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Nota bene.

Nota bene.

 

제목은, 명심하라, 는 뜻의 라틴어다. 수업 때문에 논문을 읽다가 뜬금없이 NB라는 두 글자가 문장 사이에 끼어 있길래 찾아 봤더니 그런 뜻이라더라. Bene는 알다시피, 카페 베네의 그 베네다. 자고 일어나면 또 한 군데 씩 생겨 있는, 그 카페 말이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학교 앞에도 결국 카페 베네가 생겼기 때문이다. 학교 앞의 커피값은 평균 이천원 쯤 된다.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가 아니라, 모든 커피의 평균이 말이다. 생과일 주스도 보통은 천오백 원 쯤, 제일 비싼 커피래 봐야 사천 원을 체 넘지 않는 동네다.

홀리스 커피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학교 앞’이라고 할 만한 상권에서는 조금 벗어난 곳에 있고 나머지는 전부가 그냥 동네 카페라고 불러도 좋은 개인 사업장이거나 영세 체인들이다. 그런 곳에도 드디어 카페 베네가 생긴 거다. 아직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런 만큼 더 눈에 띄는 광고판이 길 한가운데에 떡 하니 놓여 있다.

카페 베네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조금 더 가까운, 학교 안의 이야기다. 그리고 정확히는, 그냥 나의 이야기다. 몇 년 전 학교에 들어 올 때 제일 싼 밥은 천오백 원짜리였다. 얼마 뒤 천칠백 원으로 오른 가격은 지금까지 또 몇 년 째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그 당시, 가장 비싼 밥은 이천오백 원쯤이었는데 지금은, 교직원 식당이나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을 빼도 사천 원짜리 메뉴가 수두룩하다.

카라멜 마끼아또가 천오백 원인 동네에도 카페 베네가 들어오는 것처럼, 학교에도 이런 저런 비싼 식당들이 들어 선 것이다. 민자를 유치해 새로 지은 기숙사 식당에서 사천 원짜리 밥을 팔더라고, 삼천오백 원짜리는 잔치국수였다고,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다.

기숙사에는 김밥천국도 들어 왔다고 했다. 그 이야기가 나올 때 쯤 곁에 있던 누군가가, 니가 데모를 안 하니까 그렇잖아, 라며 내게 농담을 던졌다. 변명부터 하자면, 안 한 것은 아니다. 민자 기숙사 반대를 열심히 안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동안 문을 열고 입점한 외부 업체에 대해서는, 그저 몰랐을 뿐이다.

그런 것은, 하지만 별 문제가 아니다. 이 글이 학교의 상업화가 아니라 그저 나에 대한 글이기 때문이다. 김밥 천국이 나는, 반가웠더랬으니까 말이다. 물론 학내에 입점한 외부 기업들, 그러니까 투썸 플레이스라든가 카페 소반이라든가 더 키친이라든가 하는 데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듯이 김밥천국에도 나는 가지 않겠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김밥천국에는 언제나 야채비빔밥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 식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곳에서 사천 원짜리 밥을 파는 시대에, 프랜차이즈 기업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어졌다. 어차피 준직영이니 위탁이니 하는 학교 식당들도 프랜차이즈 기업이기는 마찬가지인 것을.

어쩌면, 매 끼니마다 고기반찬을 올려 나를 갈 곳 없는 곳으로 만드는―내가 채식주의자라는 뜻이다― 학교 식당보다는 언제 가든 먹을 수 있는 메뉴가 하나쯤은 있는 김밥천국이 어쩌면 더 내 편이 아닐까 싶었다.

슬펐다.

학교에 들어오는 외부 기업에 반감을 안 가질 만큼 무뎌졌다, 는 게 아니라 외부 기업이나 학교 생협이나 똑같이 ‘남’이 될 만큼 내가 날카로워 졌다는 게 말이다.

익숙한 슬픔이다.

‘운동’ 한답시고 이 문제 저 문제 다 들추고 다니면서 정작 내부적인 문제에는 무디던 사람들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 만큼 내가 날카로워 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 때 느꼈던 바로 그 슬픔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거리에서 무언가를 외치고, 불편한 농성장에서 쪽잠을 자고 없는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토론을 하던 그 모든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되었을 때 느꼈던 바로 그 슬픔이다.

