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연세대학교 제 22대 총여학생회 <speak-out>이 주최한
2010 제 12회 여성제 <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나는 나에게 대답할 수 있어야 했다.
얼마 전, 친하지도 않은 누군가들이 나에게 짓궂게 ‘혹시 게이에요?’라고 물었을 때, 나는 당황했다. 그간 적잖게 저런 식의 질문 아닌 질문들을 받아왔고, 그런 경험이 늘수록 더 이상 당황하지 않고 요령있게 피하는 법을 익혀왔지만, 그 날은 전같지 않게 당황했다. 물론 저 질문은 ‘일반남성’같지 않은 나의 몸짓이나 말투를 보고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수근거림 끝에 마지막 확인절차로서 나의 대답, 혹은 반응을 보고 싶었던 것이라는 걸 안다. 나는 저 질문을 받기 전부터 그이들의 수근거림을 눈치챘었고, 언젠간 물어올지도 모른다는 걸 예감하고 있었고, 어떤 표정과 말투로 대답하면 좋을지도 생각해놨었다. 게이냐는 추궁에는 익숙해져 있었고, 그렇기에 크게 당황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날만큼은, 생각해놓은 대로 요령껏 피해가면서도, 내 마음 어딘가에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당혹스러움의 응어리가 떠올랐다.
저 날로부터 반년 전쯤,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장소와 사람들과 질문의 맥락은 전혀 달랐다. 그 날에 난 성소수자운동단체 사람들과 있었고, 나를 당연히 이성애자남성이라고 전제하고 있지도 않았고, 나를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도 없었고, 그 질문은 질문이었다. 나는 나의 성/별정체성을 그 사람들 앞에서 한번도 내 입으로 말한 적이 없었기에 그 자리의 많은 사람들은 ‘남성’으로 보이는 나를 막연하게 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않을까 한다. 나도 그게 편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데 게이에요?’라는 질문은 정말로 나를 당황하게 했다. 헤테로 섹슈얼리티가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장소에서 그 정상성의 권력으로 나의 ‘비정상성’을 스스로 까발리라고 공격하는 맥락에서 게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요령껏 잘 넘기려고 노력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그런 맥락이 아니었던 질문은 섣불리 넘길 수가 없었다. 나는 대답해야 했고(대답하고 싶었고) 대답을 하기 위해 나는 내 자신에게 물어야 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반 년동안 그 질문을 애써 묻어두고 살았다. 그러다 얼마 전 똑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그 기억과 질문이 떠올랐고, 그 질문이 불현듯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니까, 나의 성/별 정체성을 무어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나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나는 나에게 대답할 수 있어야 했다. ‘남성’과 ‘여성’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듯한 세상에서 내가 돌아버리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말이다. 세상에서 떨어져나와 있다고 느끼는 건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견딜만한 일이지만, 그렇게 떨어져나와서 내가 어디쯤을 가고 있는지, 내가 뭔지 나조차도 알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을 때는 참 힘들더라. 그러니까 적어도 스스로는, ‘어떻게든’ 대답할 수 있어야 했다. 더 이상 미루기에는 뭔가가 응어리져 나를 짓누르고 있었고,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더듬거리면서 걸어갔다.
나는 나를 설명하기 위해 더듬거리면서 걸어갔다. 지금 돌이켜보건데, 그 여정의 지표는 기존의 성/별범주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었다.
스물 두 살때쯤, 나는 내가 ‘남성’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고, 그런 남성으로서 나를 혐오하거나, 혹은 죄책감을 느꼈다. 어떤 날이면 나는 음경이 있는 내 몸을 저주했고, 그 몸으로 살아온 나를 혐오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일반 남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나의 경험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지금까지 수행해 왔던 ‘남성성’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더 이상 나를 ‘일반 남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왔다.
