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네번째 발가락

내가 처음 만난 그 사람은 취직과 스펙에 목숨을 거는 학번에 모두와는 다른 ‘멋있는’ 학교생활을 하던 선배였다. 같이 학회를 하고 활동을 같이하면서 내 힘든 얘기를 들어주고 다독여주던 멋있는 사람. 거기에 맑스, 레닌 등의 어려운 이름과 이론들을 꺼내들며 내 고민에 해결책을 내주었던 똑똑한 사람. 심지어 그 해결책은 운동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 그 사람 입에서 나오면 그것이 금방이라도 가능할 것만 같았다. 같이 평생 함께 운동을 할 것만 같았던, 내 운동은 그 사람을 따라가면서 할 것만 같게 생각하게 한 듬직한 동지. 내 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이었다. 왜 지금 그 사람은 내 머릿 속의 떨어지지 않는 껌딱지가 되어있을까.

 

 

내가 활동하던 단체는 그 사람의 단체였다. 그 사람이 만들고 그 사람이 활동을 기획하고 어느 집회를 갈 것인지를 결정하고 어떤 세미나를 어떻게 하고 어떤 이야기에 어떻게 반박해서 어떤 정치를 표명할 것인지를 정하던 그런 단체. 허울 뿐인, 박수소리만 메아리치던 회의. 그 단체는 곧 그 사람 자체였다. 우리는 기꺼이 그 사람의 오른팔이 되고 왼다리가 되면서 운동을 했다.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다. 하는 척 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람을 내편으로 만들려고 했다. 왜냐하면 내 편이 된 사람은 그 사람의 사람이 되고 그렇게 되면 본인의 능력이 되니까. 나도 결국 그 사람의 일부가 되어있던 것이다. 한 네번째 발가락정도. 그것만으로도 단체의 일원인 것 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왜 정치에 동의하는 것이 내가 그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 되어있었을까? 왜 그 사람의 동지가 아닌 네번째 발가락이 되어있었을까. 같이 활동하면 모든 것에 동의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걸까. 하지만 같이 활동을 하는 이유는 서로 다를 것이고, 그 안에서 하는 이야기도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도, 이유도 다 다를 텐데. 왜 같이 활동을 한다고 하는 순간 논쟁할 공간은 사라지고, 세미나를 하는 것이 같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되며, 같은 집회를 나가는 것이 왜 내가 너가 되게 하는 것이었을까. 심지어 넌 날 보내고 자기는 가지 않으면서.

결국 조직이라는 것도 그런 면에서 되었던 걸까. 권력을 쥔 자가 다른 활동가에게 조직을 강요하는 것도 그러한 면에서 그런 것이었을까? 단체의 확장은 곧 그 사람의 세력. 내가 같이 활동을 하자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조직을 하는 것은 처음부터 나의 정치를 이야기하고 같이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을 위한 것이 되었던 걸까. 내가 같이 고민하고 힘들여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언젠가 그 사람의 편이 되고, 그 사람의 수족이 되고. 그 사람은 자신의 편을 늘리기 위해 나에게 조직을 강요하고 나는 내가 내 편이라고 여길 수 없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에게 온갖 감정노동을 다 해가면서 그 사람의 편을 만들어주고 있었던거지. 결국 그 수족이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어 다시 나를 상처입힐 때까지.

 

 

생각건데, 새로 시작하는 활동가에게 내 편의 범위는 어디일까? 그 때, 활동하던 나에게 내 편은 누구였을까? 같은 이야기를 하고 동의하고 공감하던 사람이 더이상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때 그 사람을 더이상 내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귀를 닫고 대신 입을 열고 있는 이 사람을 나는 어떻게 보는 걸까? 그것이 나의 정치와 멀어지는 계기가 될 때 나는 사람과 정치와 활동까지 다 버렸다.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은 정치지만 활동에 남는 것은 사람. 그치만 그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거고 사람이 곧 정치고, 사람을 만나는 태도가 활동을 임하는 태도인걸. 그만큼 내 편과 지지가 필요한데,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그 사람 옆에 난 왜 남아있었을까?

