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착하게 고백하는 것이지만 근래에는 꽤 죽고 싶었다. 그러나 죽는다 아니다 말조차 무색하게 ‘죽음 그 자체인 사고’가 일어났다. 원전에서 방사능은 항시 유출되고 있었지만, (굴뚝에서 하루종일 수증기를 뿜으면서도) 안전하다고만 거짓말을 한 것도, 애초에 (핵 폐기물을 처리할 방도도 없이) 원전을 지은 것도 ‘안전한 핵’을 성립하기 위해 자본-권력이 한 짓이다. 이 때문에 대대로 죽어야 하는 목숨들. 죽도록 아픈 죽음이다.
가시마상으로부터의 편지
(…) 지금, 가장 무서운 것은, 원자력 발전소(원전, 일본어에서는 원자력 발전)의 사고입니다. 어제부터, 시간이 경과할 때마다, 사고의 심각함이 늘어나 왔습니다. 벌써 79년의 미국, 쓰리 마일섬(Three Mile Island) 사고의 레벨이며, 오늘 아침까지는, 체르노빌(Chernobyl) 형의 사고에까지 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소강 상태를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아직 안심은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조금 전, 플루토늄을 사용하고 있는 후쿠시마 제 1 원자력 발전 3호기에, 수소 폭발의 위험성이 있다고 발표가 있었습니다. 원자력 발전으로부터 반경 20킬로의 주민 7만명이 피난하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는, 사고가 끝나기까지 앞으로 몇일, 걸린다고 생각합니다. 사태가 악화될 가능성도, 적지만,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시점에서 끝나도, 방사성 물질은 주변에 남습니다. 나는 젊은 무렵, 미야자와씨와 함께, 홋카이도의 원자력 발전 운전 개시에 반대하는 운동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그토록 많은 사람이 호소해 왔는데, 마침내 일본에서 대사고가 일어나 버렸다. 정말로, 악몽을 보고 있는 생각입니다. 한국에서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반대 운동은 어떻습니까. 어떤 나라에서도, 원자력 발전소는 위험합니다. 핵무장 능력을 갖고 싶은 권력자와 거대 시설 건설로 득을 보는 전력회사나 건설회사에 있어서는 좋은 것입니다만, 인민에게 있어서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원자력 발전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 3월 13일
(…) 어제, 근처의 노부부의 집에, 후쿠시마현의 원자력 발전 주변의 「옥내 퇴피(외출 금지)」구역으로부터, 딸과 손자가 피난온 얘기를 했었죠? 오늘 아침, 그 딸과 손자를 만났습니다.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도망쳤기 때문에, 아이의 옷을 사러 간다 라는 것. 근처의 할머니와 딸과 손자와 우리들 부부도 함께 갔습니다. 남의 일인데, 가족이 무사하다는 것이, 내 일처럼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손자의 5세의 사내 아이 는, 「똥, 똥」이라는 농담을 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후쿠시마는 시골이니까, 아이가, 「똥, 똥」이라고 떠들어도 모두 웃어 주지만, 도쿄의 사람은 싫은 얼굴 하는군요」라고 웃었습니다. 그들과 헤어지고 나서, 갑자기 슬픔이 참을 수 없이 밀려 들었습니다. 방사성 물질은, 목의 갑상선에 축적되는데, 아이들은 더 축적되기 쉽습니다. 그 경우, 수년 후, 수십년 후에, 갑상선 암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시점에서도, 벌써, 장래, 그러한 건강 피해가 나타나는 것은, 후쿠시마에서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그것이, 100명인가, 200명인가, 1000명, 그 이상인가, 지금 시점에서는 전혀 모릅니다. 어제도 말했습니다만, 도쿄에서는 앞으로도, 방사능의 피해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로라고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만. 대단한 것은 후쿠시마현입니다. 그리고, 물론, 해일의 피해를 받은, 그 외의 현의 사람들. 원전은 오늘도 작은 폭발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가까워질 수 없기 때문에, 미군의 헬리콥터로 물을 뿌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역시 길어졌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도, 작은 지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지진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3월 16일
(…) 위험이 5 단계로 격상된 것에 나의 친구들은 질려버렸습니다. 5 단계였던 것은 3일전까지의 일로 벌써 6 단계로 언제 체르노빌과 같은 7단계가 될 것인가의 상태입니다. 조금 전, 정부가, 후쿠시마현의 우유와 이바라키현의 시금치로부터 미량의 방사능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 3월 19일
번역 켄짱
<녹색평론>은 지난 114호에서 일본작가 이시무레 미치고를 소개한 적이 있다. <고해정토>는, 일본질소비료회사의 산업폐기물로 발생한 미나마타병을 다룬 소설이다. 감자와 날생선을 주식 삼던 미나마타 마을사람들이, 나을 수 없는 통증으로 목숨을 잃었던 이때에도 자본-권력은 산업의 편에 섰다. 작가는 “산업공해가 변방의 촌락을 기점으로 발생”한 것은 “자본주의 근대산업이 체질적으로 하층계급에 대한 모멸과 공동체 파괴를 심화”시켜왔기 때문이라 해석한다. “인간정신이 극도로 쇠약”해졌고 그 원인은 “근대” 또는 근대산업화라는 것이다.