그래서 내가 게이 혹은 바이인가 생각했다. 남성의 몸을 하고 있으면서도 ‘일반 남성’과는 다르게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당시에 그 정도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LGBT 중에 내가 속할 수 있는 것은 G와 B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언어는 빈약했고, 나는 어떻게든 나를 설명해야 했고, 기댈 곳이라곤 기존의 범주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밖에 없었다. ‘헤테로 남성’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나를 명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게이 범주에 나는 속하지 못했다. 나는 ‘남성’으로서 ‘남성’을 좋아하는게 아닌 듯 했다. 그 때 쯤 나에게는 ‘남성’이라는 범주는 굉장히 불명확한 것이었다. 그럼 바이라고 하면 해결되는 걸까? 내가 좋아했던 몇몇은 ‘여성’이기도 했으니? 마찬가지로 ‘여성’이라는 범주 또한 굉장히 불명확했다. 무엇보다 나는, 남자라는 소리를 듣는게 싫었고, 나를 남자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많이 괴로웠는데, 내가 바이라고 나를 정체화하는 순간, 내가 남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어야 했고, 계속 더듬거렸다. 남성으로서의 나에 대한 혐오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동시에 계속 남성을 연기하는 나에 대한 혐오도 커져갈 때 즈음, 그럼 나를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정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생각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내가 남성으로 살아온 세월을 없앨 수 없었고, 감히 나를 ‘여성’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여러가지 억압과 폭력을 경험하고 있는 여성들 앞에서 수십년 간 남성으로 살아온 내가, 여전히 남성으로 대해지고 있는 내가 어떻게 감히 나를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여자친구들에게 혼자 여행다녀왔다고 이야기한 후 ‘넌 남자니까 가능하지…나도 가고싶다’라는 한숨섞인 그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거울 앞에 서면 ‘남성의 몸’이 보였고, 나는 그 몸을 보면서 도저히 나를 ‘여성’이라고 정체화할 수 없었다. 음경이 있지만 남성으로 정체화하고 있지 않은 나는 뭔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비수술 트랜스젠더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기뻤고, 나를 위한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아도 트랜스젠더라고 정체화할 수 있구나. 하지만 나는 남자옷을 입고 다닌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남자로 대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그것에 기대서 생활을 영위해나간다. 그런 이상 나는 나를 비수술 트랜스젠더라고 정체화할 수 없었다. 그러다 누군가 자신을 프리커밍아웃(pre-comingout) 비수술 트랜스젠더라고 설명하는 걸 보았다. 단어를 보는 순간 나는 멍해졌고, 저 말이 갖는 뉘앙스가 나에게 흘러들어왔다. 나를 설명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남자이고 싶지 않다. 나는 내 ‘남성의 몸’이 싫다. 공용샤워실은 고문이었다. 수술을 하진 않았다. 수술은 내 상상력 범주의 밖이기에, 수술을 하고 싶지도, 안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 태어났을 때도 음경이 있는 몸으로 태어나는건 생각하기 싫다. 일어나면 ‘여자몸’이 되어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들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많은 경우 남성으로서 살고 있다. 프리커밍아웃 비수술 트랜스젠더라는 말은, 다른 어떤 말보다 나를 잘 설명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MTF라고 했을 때, M은 대체 뭐고 F는 대체 무엇인지.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범주, 그것보다 모호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난, 어떤 날이면 남성의 몸이 싫었지만, 또 어떤 날엔 감흥없이, 익숙하게 그 몸을 바라보기도 했다. 또한 내 몸에는 부정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남성’으로 살아온 20년의 역사가 쌓여있었다. 그 ‘남성의 몸’에 대한 익숙함과 ‘남성’을 수행하면서 형성해온 내 몸은 나를 MTF로 정체화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했고, 그래서 더듬거리며 걸어갔다. 어느 단어로 나를 설명하려 할때마다, 계속해서 무언가 찜찜함이 남았다. 뭔가 맞으면서도 동시에 아닌 것 같다. 단어들이 저마다의 울타리를 치고는 내 앞에 있다. 어느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면 나의 일부는 설명이 되었지만 일부는 묻혔고, 일부는 안정감을 얻었지만 일부는 나를 밖으로 떠밀었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 단어들에 집착할수록 울타리는 높아져 갔고, 그 경계는 명확해졌고 서로 침범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 되어갔다. 어딘가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할수록 나는 점점 더 없어지고 더욱 높아진 울타리들만 남았다. 나는 어느 울타리로 들어가든 뭔가 어중간하게 걸친 듯했고, 그렇게 걸쳐져 있는 부위는 울타리에 찔려 피가 났다. 혼란스럽기만 했다. 내 몸은 왜 이따위로 생겨먹은걸까. 하고 생각했다.