문제가 얽히고설키면서, 내 편과 남의 편을 가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반여성주의적인 공산주의자, 여성주의를 말하면서 반장애인적인 언동을 일삼는 사람들, 채식주의자를 귀찮아하는 사회주의자, 자본주의적인 여성주의자, 엘리트주의에 푹 빠져 있는 전위주의자…반쯤만 내 편인 사람들, 어쩌면 ‘적’보다 더 불편한 사람들,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그런 만큼 나의 자리는 좁아진다.

고기는 먹지 않는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과소비도 하지 않는 데다, 가급적이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여성 비하적인 것이든 장애인 비하적인 것이든 욕은 쓰지 않고, 어린 사람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으며, 누나나 형이라는 말도 쓰지 않고, 또 못 난 사람을 보고 수군거리지도 않는다―그러니까 나는, 고깃집엔 가지 않으며, 흡연석에도 앉지 않고 쇼핑도 하지 않고, 택시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욕을 쓰는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고, 말 편하게 하세요 하고 말해 주지도 않고 어른 대접을 해주지도 않으며, 얼굴이든 실력이든 못 난 사람들 욕하는 사람에게 맞장구 쳐주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담배는 피워 본 적이 없고 장애인 비하적인 욕도 써보지 않은 데다 못 난 사람을 욕하는 것도 원래부터 안 했고 물건 사는 것도 원래 안 좋아 했으니 꽤 많은 것을 안 해 보긴 했지만, 고등학생 때쯤에는 나도 몇 가지 욕을 입에 달고 살았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회식은 고깃집에서 했다. 선배를 만나면 형이나 누나라고 불렀고 후배가 들어오면 말 놓아도 되죠(될까요, 가 아니라), 하고 묻기도 했다. 서너 명 쯤 모이면, 기본요금 거리에는 버스 대신 택시를 타기도 했다.

그러니까 해가 갈수록, 하나씩 안 하게 된 거다. 해가 갈수록 말이다. 같이 고기를 먹던 친구들은 여전히 고깃집에서 회식을 하고, 혼숙만 안 하면 여성주의적 농성이 되리라 생각했던 이들은 몇 년째 똑같은 여성주의 내규를 베껴 쓰고, 나이에 맞추겠다며 조금씩 비싼 물건을 좋아하게 되는 동안, 나만 하나씩 안 하게 된 거다.

친했던 그들과, 즐거웠던 그들과 함께 있으면 이제는 즐겁지 않다. 친구, 라고 말하려면 목에서 무언가가 걸린다. 그들은 여전히 욕을 하고, 사람이 고기를 먹어야지, 하고 말하는 데다가 ‘쉬는 시간’을 ‘담배 피우는 시간’이라고 부르는 그들의 사이에서, 나는 쉼 없이 구석을 찾는다. 구석으로 파고든다.

내 편이란 거, 찾을 수 있을까.

패밀리 레스토랑에서의 이만 원짜리 외식이나 학교에서의 사천 원짜리 식사나 비싸기는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자나 좌파들이나 성차별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여성주의자랑 고깃집에서 놀 수도 없고 웰빙주의 자유주의자랑 채식 식당에서도 놀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나는 말이다.

그래서 외로운 건 아니지만, 심심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예전처럼 또 해 볼 수 있을까. 농성장에서든 과방에서든 호기심에 가득 차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못마땅한 것 없는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는 것, 돈 없이 즐겁게 노는 것, 운동은 즐거운 일이라고 말하는 것, 학교에 있을 것은 김밥천국이 아니라 생협 직영 식당이라고 말하는 것―그 중 하나라도 또 해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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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당신의 사랑을 지지한다.

 

당신의 사랑을 지지한다.

 

당신, 과 그들, 두 개의 표현을 두고 고민했다. 이 글은 ‘그들’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당신’이라는 말을 쓰기로 결정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누구에게 하든, 그들의 편에 있음을, 비록 말 뿐이라 할지라도, 가까이 있음을 그들에게 말하고 싶어서.

지지라는 표현을 두고도 고민했다. 사랑에 지지가 필요할까. 사실 괴롭히지만 않으면 되지 지지하는 건 주제넘은 짓인지도 모르지만, 이미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니까, 나는 괴롭힘이 사라질 때까지는 지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신, 그러니까 그들은 사제 간에 사랑을 한, 정확히는 섹스를 한 사람들이다. 얼마 전 여교사와 남학생의 섹스 ‘사건’이 보도되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학생이 나이가 차서 둘의 섹스에 대해 교사를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에 여론은 분노했다. 여교사 ‘신상 털기’나 하는 저질들의 비아냥거림이었지만, “남교사에 여학생이었으면 가만히 있었겠느냐”는 반응들도 종종 보였다.

