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편안
불편한 사람들, 불편한 자리, 불편한 시간들 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흐느적대며 보냈던가. 그리고 그걸 보상받고 싶었던지 근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편안한 사람들, 편안한 자리, 편안한 시간들 속에서만 살고자 또 얼마나 발버둥 쳤던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어 왔던 수많은 것들에 지쳐 버렸을 때, 심지어 혹은 당연하게도 단결 – 투쟁의 구호마저 불편해져 버린 어느 순간 천천히 나는 편안한 내 방안 구석으로, 한정된 편안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으로 스르륵 숨어버렸다. “피곤하다.” “지쳤다.”라는 말과 함께…
방 안에서 편안히 소파에 누워 가끔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어왔던 수많은 것들을 비웃어대며 또 어떤 때는 무기력감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냉소와 썩어버린 미소로 시간을 채워나갔다. 마치 TV를 보는 것처럼 세상만사에 대해 심드렁한 인간. 그러던 어느 날 편안하다고 느껴졌던 내 방이 불편해져 버린 것을 깨달았다. 벽과 문에 무수히 많은 가시가 달려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 방 안을 나서는 순간 마주칠 불편들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분명 수만 번은 느끼고 반복했던 그 불편들인데, 마치 처음 겪어야 하는 것처럼 무서워졌다. 나의 편안한 방이 어느 순간 불편에 대한 공포로 둘러싸인 ‘편안한’ 감옥이 되어 있었다.
내가 약해져 버린 것일까? 그렇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약해졌다. 가시덤불 속에서 뒹굴기를 포기하며 보낸 시간동안 찢겨진 상처와 멍들이 아물고 흉터 몇 자국만이 진하게 남은 내 피부는 분명 연약해졌다. 나는 약해졌다. 그렇게 약해진 가죽으로 밖을 나가면 분명 또 다시 찢기고 말 것이다. 피 흘릴 것이다. 무서워졌다. 좀 더.. 좀 더.. 그렇게 1년이 넘도록 어쩌면 2년이 넘도록 방 안, 편안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왔다.
그러던 중 마침내 기다리다 지쳤는지 불편이 흰 봉투 하나 고이 들고서 나를 찾아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나오라고. 나는 도망갈 수 없었다. 도망갈 곳이 없었다. 궁지에 몰렸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끌려나온 나는 그 속에서 살아남고자 나를 불편하게 하는 짓거리들을 웃음으로 넘겨버리기도 하고 그걸 전복하고자 살짝 시도해보기도 하고 그러다 가끔 성공하기도 하고 대부분은 실패하면서…
불편과 편안 사이를 오가며 그 경계 위에 지금 나는 있다.
그리고 이 지점이 좋아졌다. 강제로 불려 나온 것이지만 그래도 좋다. 불편한 사람들과 편안한 사람들, 불편한 자리와 편안한 자리, 불편한 시간들과 편안한 시간들 사이를 오고 가는 것은 분명 피곤한 일이지만 그 사이에 있음으로써 활력을 얻었다. 싸워나가야 할 것들, 부딪혀야 할 것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TV를 통해 바라보는 것이 아닌 실제의 삶에서 부딪히며 느끼고 냄새 맡을 수 있는 선명한 옳고 그름, 그리고 그 사이의 흐릿한 알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기에 좋다. 물론 다시 부딪힘으로 인해 조금은 피 나고 조금은 멍들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마 어쩌면 무엇보다 좋은 것은 최소한 불편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은 계속해서 알게 해주니까. 지치더라도.









<편> 길
길
행군을 했다. 어느 언덕 어디쯤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차에 치였나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검은 아스팔트가 뒤덮은 길이 아니었고 주변엔 그 가련한 것을 조용히 덮어줄 친절한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조용히 사라질 수 있도록.
근무를 하고 있다. 사무실 옆길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아스팔트로 덮여 있는 길이지만 바로 옆 작은 공터에 숨겨지듯이 누워 있었다. 오래 전에 죽었나보다. 바짝 말라 있었다. 이제 흙과 먼지가 되는 길만 남아 있는 듯했다.
지금까지 직접 본 죽음의 현장, 아니 살육의 현장은 길 위에서였다. 비둘기, 쥐, 고양이,,, 너구리도 한 마리 보았었다. 죽음이 일어났던 현장도 무수히 보았었다. 길 위에 하얀 스프레이로 그려진 한 인간의 형상, 그 위로 시커멓게 들러붙은 핏덩이의 자국, 로드킬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가리지 않고 언제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가 많으면 많을수록 도로가 많으면 많을수록 인간의 길이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죽음은 더더욱 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
촛불 집회 당시 8차선 도로 위로 걸어보았었다. 너무나 자유로웠다. 차들이 이토록 많은 공간을 차지해버리는 것이 어째서 언제나 당연시되었던 걸까. 더 빠르게 살기 위해, 더 편하게 살기 위해라고 말하지만 더 많은 이들을 ‘지속가능한 불행’ 속에 빠뜨리는 그것들에게, 그리고 가끔은 한 삶 자체를 끝내버리는 그것들에게, 어째서 이토록 많은 공간을 허락해버린 것일까? 그리고 그 빠름과 편함이 차를 통해서만 유지 가능한 것일까? 아니, 그 빠름과 편함이 정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일까?
자전거 도로라고 멀쩡한 흙길을 시멘트로 덮어버리는 짓거리, 이미 차고 넘치는 것 같은 도로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계속해서 산이 갈리고 뚫리고 들판이 덮이고 또 덮이고 그 길을 따라 달리는 차들은 늘어나고 그 옆, 그 위, 그 아래로 죽음만 늘어가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처럼 세상은 조용하다.
농담 삼아 진담삼아 모든 개인 승용차를 금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리고 대중교통을 지금보다 훨씬 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늘리면 지금 사용되고 있는 도로의 절반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마 그럴 것 같다. 개인용 승용차는 참 시답잖다고 생각한다. 그럴 것 같다.
언제나 차들로 꽉꽉 차 있는 널찍한 도로와 인간에게 허락된 비좁은 길, 동물에겐 허용조차 되지 않는 길, 그 길마저 오토바이, 스쿠터, 자전거가 가끔씩 돌아다녀 버리는 그 길 위에서만 오늘도 걷고 내일도 걷고 또 걷는다. 멀 것 같지만 되도록 가깝길 바라는 어느 미래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지만 지금 하는 것이라곤 텀블러를 쓰고 있을 뿐인 마쯔,
4대강 반대 집회라도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