몸의 속삭임
내가 여정의 지표로 삼았던 것은 틀렸다. 그랬기에 내 여정은 기존의 범주와 명명들이 각자의 경계를 명확히 하여 더욱 높은 울타리를 치는 것으로 귀결되었고, 그 사이에서 나의 몸은 분절되서 그 사이에서의 고통을 떠안는 것으로 끝났다. 나의 질문의 서사와 전제는 놀랄만큼 이분법적인 섹스-젠더체계의 그것과 비슷했다. “섹스-젠더 범주의 경계는 확고하다. 그러니 너는 너의 위치를 명확히 하고 그 범주의 규범에 너 자신을 맞춰라.” 하지만, 그 경계라는 것이 그렇게 명확한가?/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경계 안에는 모두 동일한 경험만이 존재하는가? 하나의 몸을 언제나 하나의 범주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그 경계설정을 둘러싼 역학관계는 무엇인가? 나는 오히려 이러한 것들을 물어야 했고, 그 여정 속에 되려 등한시되었던 나의 몸경험을 여정의 지표로 삼아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 내 몸은 점점 더 말라갔다. 먹고 싶은 걸 참는 게 아니라, 몸이 먹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하루에 수십 번 체중계로 올라가서 무게를 달아보고, 조금이라도 숫자가 늘어있으면 내 몸은 더욱 먹기를 거부했고, 그러다보니 20kg가 넘는 수치가 줄었다. 어느 날, 그러한 나의 몸 경험이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몸은 음경이 있다. 동시에 나의 몸은 먹기를 거부한다. 내 몸이 먹기를 거부하는 건 여성으로서 아름다워지기 위해서였다. 음경이 있는 내 몸이 동시에 ‘아름다운 여성’이 되려고 하는 것은 모순일까. 이러한 몸경험을 단순히 생물학적 기관(음경)을 증거로 들이밀며 ‘남성의 몸’이 ‘잘못된 시도’를 하는 과정으로 독해하면 다 해결되는 것인가? 혹은, 의료기술을 통해 ‘남성의 몸’을 버리면 그 모순의 간극은 줄어들 것인가? 내 몸은 나에게, 하루빨리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범주를 선택해 거기에 내 몸을 맞추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었다. 나의 몸은 오히려 이렇게 묻고 있었다. “성별정체성이 정말로 본질적이고, 그 범주의 경계는 명확한가?” 생물학적 기관(음경)을 기반으로 한 성별정체성(남성)이 본질적이며 여성/남성 범주의 경계가 명확하다면, 이러한 나의 몸경험은 존재해선 안 됐다. 분명히 존재하는 나의 몸경험은 오히려, 생물학적 몸의 차이에 따른 정체성 범주가 본질적인 것이 아님을, 그 경계가 불명확함을 드러낸다. ‘남성의 증거인 음경이 있으니 나는 남성인가? 하지만/동시에 여성으로서 아름다워지고 싶으니 나는 여성인가?’ 라고 갈등하는 나를, 몸은 비웃는 듯했다. 마르는 것이 어째서 여성-되기로 의미화되니. 음경이 있는 몸이 어째서 ‘남성의 몸’으로 의미화되는거니. 음경이 있으면서도 몸이 두꺼운 여성, 음경이 없으면서도 몸이 얇은 남성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니? 남성은 뭐고 여성은 뭐니? 나는-그냥-그래. 남성이면서 동시에 여성이고, 남성이 아니면서도 동시에 여성이 아니야.
