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랑을 지지한다.
당신, 과 그들, 두 개의 표현을 두고 고민했다. 이 글은 ‘그들’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당신’이라는 말을 쓰기로 결정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든, 그들의 편에 있음을, 비록 말 뿐이라 할지라도, 가까이 있음을 그들에게 말하고 싶어서.
지지라는 표현을 두고도 고민했다. 사랑에 지지가 필요할까. 사실 괴롭히지만 않으면 되지 지지하는 건 주제넘은 짓인지도 모르지만, 이미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니까, 나는 괴롭힘이 사라질 때까지는 지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신, 그러니까 그들은 사제 간에 사랑을 한, 정확히는 섹스를 한 사람들이다. 얼마 전 여교사와 남학생의 섹스 ‘사건’이 보도되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학생이 나이가 차서 둘의 섹스에 대해 교사를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에 여론은 분노했다. 여교사 ‘신상 털기’나 하는 저질들의 비아냥거림이었지만, “남교사에 여학생이었으면 가만히 있었겠느냐”는 반응들도 종종 보였다.
무언가 쓸까, 하다가 그 비아냥거림을 보고 멈췄다. 분명히 지지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멈췄다. 그리고 또 얼마 전, ‘남교사와 여학생’의 섹스가 보도되었다. 내가 똑같이 분노하지 않았듯, 사람들은 똑같이 분노했다. “이번에도 처벌 못한다”는 불만 섞인 기사가 포털 사이트 메인에 게제 되었다. 국회의원의 성희롱 발언 때에도 보지 못한, 강렬한 불만이었다.
내가 아는 학생과 교사의 사랑은 두 가지다. 젊은 남자 교사에 대한 여학생들의 사랑, 졸업한 후에 ‘이루어 진’ 사제의 사랑.(둘 다 티브이에서나 본 것이지만. 참고로 덧붙이자면, 젊은 여자 교사에 대한 남학생들의 판타지도 있다. 동성애 관계가 물론 있겠지만, 티브이엔 안 나오더라.) 둘 다 할 말이 많지만, 일단 뒤의 것만 이야기하기로 하자.
교사에 대한 학생의 선망이 사랑으로 굳고(곧바로 사랑에서 시작하지는 않더라) 학생에 대한 교사의 애정이 위태롭게 흔들리면(의심의 여지없는 사랑으로 비춰 지지는 않더라) 섞이면 ‘금지된 사랑’이 된다. 방법은 두 가지다. 마음 굳게 먹고 공부에 집중하거나 전학 가는 것, 아니면 학생이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기다리면 뭐가 달라지나. 사실, 나이를 먹으면 달라지긴 하더라. 그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이러나저러나 경험이 적으니 사랑인지 아닌지 실수할 수도 있고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으니까 ‘어른이 되어서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될 때’까지 기다리면, 달라질 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어릴 때 했던 생각들, 그러니까 작년이나 재작년쯤에(1년은 내 인생의 4%쯤 된다) 했던 생각들에 대해서는 나도 종종 후회를 하니까.
그런데 이거, 그 ‘어린 판단력’이 치르는 몇 번의 시험에 인생을 걸게 만드는 사회가 해도 좋은 판단은 아닐 성 싶다. 게다가 경험을 언제까지 쌓으면 어른이 되는 걸까, 걱정 없이 판단을 내리려면 공자님 말씀을 기준으로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도에 어긋나지 않는다(從心所欲不踰矩)’는 70세 까지는 기다려야 된단 말이다. 잘 봐줘서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不惑)’정도에서 합의 봐도 마흔 살이다.
끔찍해라.
(학생이 교사의 권위에 대한 동경을 사랑과 착각하지 않게 교사의 권위를 없애고, 설령 어린 날의 사랑이 ‘실수’로 끝난다 해도 문제 되지 않게 피임 교육 잘 시키고 청소년의 섹스를 문제 삼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봅시다.)









<편> Nota bene.
