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까페키드가 되었나
고등학생 때부터 카페를 다녔다. 그땐 카페라기보다 커피숍에 다녔다. 밤이 되면 눈에 띄게-이런 표현은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조도가 낮아지고 물탄 양주를 파는 곳들이었다. 7층짜리 러브모텔 같은 것 옆에 붙어있는 커피숍들.
우리가 살던 J시는 좁은만큼 소문도 빠른 동네라, 또래들이 가는 캐주얼한 카페에 갈 순 없었다. 여학교와 남학교 애들이 떼를 지어 미팅을 하거나 동아리 대면식을 하거나 하는 옆에서 담배를 피울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그런 곳에 드리운 레이스 커튼과 소파는 너무, 소문처럼 지저분하고 고향처럼 촌스럽고 학교처럼 열악한데다 강압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역설적이게도 고향처럼 강압적이고 학교처럼 촌스러운 어른들이 드나드는 곳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복 후레아 치마를 입고 재킷을 손에 들고 있어도, 들어서는 우리를 제지하는 어른들은 아무도 없었다. 사나운 눈빛의 ‘마담’은 묵묵히 돈을 받아 세었다. 난 더 어른이 된 것 같았지만 아침이면 아빠 지갑을 뒤져 지폐를 꺼내는 고등학생, 어차피 이 돈은 이곳 이집 그리고 내 모든 불행과 악행의 근원인 술이 다 먹어버릴 거였다고 위안하며, 그 진한 화장의 수많은 ‘마담’들에게로 쪼글쪼글 구깃한 채 넘겨질 운명인 종잇돈들을 교복 주머니에 떨지도 않으며 집어넣는, 어쩔 수 없이 문제집 잔뜩 든 책가방을 메고 콧김을 씩씩이며 아빠차에 앉아 등교하는, 옆자리에서 양말을 끼워신기나 하다 꾸중이나 듣는, 고등학생. 학교에선 잠을 자도 맞지 않고 가방에 담배가 들어있어도 소지품 검사에서 내 가방만은 채 열려보지도 못하고 늘 무사한, 신경질적인 여고생. 운동장 트랙을 몇 번이고 빙글빙글 돌아도, 잔디밭 위에 벌렁 드러누워봐도 지겹기만 한 야간자율학습이 끝날 무렵이면 날 데리러오는 친구가 있었다.
아빠에게, 아빠 같은 어른에게, 엄마에겐 없는 밤생활이 있듯이 내게도 밤의 생활이 있었다. 아빠에게 지기 싫고 엄마와는 다르고 싶던 우리들 두 여자아이들은 존재감 없이, 은밀하게, 눈에 띄지 않았으므로 더 대담하게 그들의 세계를 침범할 수 있었다. 나는 교복을 입었지만 내겐 학교를 다니지 않아 교복도 입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온종일 심심하단 말을 달고 살던 그애의 귀에는 반짝이는 귀걸이가 열 개씩 스무 개씩, 아니 서른 개쯤이었나, 머리칼은 발끝까지 내려올만큼 아닌가, 무릎만큼이었나 길고 칠흙같이 검었고 어른들이 다니는 상점에서 우리 엄마 것보다 몇 곱절씩 비싼 코트를 사 입는, 얼굴이 하얗고 코는 오똑하고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빨리 거기에 실리콘을 집어넣고 이빨엔 도자기를 깔았다고 했었나. 실제로는 전혀 아니었겠지만 그애는 참 어른처럼 보였다. 나야 늘 교복을 입고 주말에 고작 청바지를 입었지만 우리는 똑같이 어른들을 두려워했고 경멸했고 늘 집이 싫었다. 우리는 절대 망가져선 안 될 밤의 생활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시작했다. 담배를 처음 피울 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배웠듯이 그렇게, 멀겋고 쌉쌀하고 프림이 들지 않은 커피를 배워나갔다. 엄마가 설거지하고 식탁에 앉아 마시는 커피와는 전혀 다른, 멀겋고 쌉쌀한 한 사발의 커피. 묽어서 그런가 양도 참 많았지.
어둡고, 격리되어있고, 누구나 자신의 행위를 부끄러워하는 그런 가게들의 소파를 하나씩 차지하고 나른하게 드러누워 우리는 각자의 삶이 얼마나 비루한지만 읊어대었고 우리는 이제 담배와 커피를 한꺼번에 배워나갔다. 지금에 와서야 모든 걸 기억할 수도, 이제 물어볼 수도 없게 되었지만 우리는 아마 외롭고 슬프고 연약한 감정들을 계속 교환했었던 것도 같고 그런 얘긴 안했지만 서로를 많이 좋아했고 그리고 어쩌면 의지했을까, 각자의 말만을 하면서, 상대가 말을 할 수 있도록 그저 내버려두면서 격려했을까. 아마 혼자서는 내 몸을 그런 곳에 맡기지 못했을 거다. 난 나만 그런 걸지 의구심이 들었었지만 이제는 그 애도 똑같이 내게서 용기를 얻었음을 안다. 우리가 거멓게 지친 얼굴로 피워 올린 담배연기만큼이나 우리는 허무해지기만을 바랐다. 허무라는 말에는 멋이 있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초라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거기에서는 정말이지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울렸다. 내가 보고 있는 너의 모습, 소파에 푹 파묻힌, 온통 검은 실내와 작게 피워진 조명들, 아주 묽은 커피와 담배, 간섭하지 않고 마음껏 부끄러운 짓을 하던 어른들까지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이야기였다. 나의 십대를 떠올리면 늘 같은 풍경이 떠오른다. 하나도 퇴폐적이지도 못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야말로 가장 더럽다고 자부했던, 애초에 가장 깨끗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가장 더럽자고 무언으로 다짐하던, 작은 두 여자아이들. 밤의 커피숍에 반쯤 드러누워 겨우 심심하다고 지껄이기나 하던 불만 가득한 얼굴들. 그렇게 우리는 까페키드로 자라났다. 다방커피도 아니고 아메리카노도 아닌 멀건 커피를 술처럼 들이키면서 붉은 얼굴과 쿵쿵 뛰는 심장을 얻어내며 딱 그만큼 어설프게.