그래서 지금에야 생각하건데, 나는 조금 더 현명해야 했고, 조금 더 내 몸을 어루만져 주어야 했다. 스스로 설정한, 혹은 기존에 설정된 이성애-젠더 체계의 매트릭스를 둘러싼 범주들의 무게에 짓눌려, 거기에 맞춰 한 범주에만 속해야 한다고/속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나보다. 나는 유동하는 내 몸을 박제하려고 했고, 그랬기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의 명명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건 의미있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그 명명에는 포섭되지 않는 몸을 남긴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나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폐기했어야 했다. 그러한 시도가 내게 남긴 것은 한 범주에 속하기 위해 잘라낸 몸들과, 그럼에도 잘려나가지 않아 느끼는 고통이었다. 나는 잘려져 덜렁거리는, 무어라 명명하는 동시에 묻혀졌던 몸을 외면하지 않아야 했다.
내 몸은 시시각각 변한다. 주로 어디에 누구와 함께 있고 그 사람과의 관계가 어떠냐에 따라서 변한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있을 때는 비교적 충실하게 남성의 몸을 수행한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는 낮아지고 말투나 행동은 딱딱해진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나를 비트랜스이성애자남성인냥 인식하고, 그것은 편이를 준다. 그 때의 내 몸은 비트랜스남성이기도 하고, 혹은 드랙킹이기도 하다. 그러한 인식이 짜증날 때면 살짝 다른 몸을 수행하기도 한다. 몇몇 가까운 사람들과 있을 때 내 몸은 또 다르다. 목소리는 가늘어지고 말투나 행동도 하늘하늘해진다. 만약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았다면 같은 사람이라고 편하게 넘길 수 없을 정도로 내 몸은 달라진다. 그 때의 내 몸은 트랜스라고 설명할 수 있다. 성애적인 관심을 갖고 있던 어느 이성애자여성 앞에서 내 몸은, 아슬아슬했던 것 같다. 남성의 몸이면서 동시에 (다른 매력은 없는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이, 착실한 이성연애는 하고싶지 않으므로 훗날을 생각하여) 트랜스여성의 몸이기도 하다. (효과는….많이 없는듯^^) 성애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남성 앞에선 또 달랐다. 내 몸은 언제나 하나의 동일한 몸도 아니고, 관계 속에서 해석되고 인식되고 형성된다.
한 순간의 내 몸도 한 가지 틀로 박제할 수 없다. 공중화장실을 가면 내 몸은 언제나 움츠러든다. 모두 부끄러움 없이 바치춤을 내릴 수 있다고 ‘정의’된 남성용 공중화장실은 내겐 고역이다. 내 몸은 역겨움과 부끄러움에 움츠러들어 조용히 문을 잠그고 좌변기를 이용하든가 남성이 나가길 기다린다. 미화직 여성노동자가 들어올 때면 내 몸은 또 다르게 움츠러든다. 이 때의 내 몸은 비수술레즈비언트랜스젠더의 범주와 게이(혹은 바이) 범주의 경계지대에 있는 몸이다.
나는-그냥-그렇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 몸이 말해주고, 나는 조금 더 섬세히 내 몸의 결 사이를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할 것은 내 몸을 기존의 섹스-젠더-섹슈얼리티 범주에 기대어 내 몸을 하나의 단일한 범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할 것은 하나의 몸을 하나의 단일한 범주로 설명할 것을 요구하는 것, 그를 위해 그 범주의 규범에 맞게 내 몸을 맞추라고 요구하는 것에 반기를 드는 것이었다. 내 몸은 기존의 범주들 사이에 끼여 있는 어중간하고 이상한 몸이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다. 폐기되고 수정되어야 할 것은 내 몸이 아니다. 오히려 폐기되어야 할 것은 내 몸을 조각내고 있던 범주의 인력들, 그리고 명확하다고 인식되는 그 경계들이다. 바로 내 몸이, 그 경계들의 취약함과 겹침과 모순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 나는, 조금 더 편하다. 높게만 보였던 울타리들은 힘을 잃어가며 허술해졌고, 그 사이에서 은폐되어 있던 틈새들이 보인다. 내 몸은 그러한 경계의 틈새 즈음에 혹은 경계지대에 머물러 있고, 그것이 이전만큼 고통스럽지 않고, 내 몸은 그 울타리들을 넘나든다.
by_흘러가고 흘러가는, 수어ㅇ









<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몸이 몸에 대해 말하다 : 뜯어맞춰지는 고통, 우울에 관하여.
