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쉽고 점잖고 친절하게는 안 됩니다

쉽고 점잖고 친절하게는 안 됩니다



대표가 바뀌면 조직의 문화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분위기가 변한다고 합니다. 승진과 이익 때문에 자기 의견을 낼 수 없는 조직 사회의 문제. 구조가 달라지지 않으면 그 안에서 개인은 무력하다고 너는 다시 말합니다. 역시 그 한계는 개인의 특성이라고 하지요. 인사청탁과 비리. 권력에 아부하고 빌붙는 것. 정치적으로 쉽게 수구가 되는 것. 
그러나 인간을 다른 구조 안에 넣거나, 다른 틀에 통과시켜보기 전까지는 인간, 다수의 인간이 무엇을 선호하며 어떤 성향이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멀티플렉스에 여러 개의 상영관을 잡고 하루에도 수십 번 상영하는 영화가 있을 때, 내가 그 영화를 봤다고 해서 그것을 선호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관객 수백 만이 들었다고 해서 대중의 취향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편의점에 콜라를 사러 가서, 코카콜라밖에 없었을 때, 그래서 그것을 먹었다면 나는 “코카콜라가 먹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요. 모두 코카콜라밖에 없어서 어느새 머릿속에 콜라와 코카콜라가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고 쳐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원하는 것이 아주 또렷하지는 않지요. 보기가 적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선거에서 특정 정당을 찍은 열 사람이 있대도 그들은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이 있을 겁니다. “찍을 당이 한나라당 뿐”이었겠지만 이유야 각자 다를 테지요. 선거에서 1번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해서 유권자(또는 국민 모두)가 그것을 원했다고 하는 것 역시 너무 거칩니다. 결과는 명백하지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모두 1번을 지지한다고, 그러니 너도 1번을 지지해야 유효할 거라고 속이는 것이 그들의 일이 아닙니까. 정확히는 지지받은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늘 지지받는 척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환경이 인간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너의 이야기는 맞습니다. 그것이 절대적 영향은 아니고, 모두가 절대적 영향 아래 깔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동일하며 유일한 틀 안에서 인간이 모두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는 건 일리가 있는 이야깁니다. 그렇게밖에 비춰지지 않더라고 너도 그랬잖아요. 그러므로 내가 하는 일이 기존의 틀 안에 흡수되지 않고 틀 바깥에 다른 틀을 만드는 일인지를 궁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어떤 틀이 형성되었고 그들은 으스대지요. 노력해서 얻은 것도 아닌 것 같고 자랑할 일도 아닌 듯한데도 그렇습니다. 선택지를 늘려야 하고 그것은 꼭 별개의 보기여야 합니다. “찍을 당이 없지만 찍은” 그 표만큼이나 “정말로는 그 어떤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의 의사가 또렷이 더욱 잘 드러나야 하고, 다르게 만들어서 다르게 유통/소비하는 망이 증폭해야 합니다.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수밖에 없는 성 싶어요. 쉽고 점잖고 친절하게는 안 됩니다. 모든 시작은 “어쩔 수 없잖아” 였던 것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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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무성애자 되기(‘이 주변에 유일한 무성애자’에게)

무성애자 되기
(‘이 주변에 유일한 무성애자’에게)



  성이란 유혹, 터치, 애무, 키스 등의 특정행위 뿐 아니라 섹시하다는 느낌, 관능적이거나 포근한 느낌, 성적인 충동 등 모든 것을 포함해요.
  <당당하게, 여자!> 1권


  무성이란 위의 모든 것이 아닌 거예요. 