 

 

 

 

그 사람과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은 내 편이었을까? 그 때 있던 남성들은 내 편이 될 수 없는 사람들. 결국은 가해자로 돌변한 그 사람의 판박이들. 그 때 같이 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믿었었다. 하지만 내가 믿는 방식도 어차피 같은 것. 그들이 나와 같은 것들을 공유하고 같은 생각과 불만들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모든 말에 공감하리라 생각했다. 서로 그랬다. 그것들이 깨지기 시작했을 때, 나의 분노와 너의 분노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 나와 너는 더이상 우리가 되지 못했다. 어리석었다. 분명 같을 수 없었는데.

 

 

 

 

결국 뛰쳐나왔다.

 

 

 

 

정말 그 사람이 어느 날 수업이 듣기 싫어지면 수업거부운동을 할 단체였다. 그 사람의 기호에 맞게 짜여진 운동의 틀에 더이상 동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에 문제제기하는 것이 내가 그 사람의 오른팔이 아닌 네번째 발가락인 것에 불만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더이상 이곳은 나의 공간이 될 수 없게 되었다. 말 뿐인 정치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말로만 동의하는 여성주의에, 그러면서 행해지는 일상적 폭력과 욕설에 견딜 자신이 없었다.

 

 

 

 

지금은 더이상 그 사람과 마주치더라도 더이상 아는 척하지 않는다. 그냥 서로 처음부터 몰랐던 것처럼 스쳐지나갈 뿐이다. 내 편이었던, 내가 내편이라고 느끼고 나를 자신의 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사람이 남긴 건 운동을 알게 해준 것, 정치 이론을 알게 해준 것, 너같은 인간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준 것. 그리고 그 사람을 삭제하면서, 털고 일어나면서 그 과정에서 새로운 고민을 하면서 다시 내 정치가 살아나게 된 걸. 결국 난 널 버리면서 너와 했던 것들을 반성하고 부정해가면서 그 위에 다른 경험들을 쌓아가면서 지금의 내가 된 걸.

카테고리 > 페이퍼, 확장판[편] | 댓글 달기

<편> 죽도록 아픈 죽음

침착하게 고백하는 것이지만 근래에는 꽤 죽고 싶었다. 그러나 죽는다 아니다 말조차 무색하게 ‘죽음 그 자체인 사고’가 일어났다. 원전에서 방사능은 항시 유출되고 있었지만, (굴뚝에서 하루종일 수증기를 뿜으면서도) 안전하다고만 거짓말을 한 것도, 애초에 (핵 폐기물을 처리할 방도도 없이) 원전을 지은 것도 ‘안전한 핵’을 성립하기 위해 자본-권력이 한 짓이다. 이 때문에 대대로 죽어야 하는 목숨들. 죽도록 아픈 죽음이다.

가시마상으로부터의 편지

(…) 지금, 가장 무서운 것은, 원자력 발전소(원전, 일본어에서는 원자력 발전)의 사고입니다. 어제부터, 시간이 경과할 때마다, 사고의 심각함이 늘어나 왔습니다. 벌써 79년의 미국, 쓰리 마일섬(Three Mile Island) 사고의 레벨이며, 오늘 아침까지는, 체르노빌(Chernobyl) 형의 사고에까지 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소강 상태를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아직 안심은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조금 전, 플루토늄을 사용하고 있는 후쿠시마 제 1 원자력 발전 3호기에, 수소 폭발의 위험성이 있다고 발표가 있었습니다. 원자력 발전으로부터 반경 20킬로의 주민 7만명이 피난하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는, 사고가 끝나기까지 앞으로 몇일, 걸린다고 생각합니다. 사태가 악화될 가능성도, 적지만,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시점에서 끝나도, 방사성 물질은 주변에 남습니다. 나는 젊은 무렵, 미야자와씨와 함께, 홋카이도의 원자력 발전 운전 개시에 반대하는 운동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그토록 많은 사람이 호소해 왔는데, 마침내 일본에서 대사고가 일어나 버렸다. 정말로, 악몽을 보고 있는 생각입니다. 한국에서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반대 운동은 어떻습니까. 어떤 나라에서도, 원자력 발전소는 위험합니다. 핵무장 능력을 갖고 싶은 권력자와 거대 시설 건설로 득을 보는 전력회사나 건설회사에 있어서는 좋은 것입니다만, 인민에게 있어서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원자력 발전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 3월 13일