출처: 연세대학교 제 22대 총여학생회 <speak-out>이 주최한
2010 제 12회 여성제 <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1. 이제 그만, 소년을 위로해줘.
하지만 내 주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편하지 않아
그들이 내게 강요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남자스러움말야
난 자꾸 그럴수록 마냥 불쾌한 듯 찡그리다가 나중엔 그냥 웃지
… …
딱 봐서 약해 보이는 녀석들은 단숨에 물리치되
나보다 강한 녀석과는 나중에 적이 되지 않기 위해 한 수레 위에 올라타야만 해
단순해 보이는 여자들에겐 매너 좋은 오빠로 보이는 것
이것이 바로 진짜 남자로서 똑바로 살아가는 방법이래
이를 따라가는 광경이 내 눈에 어지럽게 맺히고만 있는데
여자가 돈 쓰는 모습은 몹쓸 짓이라고 녹슨 지갑을 꺼내며 내 친구는 얘기해하지만
내 귀엔 짊어질 필요 없는 짐은 그만 내려놓으라고 말할 기회로 들릴 뿐인데…
… …
무엇다워야 한다는 가르침에 난 또 놀라, 우린 아마 이렇게 멍들어 가는지도 몰라.
큰 혼란… 물론 나를 이토록 많은 함정 속에 빠트려가는 건 바로 나 자신인걸
습관적으로 모든 일들에 익숙한 척 가슴을 펴지만
그 속에서 곪은 상처는 아주 천천히 우리들을 바보로 만들어
세상이 선물한 거울을 완전히 닮기 전에 내 그림자를 밟은 오늘을 이제는 기억해
손을 위로 드는 것 아니면 감았던 눈을 뜨는 것
가슴에 심장소리를 여전히 간직하는 당신에게 말해. 이제 당신안의 소년을 위로해줘1)
사실 의외는 아니었다. 나에게 그는 늘 무리를 하는 것 같아 보였으므로. 소년은 남자가 되기 위해 분투했고, 지쳤고, 지긋지긋해졌던 모양이다. 어느 날, 그는 공허한 우울을 나에게 호소했다. 나는 얄팍한 위로의 손을 뻗었다. 얄팍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건, 내가 어리고 약하다는 핑계로 그의 무리를 외면해온 까닭이다. 어떤 언니들은 말했다. “이런 건 원래 남자가 하는 거야.” 어떤 오빠들은 말했다. “남자들 다 어디 가고 너희들이 이런 일을 해?” 그렇다. ‘이런 일’은 남자들의 것이었다. 나는 그와 그들의 희생-책임지고 힘든 일을 자처하는 것-을 원래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얼척없는 희생은 군 입대 문제에 와서 극에 달했다. 같이 떠들고 웃던 친구들, 운이 좋으면 빠져나갈 수도 있을 테지만, 대개 2년간 모든 인생계획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꾹, 꾹, 꾹 참고 견뎌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인정받는 남자다운 남성이 되기 위해서.
정말 이 모든게 당연한 건가?
군대문화에 대한 개인적 혐오는 차치하고, 대체 왜 이 나라에서는 국방의 의무가 남자들에게만 부과되는지 나는 당췌 알 수가 없다. 자유롭게 누비고 살고자 할 때는 사사건건 제약을 주는 사회의 규범이 내게 국방의 의무만큼은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면제된 책임에 대해서는 금기인양 입다물고, 이등병 생활의 고통을 호소하는 친구의 이야기에서 ‘다움’의 도마를 본다. 도마 위 퍼질러진 밀가루 반죽을 본다. 예쁘게 정렬된 쿠키처럼 규격화된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서, 쿠키반죽위에 틀을 찍어 모양을 만들듯 사람 위에 차가운 철제 틀을 찍어 누른다. 그러나 잉여로서 깔끔히 떨어져나가는 틀 바깥의 밀가루반죽과는 달리, 이렇게 잘라내는 것은 살아있는 살이다. 살아있는 마음이다. 팔이 조금씩 잘리고, 발가락이 조금씩 잘리고, 쓸데없는 감수성이 잘려나가고, 사상이, 신념이 잘려나가고, 고통에 머릿속이 뒤틀어져 아파아파 피흘리는 친구들. 수많은 규범의 틀이 있으나, 군인을 양성해내는 공정에서 군대는 가장 적나라하게 ‘다움’의 틀을 강요하고 있었다.