무언가 쓸까, 하다가 그 비아냥거림을 보고 멈췄다. 분명히 지지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멈췄다. 그리고 또 얼마 전, ‘남교사와 여학생’의 섹스가 보도되었다. 내가 똑같이 분노하지 않았듯, 사람들은 똑같이 분노했다. “이번에도 처벌 못한다”는 불만 섞인 기사가 포털 사이트 메인에 게제 되었다. 국회의원의 성희롱 발언 때에도 보지 못한, 강렬한 불만이었다.

내가 아는 학생과 교사의 사랑은 두 가지다. 젊은 남자 교사에 대한 여학생들의 사랑, 졸업한 후에 ‘이루어 진’ 사제의 사랑.(둘 다 티브이에서나 본 것이지만. 참고로 덧붙이자면, 젊은 여자 교사에 대한 남학생들의 판타지도 있다. 동성애 관계가 물론 있겠지만, 티브이엔 안 나오더라.) 둘 다 할 말이 많지만, 일단 뒤의 것만 이야기하기로 하자.

교사에 대한 학생의 선망이 사랑으로 굳고(곧바로 사랑에서 시작하지는 않더라) 학생에 대한 교사의 애정이 위태롭게 흔들리면(의심의 여지없는 사랑으로 비춰 지지는 않더라) 섞이면 ‘금지된 사랑’이 된다. 방법은 두 가지다. 마음 굳게 먹고 공부에 집중하거나 전학 가는 것, 아니면 학생이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기다리면 뭐가 달라지나. 사실, 나이를 먹으면 달라지긴 하더라. 그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이러나저러나 경험이 적으니 사랑인지 아닌지 실수할 수도 있고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으니까 ‘어른이 되어서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될 때’까지 기다리면, 달라질 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어릴 때 했던 생각들, 그러니까 작년이나 재작년쯤에(1년은 내 인생의 4%쯤 된다) 했던 생각들에 대해서는 나도 종종 후회를 하니까.

 그런데 이거, 그 ‘어린 판단력’이 치르는 몇 번의 시험에 인생을 걸게 만드는 사회가 해도 좋은 판단은 아닐 성 싶다. 게다가 경험을 언제까지 쌓으면 어른이 되는 걸까, 걱정 없이 판단을 내리려면 공자님 말씀을 기준으로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도에 어긋나지 않는다(從心所欲不踰矩)’는 70세 까지는 기다려야 된단 말이다. 잘 봐줘서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不惑)’정도에서 합의 봐도 마흔 살이다.

끔찍해라.

 

(학생이 교사의 권위에 대한 동경을 사랑과 착각하지 않게 교사의 권위를 없애고, 설령 어린 날의 사랑이 ‘실수’로 끝난다 해도 문제 되지 않게 피임 교육 잘 시키고 청소년의 섹스를 문제 삼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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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쯤에서 나는 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딸, 이라는 말보다는 그냥 여성이라는 말을 쓰는 쪽이 좋을지도 모른다. 친한 체를 좀 하고 싶다면 언니라고 써도 좋을 것이다. 굳이 딸이라고 쓴 것은, ‘그들’이 ‘아들’ 걱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들’은 2010년 5월, 신문에 동성애 혐오 광고를 실었다. 몇 달 뒤 대응 광고가 실리자 이내 또 몇 차례의 혐오 광고가 실렸다. 게이 커플이 출연하는 드라마를 본 자기 아들이 게이가 될까봐, 그래서 에이즈 환자가 될까봐 걱정하는 광고들이었다. 인권위 앞에서는 군형법의 동성애 금지 조항 삭제에 반대하는 1인 시위가 열렸고, 모 단체는 사무실까지 들어가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

게이, 라는 말을 그들이 사용했다.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들이 동성애, 라는 말을 사용했다. ‘변태’도 아니고 ‘호모’도 아니고 ‘남색가’도 아니고, 게이. 쾌활하다는 뜻의 게이.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 단어에 그런 뜻이 있는지는. 그들이 자행해 온 비하와 혐오에 반대해 만들어진 말임을.(시간은 흐르고, 거기에는 다시 비하의 의미가 입혀지고 있지만) 그리고 아마, 하나 쯤 더 모른 것이 있었을 것이다. 게이는 여성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데에도 쓰이는 말이라는 사실, 그들이 상상이나 했을까.