Nota bene.
제목은, 명심하라, 는 뜻의 라틴어다. 수업 때문에 논문을 읽다가 뜬금없이 NB라는 두 글자가 문장 사이에 끼어 있길래 찾아 봤더니 그런 뜻이라더라. Bene는 알다시피, 카페 베네의 그 베네다. 자고 일어나면 또 한 군데 씩 생겨 있는, 그 카페 말이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학교 앞에도 결국 카페 베네가 생겼기 때문이다. 학교 앞의 커피값은 평균 이천원 쯤 된다.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가 아니라, 모든 커피의 평균이 말이다. 생과일 주스도 보통은 천오백 원 쯤, 제일 비싼 커피래 봐야 사천 원을 체 넘지 않는 동네다.
홀리스 커피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학교 앞’이라고 할 만한 상권에서는 조금 벗어난 곳에 있고 나머지는 전부가 그냥 동네 카페라고 불러도 좋은 개인 사업장이거나 영세 체인들이다. 그런 곳에도 드디어 카페 베네가 생긴 거다. 아직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런 만큼 더 눈에 띄는 광고판이 길 한가운데에 떡 하니 놓여 있다.
카페 베네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조금 더 가까운, 학교 안의 이야기다. 그리고 정확히는, 그냥 나의 이야기다. 몇 년 전 학교에 들어 올 때 제일 싼 밥은 천오백 원짜리였다. 얼마 뒤 천칠백 원으로 오른 가격은 지금까지 또 몇 년 째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그 당시, 가장 비싼 밥은 이천오백 원쯤이었는데 지금은, 교직원 식당이나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을 빼도 사천 원짜리 메뉴가 수두룩하다.
카라멜 마끼아또가 천오백 원인 동네에도 카페 베네가 들어오는 것처럼, 학교에도 이런 저런 비싼 식당들이 들어 선 것이다. 민자를 유치해 새로 지은 기숙사 식당에서 사천 원짜리 밥을 팔더라고, 삼천오백 원짜리는 잔치국수였다고,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다.
기숙사에는 김밥천국도 들어 왔다고 했다. 그 이야기가 나올 때 쯤 곁에 있던 누군가가, 니가 데모를 안 하니까 그렇잖아, 라며 내게 농담을 던졌다. 변명부터 하자면, 안 한 것은 아니다. 민자 기숙사 반대를 열심히 안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동안 문을 열고 입점한 외부 업체에 대해서는, 그저 몰랐을 뿐이다.
그런 것은, 하지만 별 문제가 아니다. 이 글이 학교의 상업화가 아니라 그저 나에 대한 글이기 때문이다. 김밥 천국이 나는, 반가웠더랬으니까 말이다. 물론 학내에 입점한 외부 기업들, 그러니까 투썸 플레이스라든가 카페 소반이라든가 더 키친이라든가 하는 데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듯이 김밥천국에도 나는 가지 않겠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김밥천국에는 언제나 야채비빔밥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 식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곳에서 사천 원짜리 밥을 파는 시대에, 프랜차이즈 기업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어졌다. 어차피 준직영이니 위탁이니 하는 학교 식당들도 프랜차이즈 기업이기는 마찬가지인 것을.
어쩌면, 매 끼니마다 고기반찬을 올려 나를 갈 곳 없는 곳으로 만드는―내가 채식주의자라는 뜻이다― 학교 식당보다는 언제 가든 먹을 수 있는 메뉴가 하나쯤은 있는 김밥천국이 어쩌면 더 내 편이 아닐까 싶었다.
슬펐다.
학교에 들어오는 외부 기업에 반감을 안 가질 만큼 무뎌졌다, 는 게 아니라 외부 기업이나 학교 생협이나 똑같이 ‘남’이 될 만큼 내가 날카로워 졌다는 게 말이다.
익숙한 슬픔이다.