나는 좀 더 냉철해지기로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 참상의 안전지대에 있는 것일까? 남성 바깥의 성별들은 이러한 규격화의 폭력에서 벗어나 있는 걸까? 나에게 정말 쿠키 모양을 찍어내는 틀은 강요되지 앉는가? 규범은 면제되는가? 아니다, 아니다. 나는 확언할 수 있다. 소년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그에게서 자기연민을 느낄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성애 여성으로 여겨지는 나 또한 무엇이 되어야 했다. 나는 ‘그’와 동질적인 압력을 느꼈고 동질적인 우울에 시달렸다. 나는 어디까지는 확장될 수 있지만, 어디로는 침투할 수 없는 ‘무엇’이 되어야 했다. 나 또한 도마 위의 반죽이었고, 사람들의 시선이 틀로써 나를 사람다운 사람, 여자다운 여자로 다듬고자 안달하고 있었다. 액면상 나는 이를 별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으나, 내 몸은 이질감을 상당히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팠다.
2. 얼굴 길들이기 ;
우울과 고통.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 아픔들은 일방적으로 특정 규범을 강요당하고 그를 거부함으로써 벌어지는 순결한 투쟁과정 속에서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마냥 희생하는 것 같아 보이던 ‘그 남자’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우울과 고통의 과정 속에서 규범에 대한 타협과 결탁, 그리고 규범을 따른 후 주어지는 보상이 있었다. 규범, 성별이분법은 남성과 여성 두 성으로 사람들을 구획했다. 이 틀에서 남자는 ‘위험하고 중대한 책임’을 지면서 보호하는 존재로 확장되었다. 반면에 여자는 비교적 안전하면서 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의무를 지는 ‘배려’를 받으면서 보호되는 존재로 축소되었다. 여기에는 가부장제가 다분히 스며있었다. 기실 가부장제는 적통의 승계를 전제하고 있는 제도이고, 정통성을 잇는 계보에서 군복무와 같이 특정 책임을 면제받는 존재인 ‘열등한 여성’은 조용히 제외되어왔다는 데 슬픈 진실이 있다. 역설적으로 남성 또한 가부장제의 온전한 승자는 못된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이분법의 구도에 의해 배정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사람은 어딘가 결핍된 사람으로 치부되어 불이익을 받았다. 우리는 온몸으로 우리에게 책정된 ‘다움’을 표현해야 했고, ‘다움’에 걸맞지 않은 부분은 가차없이 제거하거나 최소한 외부로 보여지지 않게 해야 했다. 이런 ‘다움’의 검증 후에야, 규범이 지배하는 공간의 권력 체제 안에서 유리한 위치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락 우리의 기존 체제 질서에 대한 종속에는 자발적 측면도 분명히 존재했다. ‘순리대로’라면 우리도 머지않아 특정 권력 구조 안에서 ‘기성화’되어 기존 체제를 공고화하게 될 것이다.