이제는 어디로 가도 매한가지 풍경에 동일한 소비양식으로, 변방도 촌락도 용납되지 않는 시대에 이르렀다. 다만 차등한 소득이 우리를 모욕하고, 자본의 논리가 개개인을 낱개로 떼어놓는다. 농사 지을 수 없고, 어부로 살 수 없고, 나 하나가 일해서 나를 먹여살릴 수도 없거니와 마을도 이웃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시시각각 재앙은 확대하지만, 산을 깎아내고 강을 죽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만이 고통의 다는 아니다.
같은 글에서 <녹색평론>의 발행인은 질문한다. 진달래가 피어야만 물고기가 산란을 하는 까닭을 아느냐. 정해진 날짜나 물의 온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는 강가의 꽃과 이어져있는 까닭에 함께 생을 틔운다고 했다. 내가 알을 낳을 일은 없겠으나, 생의 어떤 시기마다 생명들이 영향을, 의미를 주고받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이 지구에서 무엇이 더 사라질 수 있을까.죽고 싶다 아니다 말조차 무색한 지구의 죽음을 생각하다, 어쩐지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에 밥을 머꼬 자전거로산책을 하고 이불을 두 장 덮었다. 늘 생생한 건 강에 빠진 기억이었는데도, 나는 헤엄치는 꿈을 꿨다.









<편> 네번째 발가락
내가 처음 만난 그 사람은 취직과 스펙에 목숨을 거는 학번에 모두와는 다른 ‘멋있는’ 학교생활을 하던 선배였다. 같이 학회를 하고 활동을 같이하면서 내 힘든 얘기를 들어주고 다독여주던 멋있는 사람. 거기에 맑스, 레닌 등의 어려운 이름과 이론들을 꺼내들며 내 고민에 해결책을 내주었던 똑똑한 사람. 심지어 그 해결책은 운동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 그 사람 입에서 나오면 그것이 금방이라도 가능할 것만 같았다. 같이 평생 함께 운동을 할 것만 같았던, 내 운동은 그 사람을 따라가면서 할 것만 같게 생각하게 한 듬직한 동지. 내 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이었다. 왜 지금 그 사람은 내 머릿 속의 떨어지지 않는 껌딱지가 되어있을까.
내가 활동하던 단체는 그 사람의 단체였다. 그 사람이 만들고 그 사람이 활동을 기획하고 어느 집회를 갈 것인지를 결정하고 어떤 세미나를 어떻게 하고 어떤 이야기에 어떻게 반박해서 어떤 정치를 표명할 것인지를 정하던 그런 단체. 허울 뿐인, 박수소리만 메아리치던 회의. 그 단체는 곧 그 사람 자체였다. 우리는 기꺼이 그 사람의 오른팔이 되고 왼다리가 되면서 운동을 했다.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다. 하는 척 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람을 내편으로 만들려고 했다. 왜냐하면 내 편이 된 사람은 그 사람의 사람이 되고 그렇게 되면 본인의 능력이 되니까. 나도 결국 그 사람의 일부가 되어있던 것이다. 한 네번째 발가락정도. 그것만으로도 단체의 일원인 것 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왜 정치에 동의하는 것이 내가 그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 되어있었을까? 왜 그 사람의 동지가 아닌 네번째 발가락이 되어있었을까. 같이 활동하면 모든 것에 동의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걸까. 하지만 같이 활동을 하는 이유는 서로 다를 것이고, 그 안에서 하는 이야기도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도, 이유도 다 다를 텐데. 왜 같이 활동을 한다고 하는 순간 논쟁할 공간은 사라지고, 세미나를 하는 것이 같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되며, 같은 집회를 나가는 것이 왜 내가 너가 되게 하는 것이었을까. 심지어 넌 날 보내고 자기는 가지 않으면서.