게이, 동성애, 호모섹슈얼―그 어느 단어에도 남성을 가리키는 요소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흥미롭게도 이 말들은 늘 남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먼저 한 번) 해석된다. 남성 동성애자만을 가리키는 동성애라는 말은 그대로 남성 동성애자만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데 쓰인다. 여성 동성애자, 그러니까 레즈비언(흥미롭게도 따로 이름을 갖고 있는)에 대한 혐오가 없는 것이 아닌데도.

그래서 나는 이쯤에서, 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군형법이 동성애를 허용하면 자기 아들이 동성애자가 될까봐 두려워하는 부모들, 그들 중 몇 명에게는 딸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딸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 드라마에 남성 동성애자만 나와서라거나 군대에는 남성이 절대 다수라서라거나 하는 이유 때문은 아닐 텐데, 그들은 어째서 딸은 걱정하지 않을까. 그들에겐 딸이 없을까.

동성애 혐오 광고, 라고 앞에서 말했다. 한국어에 원래 있던 표현은 아닐 테고, 아마도 호모포비아를 번역한 것일 이 말에는 묘한 오역이 숨어있다. 누가 처음 번역했는지, 일부러 그랬는지 실수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포비아는 혐오가 아니라 공포다. 동성애 혐오와 동성애 공포, 이 사이에는 의역이라는 말로 메울 수 없는 큰 차이가 있다.

‘여고’와 ‘동성애’ 사이에 자연스러운 연상 관계가 생긴 것은 이미 오래 된 일이다. 만약 <인생은 아름다워>나 <친구 사이?>에 대한 격렬한 반응이 남성 혐오가 아니라면, 그런 반응들은 <여고 괴담>에 대해서 더 크게 있었어야 했다. 그들이 게이라는 말을 배우기도 전이었을 즈음에 나온 여성 동성애(심지어 그들이 걱정해 마지않는 청소년)에 대해 없던 반응이 지금 이렇게, 그것도 메이저 극장 개봉도 안한(심지어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친절하게 청소년에 유해하다는 판결까지 내려 준) 소규모 저예산 영화에 대해 터져 나오는 것은 어째서일까.

어쩌면 그 답이 ‘포비아’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혐오가 아니라 공포다, 피할 수도 없고 참을 수도 없는 공포.

이성애자 남성이 가부장을 맡도록, 그래서 권력의 정점에 있도록 설계된 이 사회에게, 정확히 말하면 그 사회를 즐기고 있는 이성애자 남성 가부장과 그 지지자를(이를 테면 인권위 난동 사건을 일으킨, 아버지만 가득한 어버이 연합과 인권위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어머니모임)에게 남성 동성애자는 공포의 대상인 게 아닐까.

남성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 남성은 여성을 두고, 다시 말해 자신의 소유물이나 잠재적 소유물을 두고 다른 남성과 경쟁한다. 동시에, 자신의 소유나 잠재적 소유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남성들과 연합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여성 동성애자에 대한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걱정할 것 없는) 혐오와 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폭발적으로 드러난) 혐오를 구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가부장제 질서에 따르지 않는, 남성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으로 가장된 복종을 거부하는 여성 동성애자들은 물론 가부장제 사회에 위협적인 존재이겠지만, 알다시피, 남자들은 여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신화 속의 메두사나 세이렌쯤이라면 무서워할는지도 모르지만, 남자들은 다들 자기가 헤라클레스 쯤 되는 줄 아니까, 남자들은 여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이 대목에서 초고에는 포르노 예를 들었는데, 다시 쓰면서도 그 말을 또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예가 와 닿지 않는 이들에게 사과를 표한다.)

남성 동성애자들은, 그렇다면 어떨까. 자신들, 그러니까 이성애자 남성 가부장들과 경쟁하지도 연합하지도 않는 또 다른 남성들, (선의의) 경쟁자―그들의 말로 하면 친구, 쯤일까―가 될 수 없는, 남성들. 무섭지 않을까? 페르세우스는(아마 잊어버렸겠지만 여신의 도움을 받았다) 메두사의 목을 베었고 오디세우스는 유혹을 뿌리치는 것만으로 세이렌을 낙담시켜 자살하게 만들었지만, 상대가 자신과는 맞서지도 연합하지도 않을, 가부장제를 함께 누릴 수 없을 또 다른 헤라클레스라면, 무섭지 않을까?