짐작할 수 있듯이 나 역시 약게 처신했다. 나는 이 사회에 막 귀속되었다는 점에서 이방인이었고, 잘 모른다는 점에서 약한 개체였다. 몸과 마음 양자를 매개로 하여 나는 규범을 ‘적당히’ 받아들였다. 내 자신의 ‘정상성’을 복장, 말투, 표정 등 온갖 표현수단을 통해 호소하면서 내가 ‘그들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도록 노력했다. 나는 가면을 썼다. 나는 사람의 마음은 안개와 같다고 생각한다. 색색의 입자로 가득 찬 거대한 안개인 마음. 어떤 사람을 응대하느냐, 어떤 상황에 마주하느냐 따라 그 입자들은 마음의 표면으로 몰려와 내 표정을 형성한다.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얼굴도 있고, 친구의 흉을 보며 즐거워하는 얼굴도, 화가 나서 사납게 일그러진 얼굴도 있다. 연출된 인위성도, 속에서 우러나온 진정성도 그 때 그 때의 얼굴을 형성하는데 모두 일정 정도 가미되어 있다. 나는 내가 속한 새로운 ‘사회’속에서 무난히 수용될 수 있는 얼굴을 만들기 위해, 표정을 온화하게 다듬었고 길들였다. 천편일률적인 일상 속에서 요구되는 얼굴은 뻔했고, 이는 하나의 가면이 되었다. 이에 대한 연장은 화장이고 옷차림이었다. 나는 내 겉모습을 길들였다. 난 내 몸을 길들였다. 나는 나를 조형하고자 했다. 이런 점에서 오랜 기간 나는 피학자인 동시에 학대자였으며, 자기분열의 지점에 서 있었다. 그럴 필요성은 충분히 있었다. 내가 있는 공간은 거대한 연애시장이기도 한 까닭이었다.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팔리는 상품이 되기 위해 열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들은 만족스러운 교환에 성공하면 자랑스럽게 ‘솔드아웃Sold out’을 말했다. 자기 자신조차도 서슴없이 관리와 경영의 대상이 되었다. 가치를 매기는 서열화의 틀인 성별 이분법의 당위성을 거부하는 사람은 매력없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보복을 받았다. 나의 비겁함은 여기에 있다. 말로 채 형체화되지 못한 반론을 꾸역꾸역 누르고, 그 틀에 타협하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이득을(혹은 불이익 받지 않음을) 즐거워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들의 틀에 맞춰 적당히 발췌해 나를 보았고, 나는 그들의 잘못된 독해를 방조했다. 나는 규범을 체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매력이 없는, 이성애적 연애대상으로서는 매력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될 때 의 울컥함이 싫었다. 나만 낙오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3. 그러나, 가면 속의 우울.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견딜 수 없어졌고,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졌다. 아파야 할 구석이 없는데 왜 아픈지, 왜 우울로 시들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괴로웠다. 마치 구토 직전의 몸 같았다. 막상 뭔가 가득 쏟아내고 나면 시원해질 것이지만, 그러지 못해 괴로웠다.
ㅡ정신의 구토감과 몸의 구토감은 뒤섞여있었다. 긴장이 팽팽히 신경을 잡아당기고, 압력이 정수리로 쏟아질수록 나는 내 몸을 안고 아파 낑낑댔다. 정신이 몸의 연장인지, 몸이 정신의 연장인지, 애초에 둘의 인위적 구분이 무의미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거대한 목소리가 있었다. 나는 그 목소리가 저급한 것이 거북했다. 당최 진원지를 알 수 없는 목소리였다. 친구들이 그 목소리에 순응하면서 스스로에게 칼질을 하는 모습은 소름이 끼쳤다. 어지러웠다. 외면해도 우울해지고, 끌어안기에도 우울해지는 규범이었다.