어떤 이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궁금할 때. 단지 궁금하기만 할 때. 누군가는 이렇게 조언할 수 있다. 성적인 무언가를 함께 하는 상상을 해보라고. 처음으로 어느 여자애를 좋아할 때도 주변에선 그렇게 조언했다. 나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았다. 무엇이 어때야 한다는 거냐. 그러나 그 때에 좋아한다는 것은, 그게 무언가 나아지게 하는 것이건 나빠지게 하는 것이건, 다른 누구보다 그 친구와 함께하는 것이라고, 더 나빠지더라도 그 친구와 함께하기로 결심하는 마음이라고 여겼다. 
그 다음부터 좋아하는 일은, 어처구니 없이 생긴 얼룩이 어처구니 없이 번진 모양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손에서 수저를 떨어뜨릴 것 같거나, 언제나 지켜볼 수 있어야만 한다고 느끼고, 정기적으로 어떤 언행을 생각하며 기쁨 또는 우울이 커지며, 감추거나 벗어날 수 없다는 망상을 키우는 때도 있다. 남들도 가끔은 그렇겠지. 그러나 생활이 궤도를 이탈할 정도의 스트레스는 아니었다. 레코드점이 닫았다고 식음을 전폐하지 않듯이. 우표를 살 수 없다고 밤잠을 설치지 않듯이. 
‘성적인 무언가를 함께 하는 상상’을 해도 별 일이 없다. 세상이 윽박지르며, 누군가 나를 성적으로 자극하지 않으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고 (우정이거나, 호감이거나, 아무에게도 해롭지 않고 아무렇게나 언제나 털어놓을 수 있는 종류의 마음이라고) 하기 때문에, 나는 반복해서 자주 ‘주어진’ 상상을 해보고, 더욱 어리둥절해지고, 깊이 짐작하건데 무언가 부족하며 걸맞지 않고 속임수 같다고, 성적이어야 하는 애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유치하거나 과하다는 기분도 든다. 
나는 성애를 일부분 알고 잘 헤아릴 수 있다. 처음부터 이성애를 알고 있었고 수행하기 어렵지 않았던 것과 비슷하다. 성이 특별한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일말의 반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섹스파트너도 애인도 배우자 (더 운이 나쁘면)도 두고 싶지 않다. 가끔은 확성기에 대고 노래라도 부르고 싶다. (섹스 없는 세상, 연애 없는 세상!) 본의 아니게 세상에 유감이 많은 나는 ‘이 주변에 유일한 무성애자’다. 
내가 좋아한 것이 어린 ‘여자애’였고 나 역시 그들이 생각하기에 ‘여자애’였던 까닭으로 그들이 내게 다시 한 번 물었던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맞냐’는 질문 (내가 먼저 물었는데). 게다가 ‘성적으로도 끌린다면’ 좋아하는 것이라 한 가지 더 조건을 달고 통과하게끔 했던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는지. 거듭 돌이켜 생각하지만 그들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성애와 무관할 수 있는 것’으로서 내가 느끼는 바를 설명하는 일이 또한 얼마나 어려운지.
세상이 ‘(성적으로) 매력적인 이성’이라는 것을 제시하고 나만의 어떤 취향을 갖도록 요구하는 것에 따라, 나도 ‘(성적인) 매력’에 대한 어떤 취향을 내세울 수 있고, 태연하게 주변에 섞여들 수 있지만, 그것은 수학여행의 진실게임처럼 아무나 떠오르는 이름을 말해버리는 수준에서 멀리 벗어나지도 못한다. ‘성애와 무관할 수 있음’에 대해 누군들 설명할 수 있겠나. 어느 날 나 스스로 성욕이 인간의 ‘보편적’ 욕구라는 것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성애중심적 사회의 영향임을 감안해야 한다고. 어떻게 하필이면 그렇게까지 별종이 될 수 있냐고. 
‘일시적’ 상태라고, 굳이 무엇으로서 자신을 정체화할 필요가 있느냐고 집요히 묻는 이들을 고려하여 나는 오늘 굳이 ‘무성애자 되기’라고 적는다. 성정체성은 더욱 나다워지는 선택이고, 많은 언어와 이미지로 (너 아닌) 나를 표현하는 것은 필요하며, 특히 ‘너무나 충분히 많은 언어’가 필요하다.

 

 

무성적인 자/무성애자 :

 