(…) 어제, 근처의 노부부의 집에, 후쿠시마현의 원자력 발전 주변의 「옥내 퇴피(외출 금지)」구역으로부터, 딸과 손자가 피난온 얘기를 했었죠? 오늘 아침, 그 딸과 손자를 만났습니다.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도망쳤기 때문에, 아이의 옷을 사러 간다 라는 것. 근처의 할머니와 딸과 손자와 우리들 부부도 함께 갔습니다. 남의 일인데, 가족이 무사하다는 것이, 내 일처럼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손자의 5세의 사내 아이 는, 「똥, 똥」이라는 농담을 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후쿠시마는 시골이니까, 아이가, 「똥, 똥」이라고 떠들어도 모두 웃어 주지만, 도쿄의 사람은 싫은 얼굴 하는군요」라고 웃었습니다. 그들과 헤어지고 나서, 갑자기 슬픔이 참을 수 없이 밀려 들었습니다. 방사성 물질은, 목의 갑상선에 축적되는데, 아이들은 더 축적되기 쉽습니다. 그 경우, 수년 후, 수십년 후에, 갑상선 암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시점에서도, 벌써, 장래, 그러한 건강 피해가 나타나는 것은, 후쿠시마에서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그것이, 100명인가, 200명인가, 1000명, 그 이상인가, 지금 시점에서는 전혀 모릅니다. 어제도 말했습니다만, 도쿄에서는 앞으로도, 방사능의 피해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로라고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만. 대단한 것은 후쿠시마현입니다. 그리고, 물론, 해일의 피해를 받은, 그 외의 현의 사람들. 원전은 오늘도 작은 폭발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가까워질 수 없기 때문에, 미군의 헬리콥터로 물을 뿌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역시 길어졌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도, 작은 지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지진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3월 16일

(…) 위험이 5 단계로 격상된 것에 나의 친구들은 질려버렸습니다. 5 단계였던 것은 3일전까지의 일로 벌써 6 단계로 언제 체르노빌과 같은 7단계가 될 것인가의 상태입니다. 조금 전, 정부가, 후쿠시마현의 우유와 이바라키현의 시금치로부터 미량의 방사능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 3월 19일
번역 켄짱

<녹색평론>은 지난 114호에서 일본작가 이시무레 미치고를 소개한 적이 있다. <고해정토>는, 일본질소비료회사의 산업폐기물로 발생한 미나마타병을 다룬 소설이다. 감자와 날생선을 주식 삼던 미나마타 마을사람들이, 나을 수 없는 통증으로 목숨을 잃었던 이때에도 자본-권력은 산업의 편에 섰다. 작가는 “산업공해가 변방의 촌락을 기점으로 발생”한 것은 “자본주의 근대산업이 체질적으로 하층계급에 대한 모멸과 공동체 파괴를 심화”시켜왔기 때문이라 해석한다. “인간정신이 극도로 쇠약”해졌고 그 원인은 “근대” 또는 근대산업화라는 것이다.
이제는 어디로 가도 매한가지 풍경에 동일한 소비양식으로, 변방도 촌락도 용납되지 않는 시대에 이르렀다. 다만 차등한 소득이 우리를 모욕하고, 자본의 논리가 개개인을 낱개로 떼어놓는다. 농사 지을 수 없고, 어부로 살 수 없고, 나 하나가 일해서 나를 먹여살릴 수도 없거니와 마을도 이웃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시시각각 재앙은 확대하지만, 산을 깎아내고 강을 죽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만이 고통의 다는 아니다.