친구가 말해주었다. “다이어트 해야돼! 뭐 좀 그랬을 때 아 내가 너무 못생겨서 그런걸까? 라는 느낌이 안 들 정도로 살빼고 싶다. 어제 충격적인 것도 봤어… 내가 보기에 100kg 확실히 넘는 여자가 지하철을 타고 있었어. 그여자 / 어떤여자 / 남자 / 나 이런 순서로 타고 있었어. 여자-남자는 커플인 듯 싶었고. 여자가 (100kg 넘어보이는) 여자 때문에 자리가 좁아서 자꾸 짜증을 내는 거야. 아우씨 이러면서. 나중에 그 커플 여자가 100kg 넘는 여자분을 노려보면서 모욕적인 말을 하면서 남친이랑 노려보고 자리를 떠났어. 난 너무 슬펐어. 그 언니는 얼마나 슬펐을까. 나는 그래서 지하철에서 울뻔했어. 그 언니는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그 여잔 뚱뚱한 사람은 1인석을 넘어가니깐 지하철 같은건 타면 안된다는 식으로 언니한테 욕했어. 그냥 화가 나도 그런 거 겉으로 굳이 내비쳐야 했나…나는 어제 하루종일 슬펐어요. 나 고3때는 지금보다 훨씬 살이 쪄 있었어. 그래서 지하철에서 앉기가 싫었어. 거울에 비치는데 몸이 너무 커서, 그게 너무 싫어서 자리에 앉지 않고 갔었는데, 그게 막 떠올랐고 너무 슬펐어요. 내가 살이 안 빠지고 고3때 모습이라면 옆에 있는 여자가 그 언니한테처럼 나한테도 욕했을 것 같아.” 나도 울고 싶어졌다. 4년째 친구는 정상성의 기준에 억눌려 몸을 줄이고자 노력해왔다. 눈에 띄고 싶지 않은 게 삶의 목표였고, 언제나 무난하고 평범한 선택을 해왔다. 사회의 규범에 비추어 자신이 비정상적 존재로 여겨지자 견딜 수 없이 매일매일 괴로워했고, 한 때는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싫어했다.
또 다른 친구가 말해주었다. “내 남자친구는 때로 내 아빠같아.” 왜 하필 아빠일까. 스물 남짓한 청년에게 아빠같다니, 넌센스가 따로 없었다. 그녀는 여리여리하게 예쁘고 말랐다. 서울대에 너끈히 합격할 정도로 공부도 무척 잘해서 주변의 많은 아이들이 그 애를 부러워했다. 나는 내심 내 친구가 자랑스러웠다. 몇 년 뒤, 그 잘난 친구를 그녀의 애인이 휘어잡고 조목조목 일상에 간섭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경악스러웠다. 같이 다니면서 나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 높은 하이힐과 스키니진 사이로 보이는 그 애의 가는 발목을 걱정하곤 했다. 저러다 실수로 넘어지면 저 하얗고 가는 발목은 힘없이 툭 부러질 것 같았다. 그래서 저 연약해 보이는 몸을 저 애의 남자친구는 자신이 보호해 주어야 된다고 생각한걸까. 일상에 속속들이 스며들면서 내 친구를 그의 방식으로 빈틈없이 사랑해주고 있는 걸까. 간섭, 참견, 통제… …. 내 친구 또한 그를 사랑하기에 애인이 아버지의 행세를 하는 이질감 정도야 로맨틱한 연애구도로 치환시켜 끌어안을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친구가 다시 한번 말했다. “가끔은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어. 그렇지만 사,랑,하는 데… 우리 관계에 문제가 있는걸까?” 나는 섣불리 말할 수가 없었다. “잘 모르겠어. 뭔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만큼은 확실하지만… ….”
내가 사랑하는 두 몸이 있었다. 통통하고 곰돌이 인형같은 몸과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바싹 마른 몸. 생에서 여러 번 상처가 두 몸을 관통했고, 둘 다 일정 정도의 우울을 품고 살고 있었고, 각자의 얼굴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들 또한 약한 개체였다. 규범의 목소리가 그들의 행동, 복장, 말투, 표정을 통제했고 그들은 반쯤은 자의로 그 틀을 받아들였다. 바꾸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었고, 그래서 적응은 필연적으로 순응적이었다.
식상한 어투로 말을 건다. 대상은 분명치 않다. “이런 거 너답지 않아! 그만둬!”
아마도 이렇게 받아치겠지. “나다운 게 뭔데?”
나는 뭐라 대답해야하는 걸까.
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말했다. 아니, 말하려 했다.
내가 원하는 삶의 양식은, 그러니까, 적어도, 나는 사실, 내가 져야 할 짐을 떠넘기고 싶지 않다. 소년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외풍을 직접 맞는 게 두려워 남을 내 앞에 세우고 싶진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자기만의 도덕률을 세우라는 니체의 거창한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하고 싶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병적으로 무서워하는 나지만, 서투르지만 날것의 목소리를 내어 나의 언어로 말하고 싶었고, 해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더 이상 내 안의 균열을 외면할 수 없었다.