호모포비아는 그러니까, 동성애 혐오가 아니라 동성애 공포, 남성 동성애 공포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모든 ‘혐오 발언’들에서 여성 동성애자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것은 공포 발언이었고, 여성은 공포의 대상이 못 되니까.

딸들의 이야기, 정확히 말하면 딸들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 그것이 궁금하다.

이렇건 저렇건 남성 동성애자는 한국의 텔레비전에 등장했다. 그렇게 오기까지 수많은 싸움을 거쳤고 앞으로 또 수많은 싸움이 남아 있겠지만, 호모포비아로 똘똘 뭉친 그들이 게이라는 말을 쓰게 된 데에까지는 그래도 와 있는 셈이다.

그들의 광고에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실리는 날도 오게 될까.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레즈비언이 안 무섭지 않은, 레즈비언을 잊을 수 없는, 호모포비아―그러니까 동성애 공포가 레즈비언까지를 향하게 되는, 그런 날은 언제쯤 올까. 청소년 인권 조례가 통과되면, 그래서 학교에서의 동성애 차별이 금지되면, “군대 내 동성애 허용 되면 내 아들 군대 안 보낸다”처럼 “학교 내 동성애 허용되면 내 딸 여고 안 보낸다”같은 피켓이 등장하는 날이 오게 될까.

나는, 무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딸들은, 언제쯤, 신경 쓰이는 존재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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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고추가 서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인가보다.

그들에게 고추가 서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인가보다.

 

6시 군가가 우렁차게 울리신다.

기상! 기상! 빽빽 지르는 고함 소리 사이로 부슬부슬 일어난다.

재빨리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군복을 입고 군화를 신고 차렷자세를 하는 인간

꿈틀꿈틀 꾸물럭 꾸물럭 웅큼웅큼 어물쩍 저물쩍 거리는 인간

 

여러 인간들이 일어나 그렇게 훈련소의 하루를 시작한다.

그 여러 인간들은 어쩌다 저쩌다 훈련을 마치고 쉬는 시간이 되면

아침에 그들의 고추가 섰는지,

다른 인간의 고추는 섰는지, 섰으면 얼마나 빳빳하게 섰는지, 서지 않았으면 왜 안 섰는지, 군대에서만 볼 수 있다는 ‘맛스타’가 문제인지, 국이 너무 짠데 무언가를 탄 건 아닌지..

이러쿵 저러쿵.

 

선 사람은 위풍당당 어깨 찢어질라 – 자신이 섰음을 자랑스레 말하고

서지 않은 이는 왜 서지 않았는가를 이야기하며 평상시 자신의 고추가 얼마나 자랑스레 섰는지를 말함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을 지키고자 안달이다.

 

그들에게 고추가 서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인가보다.

자신들이 훈련소에 있음으로써 일상적으로 당하는 폭력보다도 말이다. 어쩌면 자신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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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C가 돌아왔다.

 

C가 돌아왔다.

 

한 여름을 ‘혈기왕성’하신 남성들과 보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 엊그제 같은 데 벌써 가을이다. 이 글이 종이에 인쇄될 때 즈음이면 겨울이 되어있겠지. 봄이 되면 안 될 텐데. 어쨌든 그 시간이 나에게 낯설지만 친숙하고, 혐오하지만 가끔은 절실히 찾곤 했던 ‘그것’이 돌아오게 만들었다.

 

C – 종이에 인쇄라도 한다면 나무에게 너무나 미안할 것만 같아 이렇게 표기한다. C와 그의 친구들이 돌아왔다. 돌아와 버렸다. 망할.

 

오랜 시간의 노력과 반성, 성찰을 통해 나는 ‘C’를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거의 대부분의 일상 생활동안 생각조차 하지 않게 만들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내 믿음은 여름 한 철 아름다운 석양에 대한 감탄사조차 ‘C’인 인간들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 무너졌다. 정말로 아름다운 석양이었는데, 붉은 색 이리저리 그 틈 사이로 자주색이 번져나가고 회색빛 구름이 아래에서부터 살포시 불타오르는 정말로 진심으로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석양이었는데, ‘C’가 이 아름다움에 대해 내뱉을 수 있는 찬사라니…이 망할 것들.

 

그렇게 그들과 4주간 지내면서 내 혓바닥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 무너져 내렸다. 훈련소라는 특수한 공간 속에서 밉보이지 않고 나이는 좀 있지만 권위적이지 않으며 적당히 잘 들어주는 착한 ‘형’을 연기하고자 했던 것이 실수였을까? 그냥 나는 너희들이랑 잠시라도 친해지고 싶지 않고 이 곳을 나가면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라는 진실을 드러내야 했던 것일까? 그러고 싶기도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런 일을 벌이기엔 난 용기가 없었고 피곤했다.