결국 조직이라는 것도 그런 면에서 되었던 걸까. 권력을 쥔 자가 다른 활동가에게 조직을 강요하는 것도 그러한 면에서 그런 것이었을까? 단체의 확장은 곧 그 사람의 세력. 내가 같이 활동을 하자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조직을 하는 것은 처음부터 나의 정치를 이야기하고 같이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을 위한 것이 되었던 걸까. 내가 같이 고민하고 힘들여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언젠가 그 사람의 편이 되고, 그 사람의 수족이 되고. 그 사람은 자신의 편을 늘리기 위해 나에게 조직을 강요하고 나는 내가 내 편이라고 여길 수 없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에게 온갖 감정노동을 다 해가면서 그 사람의 편을 만들어주고 있었던거지. 결국 그 수족이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어 다시 나를 상처입힐 때까지.
생각건데, 새로 시작하는 활동가에게 내 편의 범위는 어디일까? 그 때, 활동하던 나에게 내 편은 누구였을까? 같은 이야기를 하고 동의하고 공감하던 사람이 더이상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때 그 사람을 더이상 내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귀를 닫고 대신 입을 열고 있는 이 사람을 나는 어떻게 보는 걸까? 그것이 나의 정치와 멀어지는 계기가 될 때 나는 사람과 정치와 활동까지 다 버렸다.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은 정치지만 활동에 남는 것은 사람. 그치만 그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거고 사람이 곧 정치고, 사람을 만나는 태도가 활동을 임하는 태도인걸. 그만큼 내 편과 지지가 필요한데,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그 사람 옆에 난 왜 남아있었을까?
그 사람과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은 내 편이었을까? 그 때 있던 남성들은 내 편이 될 수 없는 사람들. 결국은 가해자로 돌변한 그 사람의 판박이들. 그 때 같이 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믿었었다. 하지만 내가 믿는 방식도 어차피 같은 것. 그들이 나와 같은 것들을 공유하고 같은 생각과 불만들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모든 말에 공감하리라 생각했다. 서로 그랬다. 그것들이 깨지기 시작했을 때, 나의 분노와 너의 분노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 나와 너는 더이상 우리가 되지 못했다. 어리석었다. 분명 같을 수 없었는데.
결국 뛰쳐나왔다.
정말 그 사람이 어느 날 수업이 듣기 싫어지면 수업거부운동을 할 단체였다. 그 사람의 기호에 맞게 짜여진 운동의 틀에 더이상 동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에 문제제기하는 것이 내가 그 사람의 오른팔이 아닌 네번째 발가락인 것에 불만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더이상 이곳은 나의 공간이 될 수 없게 되었다. 말 뿐인 정치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말로만 동의하는 여성주의에, 그러면서 행해지는 일상적 폭력과 욕설에 견딜 자신이 없었다.
지금은 더이상 그 사람과 마주치더라도 더이상 아는 척하지 않는다. 그냥 서로 처음부터 몰랐던 것처럼 스쳐지나갈 뿐이다. 내 편이었던, 내가 내편이라고 느끼고 나를 자신의 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사람이 남긴 건 운동을 알게 해준 것, 정치 이론을 알게 해준 것, 너같은 인간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준 것. 그리고 그 사람을 삭제하면서, 털고 일어나면서 그 과정에서 새로운 고민을 하면서 다시 내 정치가 살아나게 된 걸. 결국 난 널 버리면서 너와 했던 것들을 반성하고 부정해가면서 그 위에 다른 경험들을 쌓아가면서 지금의 내가 된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