리를 길게 기르는 학생의 경우 밤에 학교에 나와 운동장 수십 바퀴를 오리걸음으로 걷게 하던지, 체육관 모든 지역을 청소시키는 등의 가혹한 처벌이 내려졌다. 그래도 깡이 있던 학생들은 선생님이 교실을 돌 때 화장실에 숨어있는 등의 전술로 아슬아슬하게 피해갔다. 당시 소심했던 나는 그 친구들이 머리를 길게 기르고 젤과 왁스를 바르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래서 대학교 들어간 후에 몇 개월씩 머리를 다듬으면서 머리를 굉장히 길게 길렀다. 그 때는 머리카락이 금방 자라는 여자애들이 부러운 적도 있었다. 몇 개월씩 신경을 쓰자 내 머리카락은 내 몸에서 가장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그 후 난 과감하게 전부 노란색으로 염색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였다. 머릿결이 나빠진다, 양아치로 보인다는 등의 이유로. 고등학교 다닐 때 “대학교에 입학만 하면하고 싶은 거 뭐든지 하게 해줄게”라고 약속을 했던 엄마였다. 엄마의 거짓말에 실망했지만 난 그래도 꿋꿋이 엄마한테 염색을 하겠다고 얘기를 하고 미용실에 갔다. 하지만 당시 미용실의 직원의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엄마가 전략적으로 미용실 직원에게 “이 애 노란색으로 염색하면 이상하죠? 그냥 브리지나 넣는 게 어떨까요?”라고 하자 직원은 “네 브리지가 더 어울릴 거 같아요. 그래도 결정은 본인이 하셔야죠.”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엄마는 아군을 만난 듯이 나한테 계속해서 브리지만 해라, 염색할 돈은 없다는 식으로 협박을 했고, 결국 브리지만 넣는 것에 만족해야 했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외국인 같다, 너무 안 어울린다, 네가 무슨 개그맨인 줄 아냐는 등의 혹평만 오고 갔다. 그 중에 가장 황당했던 말은 “너 혹시 게이냐?”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알려달라고 하자 “변태 같자나. 그게 뭐야?”였다. 난 너무나 화가 나서 “내 머리가 어째서 변태 같다는 거야? 게이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하는거냐?” 라고 따지자 그 친구도 나한테 질 수 없다며 화를 냈었다. 결국 주변의 여자애들도 이상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등 좋은 얘기가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된 후 난 내가 젤 아끼던 머리를 검은색으로 바꾸고 짧게 잘랐다. 그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버지께서 반가워하시며 “얼마나 깔끔하고 보기 좋냐?”라고 말했을 때의 불편함. 내가 보기엔 그 전의 헤어스타일이 더 좋은데. 그렇다면 누가 보기 좋게 잘라야 하는 건가하며 느끼던 어색함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변성기가 금방 지나가버렸다. 그래서 목소리가 약간 높고, 노래 부르면서도 내가 목소리가 약간 모기 목소리 같다는 느낌을 갖는다. 또한,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기 시작하면서 대화의 주도를 내가 잡으면 말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다. 한 번은 집에서 엄마와 대화를 열심히 하는 중이었다. 엄마께서 나한테 친구 만날 때도 그렇게 말 많이 하고, 빨리하고, 경박한 톤으로 말하느냐고 물어봤었다. 그래서 나는 친한 친구 만날 때에도 이렇게 말하는데 그게 경박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께서는 덩치도 있는 애가 그래야겠냐면서 친구 만날 땐 말 많이 하는 건 좋지만, 친구 말할 기회도 주고 말 좀 줄이고, 목소리도 좀 굵게 하라고 말하셨다. 그러면서 여자는 네가 남자답게 의젓하고 말도 신중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야 좋아한다면서 목소리를 좀 더 신경 쓰라고 말하셨다. 난 약간 하이톤 같은 목소리가 좋은데, 왠지 반가운 친구 볼 때엔 말 더 많이 하고 싶고, 더 많이 말하려면 빨리 말해야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말하는 남자답게, 멋있게 보이려면 내가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고 내 목소리도 약간 거짓되게 숨겨야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엄마의 가벼운 충고라 생각하면서 넘어갔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친구를 만날 때 아무리 편하게 느껴지고, 기분이 좋아도 어느 정도 내 목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말하고 싶은 방식대로 말하지 못하면서 내 몸에 대해 또 한 번 좌절감을 맞보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몸에 관련된 기억들을 풀어보니, 몸에 대한 고마움과 뿌듯함 보다는 내 몸에 대한 혐오감, 내 몸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좌절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이렇게 내 몸을 싫어했었나 하는 생각에 괜히 미안한 감정마저 든다. 이러한 감정은 과연 나만 갖고 있는 특별한 감정일까? 소위 말하는 인기 많고 멋있는 친구들은 과연 자기 몸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들도 주변에서의 인정을 얻기 위해 몸을 꾸미고 가끔은 혹사시킬 때엔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우리의 몸이 아니라 그저 남들이 바라고 내가 꿈꾸던 형태를 쫓다 고꾸라진 하나의 덩어리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몸이 없어졌다는 걸 이제야 실감하게 되었는데, 과연 몸은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지금 나를 감싸고 있는 것들이 언제부터 타인들의 시선과 나의 강박관념의 덩어리로 바뀐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나를 휩쓸자 이제는 좌절감이 아닌 “나를 떠난” 내 몸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답답함만이 나를 감싼다. 그냥 남들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내 마음대로 꾸미고, 내 마음대로 관리하면 네가 다시 돌아와 줄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표피들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인정하고 감싸주면 너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내 몸을 찾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지만 사라진 내 몸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