 

그렇게 ‘C’는 의기양양 내가 세심히 4년의 시간을 통해 꼭꼭 잠가두었던 문을 사뿐히 부셔버리고는 당당히 귀환했다. 다행일까? 염치는 있었던 것일까? ‘C’는 최소한 듣는 이가 있는 곳에선 입 밖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시진 않는다. 아무도 없는 곳, 쥐도 새도 듣지 못하는 곳, 하지만 가끔은 고양이는 듣는 곳, 내 방 안, 혹은 아무도 없는 텅 빈 길에서, 누가 듣기라도 할까봐 두려워하며 조용히 주문을 외우듯이 툭툭 튀어나와 아직 자신이 내 안에서 생생히 살아 있음을 증명할 뿐이다.

 

그렇게 ‘C’가 튀어 나올 때마다 나는 당황해하며 재빨리 ‘C’를 붙잡아 툭툭 썰어 냄비에 집어넣고 죄책감 한 스푼, 분노 한 스푼, 반성 두 스푼, 무력감 세 스푼 넣고 팔팔 열심히 끓여 보곤 한다. 하지만 남는 것이 없다. 시커먼 공허만이 타버린 냄비 바닥에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망할 세상 속에서 나름 올바르게 살고자 노력하는 편이라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나는 망할 존재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벗어나 고고하게 살아갈 수 없으니까. 내가 아무리 도망쳐도 세상은 언제나 헐레벌떡 쫓아온다. 아니. 사실은 내 등 뒤에 언제나 매달려 있다. 내가 나름 열심히 멀리 멀리 도망쳤다고 생각한 순간 내 등에 거친 콧김 한 번 쐬어줌으로써 나를 비웃어 댄다. 깔깔깔.

 

하지만 언제나 그 망함들이 나를 쫓아오고나 내 등 뒤에 매달려 나를 비웃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문틈으로 손 하나 내밀고 “이리오세요”할 때가 있다.

 

가끔 아주 가끔 진심으로 ‘C’를 간절히 찾곤 했다. 입술을 달싹달싹거리며 입 밖으로 외치고 싶어 안달내곤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분노를,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해줄 수 있는 그럼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는 가장 강렬하고 ‘적절한’ 언어가 ‘C’이었기 때문이다. ‘망할’을 아무리 외워대도 ‘C’ 한 번을 이기지 못하더라.

 

쌓여가는 분노를 풀어내기 위해 나를 화나게 만들었던 망할 세상의 언어를 빌려와야만 했다. 다른 언어가 없었다. 대안적 언어가 없다. 이 감정의 들끓음을 속 시원히 입 밖으로 토해낼 수 있는 수단이 ‘C’와 그 친구들뿐이었다. 언어라는 것이 나 혼자 만들어 유유자적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짧은 삶 속에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이러한 언어를 배워왔고 이러한 언어를 통해서만 이런 감정이 토해져 나오도록 훈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몇 마디의 욕설과 내가 느끼는 감정이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C’와 그 친구들은 단순히 죽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라졌다고 믿는 순간 조그마한 자극에도 되살아나 나를 비웃어댈 것이다. 무언가 몹시 화나고 짜증났을 때 느끼는 이러한 감정을 다른 언어와 결합시켜야 한다. 그 다른 언어는 지금보다는 좀 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부당하게 소수자를 차별하고 비웃는 언어가 아니어야 한다.

 

이 얼마나 아무 내용 없는 이야기인가. 공허한 선언인가.

역시나 이번 냄비도 타버린 자국만 남았을 뿐이다. 이걸 없애려면 또 얼마나 수세미로 문질러야 하는 걸까? 하지만 결국 또 냄비에 이것저것 썰어 넣고 요것저것 집어넣어 팔팔 끓여보겠지. 또 다른 시커먼 자국이 남더라도 그 레시피가 틀렸다는 것은 알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방식으로 다른 이야기로 고민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남지 않을까?

 

요리사가 잘못된 거라면 .. 최소한 나에게 답은 없지만 말이다. 하핫.

다른 이가 먼저 찾는다면 몹시 반기리라. 그때까진 열심히 몹시 귀찮아하며 제법 그럴싸한 것이 튀어나올 때까지 부글부글 끓여봐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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