무성적인 자는 한편으로 범성애자로 비춰진다. 그는 음악과 같이 만져지지 않는 것에서 성적 쾌감을 얻기도 하고, 인간과 관련한 어떠한 성애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다. 그는 동성애혐오와 반감을 거의 품지 않는다. 성애가 자기를 얽어매지 않는 한 무성적인 자는 성애가 없는 것처럼, 부차적인 요소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무성적인 자가 드물게 정서적 애착을 경험하고, 그 대상이 동성이었던 경우가 있더라도 이성애중심적 사고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아닌 편에 가깝지만 그러므로 그 무엇도 드러나게 선언하지 않는 까닭에 다소 특이한 이성애자로 남는다. 동성을 애착의 대상으로 하는, 특히 의심의 여지 없는 성적 애착을 표현하는 동성애자에게, 그는 이성애자에 대해 그러한 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이입할 수 없다. 그가 자기를 무성애자로 정체화하며, 그와 동시에 동성애자, 양성애자 또는 이성애자에 가깝다고 스스로 정리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틀에 박힌 여성/남성에서 비껴나 있는 편이나 대다수는 평이하게 생활하며, 다른 무성애자와 접촉하려는 시도는 드물거나 거의 좌절된다. 무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은 언제나 의혹으로 존재한다. 그가 자기를 퀴어로 위치짓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그렇기에 무성애자는 퀴어운동 안에서도 거의 추상적 개념에 가깝다. 무성적인 자 혹은 무성애자는 때로 무성애자에 머물지 않기 위해 무성애자라는 정체성을 거부한다. 그는 무성적인 자 혹은 무성애자인 것이 밝혀지는 것을 꺼리며, 내면의 확신을 좀처럼 외부로 표현하지 않는다. 간혹 동성애자가 다른 동성애자를 멸시하는 것과 같이 그도 때로 성적 자유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성의 중요성을 방패처럼 자기 앞에 든다. 무성애자가 무성애자가 되는 일은 어렵다. 당당히 그것을 선택했다고 하는 이를 아직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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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인트로

우리도 편하게 살고 싶어. 기분좋게. 하지만 틀에 박혔고 궁핍해지고 나날이 지루하다. 심심하다. 그래서 시작된 완전변태 3호.
우리는 성별과 성정체성을 규제하고 몸을 규격화하려드는 세상에 대해 썼다. 가깝고 작은 권위, 크고 먼 권위를 물었다. 왜 가난해지는지, 세상이 기계, 산업, 개발로 가득차도 괜찮을지 근심했다.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이들을 다시 기억했다. 이 모든 것, 빗으로 빗은 듯이 가지런히 얹어놓지는 못했지만, 열한 명이서 3호를 준비한지도 어언 8개월, 편하지도 않고 편할 것도 아니고 누가 편인지도 모르겠는 이야기들을 냉큼 담아서 내놓는다.
우리가 똑같지도 흥겹지도 않으니 느슨해진 잡지. 그래도 좋게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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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으니 다과회

 

 

 

출판기념회를 하려다가 귀찮아져서

8월 12일 7시 홍대 ‘좋아서하는가게’ 에서 ‘귀찮으니 다과회’를 엽니다.
정말로 귀찮아하면서 여는 것인지라 프로그램 이런 거 없어요.
그냥 서로 뻘줌해하면서 조근조근 놀다가 가시면 되어요. 뻘줌해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완변이 궁금하거나 잡지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거나
무더운 여름에 노닥노닥거리고싶으신 분 누구나 환영합니다.

오시기 전에 미리 연락을 주세요
트위터 : @wanbyun
이메일 : wanbyun@wanbyun.org
휴대폰 : 010-9375-0287
홈페이지 : wanbyun.org

<좋아서 하는 가게>
위치 : 서울 마포구 합정동 358-10 1층
블로그 : http://blog.naver.com/joagage/

상수역과 합정역 사이에 있어요.
미리 지도 보시고 오시거나 연락 주시면 마중 나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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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으니 다과회

 

 

 


[시각 장애인을 위한 이미지 속 텍스트 -- 시작]

출판기념회를 하려다가 귀찮아져서

귀찮으니
다과회

8월 12일(금), 13일(토), 14일(일)
중에서 함께 하실 수 있는 날짜를 댓글로 달아주시거나
메일(wanbyun@wanbyun.org)로 연락주세요.

그러면 최대한 많은 분이 함께 할 수 있는 날에 다과회를 열도록 할게요.

완변이 궁금하거나 잡지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거나 무더운 여름에
노닥노닥거리고싶으신 분 누구나 환영합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이미지 속 텍스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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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monde 감사합니다. :) in reply to GabhrielTorres 2011-12-23
    • 완전변태 게릴라 전시프로젝트#1 '몽마르뜨' 첫 모임이 내일 4시에 열립니다. 저세한 건 홈페이지에서 확인해주세요. :) wanbyun.org 2011-12-23
    • 몽마르뜨 변경된 장소를 참가 신청하신 분들께 메일로 보내드렸습다. 확인해주시고 문의 사항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201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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