‘운동’ 한답시고 이 문제 저 문제 다 들추고 다니면서 정작 내부적인 문제에는 무디던 사람들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 만큼 내가 날카로워 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 때 느꼈던 바로 그 슬픔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거리에서 무언가를 외치고, 불편한 농성장에서 쪽잠을 자고 없는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토론을 하던 그 모든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되었을 때 느꼈던 바로 그 슬픔이다.
문제가 얽히고설키면서, 내 편과 남의 편을 가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반여성주의적인 공산주의자, 여성주의를 말하면서 반장애인적인 언동을 일삼는 사람들, 채식주의자를 귀찮아하는 사회주의자, 자본주의적인 여성주의자, 엘리트주의에 푹 빠져 있는 전위주의자…반쯤만 내 편인 사람들, 어쩌면 ‘적’보다 더 불편한 사람들,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그런 만큼 나의 자리는 좁아진다.
고기는 먹지 않는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과소비도 하지 않는 데다, 가급적이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여성 비하적인 것이든 장애인 비하적인 것이든 욕은 쓰지 않고, 어린 사람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으며, 누나나 형이라는 말도 쓰지 않고, 또 못 난 사람을 보고 수군거리지도 않는다―그러니까 나는, 고깃집엔 가지 않으며, 흡연석에도 앉지 않고 쇼핑도 하지 않고, 택시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욕을 쓰는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고, 말 편하게 하세요 하고 말해 주지도 않고 어른 대접을 해주지도 않으며, 얼굴이든 실력이든 못 난 사람들 욕하는 사람에게 맞장구 쳐주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담배는 피워 본 적이 없고 장애인 비하적인 욕도 써보지 않은 데다 못 난 사람을 욕하는 것도 원래부터 안 했고 물건 사는 것도 원래 안 좋아 했으니 꽤 많은 것을 안 해 보긴 했지만, 고등학생 때쯤에는 나도 몇 가지 욕을 입에 달고 살았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회식은 고깃집에서 했다. 선배를 만나면 형이나 누나라고 불렀고 후배가 들어오면 말 놓아도 되죠(될까요, 가 아니라), 하고 묻기도 했다. 서너 명 쯤 모이면, 기본요금 거리에는 버스 대신 택시를 타기도 했다.
그러니까 해가 갈수록, 하나씩 안 하게 된 거다. 해가 갈수록 말이다. 같이 고기를 먹던 친구들은 여전히 고깃집에서 회식을 하고, 혼숙만 안 하면 여성주의적 농성이 되리라 생각했던 이들은 몇 년째 똑같은 여성주의 내규를 베껴 쓰고, 나이에 맞추겠다며 조금씩 비싼 물건을 좋아하게 되는 동안, 나만 하나씩 안 하게 된 거다.
친했던 그들과, 즐거웠던 그들과 함께 있으면 이제는 즐겁지 않다. 친구, 라고 말하려면 목에서 무언가가 걸린다. 그들은 여전히 욕을 하고, 사람이 고기를 먹어야지, 하고 말하는 데다가 ‘쉬는 시간’을 ‘담배 피우는 시간’이라고 부르는 그들의 사이에서, 나는 쉼 없이 구석을 찾는다. 구석으로 파고든다.
내 편이란 거, 찾을 수 있을까.
패밀리 레스토랑에서의 이만 원짜리 외식이나 학교에서의 사천 원짜리 식사나 비싸기는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자나 좌파들이나 성차별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여성주의자랑 고깃집에서 놀 수도 없고 웰빙주의 자유주의자랑 채식 식당에서도 놀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나는 말이다.
그래서 외로운 건 아니지만, 심심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예전처럼 또 해 볼 수 있을까. 농성장에서든 과방에서든 호기심에 가득 차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못마땅한 것 없는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는 것, 돈 없이 즐겁게 노는 것, 운동은 즐거운 일이라고 말하는 것, 학교에 있을 것은 김밥천국이 아니라 생협 직영 식당이라고 말하는 것―그 중 하나라도 또 해 볼 수 있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