스무 살이 넘어 내가 J시를 떠나오고도 몇 해가 지난 후, 한동안 이런 나의 성장담은 내게 참기 어려운 부끄러움이 되었다. 내가 훔쳐다 펑펑 써댄 돈은 아빠에 대한 복수도 뭣도 아니라 그저 가족 중 누군가에 대한 인정사정없는 갈취였다. 친구의 아버지는 유흥업소를 경영했었다. 그토록 더럽게 벌어댄 돈이라면서도 친구는 외국으로 여행을 다니고, 돌고래처럼 미끈한 자가용을 한 해가 멀다하고 바꿔댔다. 내 보기에 그 얄팍한 취향으로, 라미네이트한 치아와 실리콘을 넣은 코로, 가끔 고향에서 만나면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며 투덜댔고 그녀를 위협하는 유일한 압박은 이제 겨우 슬그머니 어른들의 입에서 하나마나한 말로 비어져 나오는 시집가란 소리 정도 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쉬운 경멸을 보냈다. 마침내 어느 날 친구와의 술자리에 왠 마초가 동석했다. 첫눈에 지방‘건달’ 같은 그 남자가 건들거리며 빚 안 갚는 연놈들 어쩌고 하는 소리를 지껄여댈 때, 정말로 골치가 아파왔다. 내가 학교에서 만나는 마초들의 영역에 도저히 포섭조차 안되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그 무시무시한 남자가 내 곁에 앉는 순간 나는 그만 두 손 들고 말았다. 우리의 생활은 이제 맞닿을 수도 없게 떨어져있었다. 우리 관계의 역사는 감히 내 입에서 무슨 소리를 할 수도 없게 만드는 무거움으로 기능할 뿐이었고 입이 굳게 닫힐수록 나는 속에서부터 피어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J시와 서울은 이제 너무 멀었다. 그녀를 생각하면 J시가 떠올랐고, J시를 생각하면 그녀가 떠올랐다. 피하고 싶은 과거들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시시때때로 나를 위협해왔다.
그러나 그녀는 때때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토록 여전히 나른한 목소리로. 뭐해? 로 시작해, 커피나 한 잔 하자. 로 끝나는 짧은 통화들. 지금도 기억하는 어떤 새벽엔, 이쪽은 다음날 아침 발표준비로 똥줄이 타는데 그 나른한 목소리로, 세상에 그 게으른 목소리로, 이 새벽에 안자는 사람은 너뿐일 것 같아서, 라며 전화를 해왔었다.
어쩌면 나의 경멸은 너무 쉬웠다. 이제 와서야 겨우 생각하게 된 것이지만, 여전히 어두운 커피숍의 자장 안에 있던 친구는 적어도 나처럼 운이 좋지 못했다. 나는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로부터 쉴새없이 부끄러움과 분노를, 나쁜 것과 좋은 것을 가려내는 방법과 새로운 원칙들을 배울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대낮의 밝은 길가에서 실컷 담배를 태울 수도 있고, 환하고 예쁜 카페에서 허무 따위를 동경하지 않으며 커피를 마실 수도 있는 완전한 타지에서 홀로 살게 되었다. 타지에서의 낯선 생활, 정확히는 집을 잊을 수 있는 생활, 을 우리가 그 무렵 얼마나 동경했었는지를 나는 너무 쉽게 잊었다. 내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것을 혐오하는 것은 가끔 집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에 짜증이 나곤 하는 일처럼 너무나 쉬웠다. 그곳에 있는 불안과 수많은 억압들. 끔찍한 책임감과 기대와 모순들. 지난 이십 년이 고스란한 기억들. 모두 다 내가 서울에 오면서 거기에 놓고 온, 나의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 쉬웠던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을 모른 척 하기는. 또한 경멸을 보내기는.
그애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초봄의 장례도 사십구제도 몇 달 지나 뜨겁던 한 여름의 일이다. 마음을 추스릴 필요가 있었다. 석관동에서 버스를 타고 종로로 나가 하릴없이 걸었다. 딱 한 명 남은 고향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아도 그 때의 우리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그 모두가 고스란히 우리 둘만이 알고 있는 일이었으니까. 아무도 모르던 밤의 커피숍 같은 일들은. 시커먼 밤을 산책하던 일들은. 처음으로 담배를 피우던 일, 그 멀건 커피에 익숙해지던 하루하루와 개미새끼 한 마리조차 없던 테니스 코트에서의 대화 같은 건, 무엇보다도 그때의 우리 같은 건, 아무도 모르니까. 카페 뎀셀브즈로 갔다. 커피를 고르고 계산하고 기다리고 계단을 오르는 분주하고 복잡한 절차가 익숙하게 사고를 정지시켰다. 삼층으로 올라가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보았다. 빨대로 쓴물이 끌려 올라오고 눈과 코는 축축하게 젖었다. 이렇게 쓴 커피를 마시는데도 내가 흘린 액체들에선 여전히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는 게 새삼스럽다.
한 때 온전히 내 편이라고 생각했었던 내 친구가 죽었다.
나는, 멀리 떠나온 줄 알았는데 아무데도 가지 못했다.









웹진 [3비성애] 발행!
아래의 링크를 누르면 글로 이동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