같은 글에서 <녹색평론>의 발행인은 질문한다. 진달래가 피어야만 물고기가 산란을 하는 까닭을 아느냐. 정해진 날짜나 물의 온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는 강가의 꽃과 이어져있는 까닭에 함께 생을 틔운다고 했다. 내가 알을 낳을 일은 없겠으나, 생의 어떤 시기마다 생명들이 영향을, 의미를 주고받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이 지구에서 무엇이 더 사라질 수 있을까.죽고 싶다 아니다 말조차 무색한 지구의 죽음을 생각하다, 어쩐지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에 밥을 머꼬 자전거로산책을 하고 이불을 두 장 덮었다. 늘 생생한 건 강에 빠진 기억이었는데도, 나는 헤엄치는 꿈을 꿨다.

카테고리 > 페이퍼, 확장판[편] | 댓글 달기

<편> 가난의 불쾌한 문제들 (통장을 앞에 펴고)

지난 3년간 약 784만원을 벌었다. 개미눈물만큼인 까닭은 최저임금 기준으로 급여를 받은 적이 적었던 것도 있고, 노동하지 않은 기간이 틈틈이 계속되어서다. 고졸은 할 수 없는 임금노동이 많았다. 젊은여성에게는 친절할 것, 명랑할 것, 명랑하지만 온순할 것, 화사하고 단정할 것, 하는 식으로 요구사항이 많았다. (화를 낼 줄 알게 되면서 내게 일 시키는 자들에게 제일 먼저 화가 났다). 아마도 그러저러 어떻게든 해마다 261만원 가량을, 그러니까 달마다 21만 7천원쯤을 벌었다는 계산인데, 나는 이에 더하여 400만원을 더 써 없앴다. 달마다 32만 8천원쯤 썼다고 할 수 있다. 뺄셈을 해보면 수입에 대한 초과가 매달 11만 1천원.

사실은, 돈을 쓸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목격당하거나 들키고 싶지 않다. 과소비를 하고 있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애초에 과소비 비슷한 것을 할 만한 목돈이나 수입도 없다. 그저 돈을 썼다는 사실이 괴롭다. 특히 즐거움을 위한 지출 (군것질, 외식, 옷, 조금의 낭비)은 액수와 횟수를 떠나 나를 즐겨 괴롭히는 것들이다. 때때로는 돈을 쓰는 행위 그 자체가 잘못된 버릇이나 중독인 것처럼 수치심을 일으킨다. 근검절약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소비란 것이 내게서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처지에 어울리게 생활하자는 가책, 내 그런 생각이 바로 나를 비루하게 하고 가둔다. 눈꼽만큼도 자발적이거나 즐겁지 않은 이 가난이 불쾌하다. 지금 현재를 결국 염려하게 된다.

