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치마 이야기 (2008.08.01)

080801myskirt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울 엄마 말에 따르면, 내가 여자 한복을 입겠다고 울고 불고 때 써서1) 한 번 입혀줬더니, 좋다고 웃으며 찍은 사진이란다. 

사진을 보면 자주 치마를 입고 놀았던 것 같다. 그 때 나에게 치마가 어떠한 의미였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지금의 기억은 분명 그 이후의 경험으로부터 오염되었을 테니까.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추적해보자면, 그 펄럭임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도 물결이나 바람이 휘날리는 옷자락, 머리카락 느낌의 곡선들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사진에 나오는 포즈나 소품들을 보면 꼭 펄럭이는 치마에만 꽂힌 것 같지는 않기도 하다. 소위 ‘여자 아이다운’ 행동양식들이 내 마음에 들었나보다.(내가 여자였다면 그런 행동들은 그냥 나였겠지만, 남자아이였기에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그 무엇으로 설명하지는 모르겠다.)

 꽤 좋아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였을까? 치마를 안 입게 된 것은. 왠지 살짝 과장되게 조작되었을 것 같은 나의 기억으로는 저 때였던 것 같다. 옆집 누나와 형이 밤에 신부름을 왔던 그날, 그들은 내가 치마 입은 걸 매우 신기해하며 즐거워했고, 그래서 같이 사진도 찍었던 것 같다. 아마 점차 알아갔을 것이다. 사람들은 치마입은 남자를 보고 웃거나, 놀리거나 혼낸다는 것을. 그리고선 치마를 버렸을 것이다. 사람들이 치마입은 나를 코미디언이나 변태로 바라보는 건 싫었으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치마는 멀리 있었다. 여전히 펄럭이는 것은 멋지고 원피스가 시원하겠다는 생각을 한 두 번 쯤 해봤지만, 난 치마입은 여자와 바지입은 남자들이 지배한 세상에 살고 있는 소시민일 뿐이었다.

 24살 따뜻한 날, 친구의 추천으로 프랑수와 오종 단편 “썸머 드레스”를 보았다. 팔랑이는 원피스를 입고 자전거를 달리는 남자의 즐거워하는 표정이 탐났다. 나도 신나게 원피스를 휘날리고 싶었다.

“그래! 퀴어퍼레이드다. 이 때 밖에 없다” 수없이 내 속으로 되뇌였다. 하고는 싶었지만 두려움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대략 1년 후, 퍼레이드에서 난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추며 행진을 했다. 누군가는 “너가 드랙을 해서 놀랐다”고도 하고, “이게 뭐니? 할거면 제대로 해야지. 이리와. 화장해줄게”라고도 했다. “너 크로스드레서였어?”라고 물어보기도 했고, 오묘한 표정으로 “참 용기있는 것 같아요”라고도 했다. “이쁘다”라고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무엇을 이쁘다고 하는지 나는 잘 몰랐다.

난 비뚤어져 있었다. 사람들의 온갖 시선들이 내 머릿속을 휘졌고 다녔다. 온전한 내 생각은 존재할 수 없었다. “난 용기있고 싶지 않아. 화장을 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내 어깨에도 맞는 멋진 원피스를 휘날리고 싶어”라고 계속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쁘다”고 하는 사람들의 진심어린 말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내가 원하는 건 불가능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 난 내 머릿속의 시선들을 모아서 상자에 담아둘 수 있다. 물론 다시 치마를 입고 돌아다닌다면 온갖 말들과 시선들이 상자를 뚫고 나와 머리를 헤집고 다니겠지만. 이제 좋은 의미는 좋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좋은 의미일 거라고 믿는다. 나조차도 나를 이쁘게 볼 수 없는 이 구조에서 자기최면은 필수인 것 같다.

퀴어퍼레이드 이후 ‘이렇게 힘들어서 다시 치마를 입을 수 있을까?’라고 했다. 치마가 바람에 휘날리는 기쁨보다, 사람들 시선 고민의 고통이 더 컸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자기최면으로 중무장하고 언젠가 다시 입어볼 생각이다. 더 화려한 색에 더 팔랑이는 원피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