카테고리 > 페이퍼, 확장판[편] | 댓글 달기

<편> 안절부절편

안절부절편
 
ㄱ. 호불호가 희미해지는 근래에 더욱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식습관이다. 특히 참치캔 같은 것이 나타나면 쉼표를 두 개쯤 찍고 직진하는 취미를 지녔다. 고향이 바다 깊은 곳이니 본디 내가 잡아먹을 수 없게끔 살던 생물. 그러나 어느 곡절로 그 참치는 구멍가게부터 대형마트까지 알록달록 캔에 담겨서 있는 것인지가, (벌써 스무 해 넘게 구경하지만) 곱씹을수록 놀랍다. 거대한 어선이 부지런히 그물을 내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고, ‘이만큼이나 잘 먹게 되었음’의 증거는 더군다나 아닐 것 같아서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에 취약하고, 자기 밥상에 대해서도 ‘흔한 것’ 정도로밖에 결정짓지 못하며 지낸 시간이 길다는 판단이었고 아무와도 싸우지 않으며 가능성의 폭을 축소해가는 적, ‘다양성’이 ‘가짓수’로 뻥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구 어딘가의 돌고래사냥 (<슬픈 돌고래의 진실>과 같은 다큐멘터리가 다루었던) 이야기를 들어도 즉각 반응할 수 없는 것은, 어부들이 ‘어획량 감소’ 때문에 창을 들고 피바다를 일으키는 모양이지만(돌고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내 식탁과 소비로 단 한 번 질타당해 본 적 없는 나 역시 ‘아무것도 알려들지 않고’ 고기를 씹는 ‘식당손님’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 때문이다. 정말로 내가 아니라면, 아니라면 누가 그 모든 것을 했을까. 가끔은 잔인한 정도보다 그 안에 도사린 ‘태도’를 더 생각하게 되는데, ‘모를 수 있었던 편리함’이 매일 육신을 살찌우는 기분도 있다. 
ㄴ. 턱에 커다란 혹이 났더라도 큰 문제는 아닐지 모르고, 설령 ‘수십 년을 앓다가 죽는’ 결과를 낳더라도 치료하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행동은 아닐지 모른다. 병이 낫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병과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내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최근에야 나도 조금씩 하게 되었다. 자기 몸이 ‘맡겨지기 전에’ 그 이유와 방도를 스스로 따지는 것이 더 맞다. 그렇다면 이 알약에 무엇이 묻었는지 들었는지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하고 ‘환자’에 습관이 들었던 내 부모는 더욱 불쌍하다. 어렴풋이 깨달았을 때 건강은 아주 늦어버렸고, (높다고도 할 수 없는 확률을 믿다가) 이미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은 감각으로 숨만 내쉬게끔 되었다. 호흡기관에 가장 나빴던 것이 ‘의존’이고 소화기관에 가장 해로웠던 것이 ‘주입’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지금에야 든다. 피가 보이면 즉각 응급실에 달려가 병원비를 치러야 하고, 마지막 의식 한 줌까지 링거에 매달려 숨이 멎는 이유를, (이제 집에서 임종하는 법도 좀처럼 없거니와,) ‘보호자’와 ‘환자’로서는 절대 알 리 없다. 병과 제대로 만나본 적 없다는 것이야말로 병이 되고 있는 상황. 만약 충분히 아프지 못하는 것도 병이라면, 그리고 나는 다시 사대강개발이 떠오른다. 
ㄷ. 섭생의 균형이 깨졌을 때 몸은 경고를 보낸다. 예컨대 지난 달 경기도청측은 팔당 두물머리를 겨냥하여 만화를 하나 내놓았는데 (잽싸게 삭제했다), 유기농이 수질오염의 원인이라는 아웅의 연속이었고 노골적 경멸의 내용이었다. 무성의할 수가. 안이하게도 ‘소똥을 밟고 비명을 지르는 관광객’ 따위의 설정에 독자가 이입할 거라고 예측한 모양. 도시는 물론 더 깨끗할 수도 없을 정도로, (청계천을 파내고 대통령이 된 서울시장도 있고 한강에 인공폭포를 만든 디자인시장도 있지만) 무엇보다 체취를 감추고 흙은 털고 벌레는 박멸해야 하는 식의 도시적 청결에 익숙한 이들이 소비하는 ‘씻는 물’의 양도 상당하다. 물과 왜 이리 친한지도 모를 만치 으레 그렇게 각 부분을 달리 다른 방식으로 문지르고 헹궈야 하고, 자주 씻기 때문에 점차 더 자주 씻게 되는 것은 마치 가벼운 강박증처럼 되어있다. 정수기, 수도꼭지가 물을 만나는 유일한 방식이고, 고려할 수 있는 강은 오래 전부터 ‘한강’ 비슷한 것밖에 없었다는 점이, 그 만화가 전제한 것이었고 사대강개발의 발단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씩 천천히 강과 절연해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러므로 강이 모두 운하가 될 때, 풀 한 포기부터, 날고 헤엄치고 뛰던 모든 생명이 죽어 없어진 어느 날을 생각하면, 그런 삶도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 정말 무서워진다. 얼마나 더 흉한 꼴이 벌어질까. 과연 고통도 염원도 어려운 일이다. 2MB에만 반대해서는 사대강개발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나처럼 어리석고 소극적인 자는 안절부절이 9할이다. 
카테고리 > 페이퍼, 확장판[편] | 댓글 달기

<편> 개인 기록 흐린 기록

개인 기록 
흐린 기록
 
세상에는 컵이 스스로 씻고 건조대에 엎어지는 줄 아는 이들도 있다. 결정은 끼리끼리 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함께’ 일한다 하고, 성과가 부족한 건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며 이중으로 공격하는 곳도 있다. 구차하고 궂은 일을 도맡는 이는 따로 정해져 있고, 질책은 언제나 남을 향해 흐르는 이들도 있다. 급여도 신뢰도 지키지 않으면서 ‘마음’으로만 얼버무리고 생채기 내는 곳도 있다. 설거지도 하고 업무도 하던 그 사람이 내게 제의했던 그 곳도 그러했고, 본인은 그만두더라도 나는 남아야 한다고, (컵 하나 씻을 줄 모르는 상사들이 걱정되어,) (도대체가 갓난쟁이들도 아닌데) 여러 번 권유하는 동안, 그래도 그럼에도 누구도 미워하고 싶지 않았던 내가 그 괘씸하고 어처구니없는 모두에게 짓눌리며 견딘 무게도 그런 것들이었다. 내 약함과 어리석음을 돌보지 못했고 아무도 대신 책임지지 않는 동안 얼굴에는 끊이지 않고 열꽃이 피기 시작했다.  
‘우리’란 ‘우리’의 적이 있을 때만 생겨나고, 같은 편인 ‘우리’란, ‘같은 마음’을 내세워서 나의 다른 발언은 막거나 방해하는 일이 되고 만다. 그것이 의도건 결과건. 아군. 적군. 누가 이길까. 질까. 무언가를 미워하고 적대하지 않으면 그것을 용납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똑같은 규칙. 나를 공격한 이들 역시 처음에는 나의 편이었다. 그랬다. 한때라도 기쁨과 분명한 선의를 주었던 이들을 어째서 미워해야 하는지 알아야겠다. ‘친구’는 때때로 내게 그의 적 (마치 나의 적처럼 위치했던) 보다 내게 나쁘게 행동했지만, 나중에야 예외 없이 나의 ‘상처’를 말하고(그것이 정말로 ‘나의 상처’일까) ‘상황’을 설명할 뿐 시늉으로라도 인정하지 않았다. ‘같은 편’인 그들 역시 침묵했다. 그러므로 나는 싸움 그 자체를 폐기해버릴 수 있는 어떤 것을 기다렸다. 그것은 개인과 개인의 감정적 문제거나 가려내야만 할 옳고 그름, 명백한 가해/피해만은 아니었다. ‘같은 편’은 필요하지 않았다.
서로가 무엇이건 솔직한 순간만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되기 위하여 우정이 필요했다고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우정. 지금에 와서 우정을 거론할 수 있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의지했던 ‘동료’들을 잃어버렸다. 안쓰럽지만 가끔은 원망했다. 늘 맞장구 치며 ‘너에게 그렇게 한 그들이 나쁘다 (그리고 나는 안 나쁘다)’ 하던 이의 될 일을 나는 아니 될 일이 되라고 바란다 (바닥이 없는 실망). 고맙지만 내 편이 아니었던 누군가에게 한 번도 제대로 고맙다고 말하지 못한다. 남 탓하기 좋아하는, 삐뚤어진, 좁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잘못 들어선 길에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바깥으로 던진 화는 세상처럼 커지기만 했다. 단순히 적대하기만 할 때 나는 너와 닮은꼴이 될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고, 편먹기만을 반복한다면 어긋난 전제에 문제제기 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술래에게 잡히거나 말거나. 동네도 동네친구도 없이 어떻게 여기서 장난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카테고리 > 페이퍼, 확장판[편] | 댓글 달기
  • 이동

  • 최근 글

  • 회원

  • 트위터

    • @newmonde 감사합니다. :) in reply to GabhrielTorres 2011-12-23
    • 완전변태 게릴라 전시프로젝트#1 '몽마르뜨' 첫 모임이 내일 4시에 열립니다. 저세한 건 홈페이지에서 확인해주세요. :) wanbyun.org 2011-12-23
    • 몽마르뜨 변경된 장소를 참가 신청하신 분들께 메일로 보내드렸습다. 확인해주시고 문의 사항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2011-12-23
    • 글 가져오기...

    Posting tw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